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4.15총선, 이것만은 바꾸자’ ② 위성정당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득표율 3위를 기록하고도 지역구 선거에서 선전해 원내 1당이 됐다.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이 26.74%로 새누리당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총 의석은 38석에 그쳤다. 25.54%를 득표한 민주당 의석의 1/3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를 동시에 뽑는 선거제에서는 교차투표 등이 성행하기 때문에 비례대표 득표 비율을 정당의 지지율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비례대표제를 강화했더라면 국민의당은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각각 120석 이상을 챙겨간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양강 구도 아래서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터로 새 바람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이라는 양대 정당 체제를 넘어 다당제 정치현장을 바랐던 시민 635만5572명이 선택한 제3당의 결말은 초라했다. 창당 2년을 겨우 채운 2018년 2월, 국민의당은 소속의원 절반이 민주평화당으로 떠나고 나머지 절반은 바른정당과 합당하는 방식으로 막을 내렸다.

거대양당 욕심에 누더기 된 비례대표제

지지율만큼 의석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과 논의는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3대 총선 때부터 꾸준히 있었다. 20대 총선을 1년 2개월 앞둔 2015년 2월, 선관위는 비례성을 거의 완벽하게 보장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당시 국회의원의 58%가 이 제도에 찬성했다. 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94명 중 84명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국회의원들도 시민의 지지와 실제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선거가 다가오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계산기를 두드려본 거대 양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비례성을 대폭 높이라는 선관위 제안에 이들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데 자유한국당이 거칠게 반발하면서, 국회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후 선거법은 거대양당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누더기로 변했다. ⓒ KBS

민주당이 이번에는 정말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며 소수정당을 끌어들였다. 지난해 4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어느 쪽의 유불리는 작은 판단이고 큰 것은 국민의 의사다, 비례성을 확보하는 의석수를 가져야 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여야 정당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연동률 100%를 반영한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신 50%만 반영하는 제도를 내밀었다.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제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과거 퇴행적 주장을 반복하다 아예 논의에서 이탈했다. 민주당은 원내 압도적 1당의 힘을 내세워 소수정당들의 반대를 꺾고 30석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적용을 받는 기이한 제도를 만들어냈다.

거대양당이 소수정당 '의석 갈취’

20대 총선 결과를 그대로 가져와서 따져보자.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면, 20대 총선 당시 7.23%의 정당 득표를 한 정의당은 적어도 22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연동률 50%에 30석 캡까지 씌운 지금 제도에서는 11석밖에 얻지 못한다. 여기서 정쟁이 끝났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이미 누더기가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치명상을 입혔다. 열린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의미 자체를 없애는 최후의 일격이었다. 이제 정의당은 20대 총선과 같은 수준의 득표를 해도 6석밖에 얻지 못한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이 획득한 의석수와 정확히 같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이 망가지고 위성정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거대 양당이 소수정당인 정의당의 16석을 갈취한 폭거’다.

법과 제도를 망가뜨린 거대 양당은 4.15총선 현장에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반성과 사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지난달 이낙연 총리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난은 잠깐이고 책임은 4년 간다”고 발언해 빈축을 샀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서 “미래한국당 창당은 무너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한 자유민주세력의 고육지책”이라며 “유권자의 표를 노략질한 건 민주당과 군소정당”이라고 주장했다.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지고 국회의원 선거에 소선거구제가 본격 도입된 이래, 민주정의당부터 자유한국당까지 이어지는 미래통합당의 전신들이 유권자의 표를 노략질해온 역사는 애써 외면한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제의 정신을 훼손하며 패악질을 거듭하는데도, 그들이 세운 위성정당들이 기존 양당의 지지율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는 게  4.15총선의 현실이다. 조제프 드 메스트로는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사익을 위해 꼼수를 남발하면서도 당당한 그들에게 ‘반칙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선거에서 알려줘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존재 의의를 없애버린 정치권의 꼼수에 시민이 대응하는 방법은 표로 심판하는 것뿐이다.

▲ 위성정당을 앞세운 꼼수로 의석수만을 차지하려는 거대 양당을 심판하기 위해, 시민들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제대로 된 공약을 내세운 정당을 찾아 투표해야 한다. ⓒ 민생당 홈페이지, 정의당 공식 유튜브, KBS, 녹색당 블로그

우리 삶을 고민하는 정당에 표 몰아주자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거대 야당을 심판하기 위해 강한 정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낡은 생각은 버리자. 거대 양당이 세운 비례위성정당의 횡포를 심판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소수정당의 공약을 살피자. 더불어시민당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하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단 하나의 공약도 싣지 않았다. 미래한국당은 8쪽 공보물 중 7쪽을 정부 비난으로 채웠다. 독자정당들은 달랐다. 민생당은 공익형 직불금 예산을 늘려 농촌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정의당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일하는 특수고용직‧플랫폼노동자에게도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중당은 공직자들의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부동산백지신탁제’를 제안했다. 녹색당은 당의 이름에 걸맞게 ‘기후위기대응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의 목소리가 여의도에 살아나게 하자. 단 한 명이라도 진정성으로 우리 삶을 고민하고 대변해 줄 의원을 뽑자. 이번 총선은 다들, ‘위성정당만 빼고’ 투표하자.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 대립과 갈등 너머(Beyond)에 있을 법한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시선2]의 첫 주제는 ‘4.15총선, 이것만은 바꾸자’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총선 현장은 코로나 재난까지 겹쳐, 그 어떤 비전도 정책도 상실한 채 우리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내일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될 4.15총선을 통해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와 행동을 제안한다. (편집자)

 편집 :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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