[상상사전] ‘기본소득’

▲ 오수진 기자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지역 노동복지센터에는 취약계층의 상담 전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재택근무나 임금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고용유지지원금에 관해 묻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프리랜서, 영세사업주의 무급 휴직과 해고 관련 상담이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프리랜서의 일감은 끊기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선별적 복지는 ‘재난’이라는 위기와 부닥치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 취약계층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재난으로 드러나는 불평등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전국민에게 지급되는 보편적 복지의 일환인 재난기본소득은 필요하다.

전염병에 따른 ‘재난’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불특정 다수를 가리지 않지만, 피해는 가난한 최하층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대기업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유급휴가를 받을 때, 중소기업 직원들은 인원 감축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국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지만, 감염 위험을 알면서도 밀폐된 공간으로 출근하고 다수와 접촉하며 노동을 해야 하는 이도 많다. 쿠팡맨 배달 노동자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고된 노동을 하다 숨진 사건이나 구로 콜센터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그 예다. 선별적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국가의 지원이 미치지 못한다면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재난 복지 사각지대’에서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재난기본소득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 ‘재난’이라는 특수 상황을 적용해서 전 국민에게 국가 재정으로 현금의 생활 지원금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최빈곤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행 ‘선별적 복지제도’는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집단을 보호하지 못한다. 11조 규모 추경 예산에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자동차 소비세 감면, 대출 금리 인하 등 ‘돈 쓸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돌려주는 혜택이 대부분이다.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노동자뿐 아니라 소득 없는 가정, 실직자, 은퇴자 등 사각지대에 놓인 모든 이들을 구제하는 효과가 있다.

▲ 경기도가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현장 신청이 시작된 20일 오전 경기 수원시 매산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접수창구 앞에 시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 연합뉴스

취약계층에게 중요한 건 당장 먹고 살아갈 ‘생계’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에 목매달 게 아니라 돈을 풀어 사람이 버틸 수 있게 해야 한다. 세계 경기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취약계층을 선별하기 위해 들이는 행정절차가 늑장 지원의 변명이 돼서는 안 된다. 현금 지원은 빠를수록 좋다. 취약계층에게는 버틸 힘이 소진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힘겨운 이들을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하는 시기는 바로 이때다.

재난기본소득은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논의의 시작이다. 재난기본소득이라 이름 붙여진 현금 수당은 지속성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기본소득과는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재난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뜻있는 것은 그간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이 되어온 기초생활보장제가 재난을 계기로 사회안전망 구실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이 얼마나 두터운지 밝혀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논의를 확장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재난기본소득을 넘어 재난이 아닌 때에도 기본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선거 국면에서 보수야당이 최소한 재난기본소득에는 동의했고 여당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으니 의지만 있다면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최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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