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청소년기후행동, 아시아 최초 헌법소원 제기

“기후변화의 위협에서 벗어나 마음껏 꿈꿀 권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정부의 안일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생명권, 환경권, 건강권, 평등권 등 헌법에 보장된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13일 오전 9시 반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소송’ 기자회견에서 김유진(18·고3) 활동가가 또박또박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대표로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 등을 이끌어 온 김 양등 2명과 이들을 지원하는 이병주(56· S&L파트너스) 변호사 등 2명은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정부·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회의 기후대응을 문제 삼은 소송은 네덜란드 등 서구에서는 있었지만 아시아 국가에서는 이번이 최초다. 

생명권·건강권과 ‘마음껏 꿈꿀 권리’ 등 침해

▲ 13일 오전 서울 센터포인트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청소년기후행동 대표와 변호인단이 정부·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내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청소년기후행동

김도현(17·고2) 활동가는 “그동안 결석시위, 국회 강연과 각종 캠페인 참여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정작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실질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실효성 높은 방안을 강구한 것”이라고 헌법소원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유엔(UN) 기후변화정상회의에 앞서 만난 환경부 관계자가 ‘현실적으로 지금 방안이 최선’이라고 말했다”며 실망감을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7년 기준 7억914만 이산화탄소환산톤(tCO2eq)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5위이고 전년대비 증가율은 2.4퍼센트로 가장 높다. 세계 순위로는 7위, 1인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2위가 된다. 기후관련 국제 비정부기구(NGO)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발표하는 ‘기후위기대응지수(CCPI) 2020’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61개국 중 58위로 최하위권 평가를 받았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노력, 에너지소비 저감노력은 각각 59위와 61위를 차지해 ‘매우 미흡(very low)하다’는 혹평을 들었다.

▲ 1990년 이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 유럽 등에서 배출량이 줄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큰 폭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단위는 이산화탄소환산톤) ⓒ 환경부

한국 온실가스 감축목표 ‘기후재앙’ 방치 수준  

헌법소원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공권력에 의해 침해될 경우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재앙’을 막을 수 없게 됐으며, 이로 인해 청소년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환경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2010년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 시행령 제25조 제1호’ 제정과 2016년, 2019년 개정을 통해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제시했는데, 2030년 배출목표치가 5억3600만t으로 2000년의 실제 배출량 5억308만t보다 오히려 높다. 배출전망치(BAU)라는 가상의 숫자를 기준으로 감축 목표를 정해, 실질적으로는 2000년에 비해서도 줄지 않고 1990년(2억928만t)에 비해서는 약 2배나 되는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까지는 '탄소 중립'(온실가스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헌법소원지지 서명운동 등도 추진 계획 

이번 소송에는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청구인으로 나섰고, 에스앤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와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의 변호사들이 공익 소송의 대리인으로 참여했다. 청소년들은 앞으로 헌법소원을 지지하는 서명운동 등 관련 캠페인을 이끌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병주 변호사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4300만t으로 감축한다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규정이 2010년에 만들어졌는데, 이 목표가 전혀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2016년 시행령을 자의적으로 폐지했고 2030년 목표치도 역시 부족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UN환경계획보고서 등에 따르면 (파리기후협약의 지구 평균온도상승 억제목표인) 1.5도(˚C) 기준으로는 약 2억3천만t, 2도 기준으로는 약 3억9천만t으로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연 7억914만t)의 약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이다. 

헌법소원 청구서에는 이처럼 파리협약에서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수준을 달성하지 않고, 오히려 퇴행적인 수치를 제시한 정부가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은 국가가 보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적어도 최소한의 적절한 보호 조처 정도는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변호사는 “정부의 무책임한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폐지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한 행위”라며 “매우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해서 기후파국을 사실상 방치했다”고 강조했다.

▲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들이 기자회견장에서 ‘정부의 소극적 기후변화 대응은 헌법 위반’이란 의미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청소년기후행동

소송에 참여한 변호사들은 피청구인에 국회를 포함한 이유로 헌법 제75조에 명시된 ‘포괄위임금지 원칙’ 위반을 들었다. 대통령령에 일정한 사항의 규율을 위임할 때는,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도록 규정하는 원칙이다.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책정할 때, 범위나 기준을 정하지 않고 정부에 모두 위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감축 목표를 법률에 담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는 다툼의 여지없는 사안, 승소 기대” 

이들은 이번 헌법소원에서 실제 승소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국회와 정부에 적합한 법률과 시행령을 새로 만들도록 명령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파리협정 기준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도록 변경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처럼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입증할 필요도 없다”며 “현재 기후변화 피해가 현저히 발생하고 있고, 구체적인 근거는 과학계에서 확실하게 입증된 방대한 자료를 재판부에 설명하면 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기후변화 책임을 정부에 묻는 법적 소송이 처음인 반면, 다른 국가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소송이 여러 번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대법원은 환경단체 우르헨다(Urgenda) 재단이 주도한 시민 소송에서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억제할 인권적 의무가 있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 소송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기후위기 방관은 위헌’ 등 구호를 외치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을 담은 심판청구서를 들어 보이는 참가자들. ⓒ 청소년기후행동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청소년 활동가들은 손팻말을 들고 “기후변화 말고 안전한 미래” 등 구호를 외쳤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해 3월 15일, 5월 24일, 9월 27일 등 3차례에 걸쳐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결석시위를 벌였다. 결석시위는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운동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확산됐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이날도 기자회견 직후 결석시위를 진행하려 했으나,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야외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기자회견도 온라인으로 동시 송출하면서 댓글로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청소년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종로구 헌법재판소까지 30여 분 걸어간 뒤 헌재 앞에서 ‘기후위기 방관은 위헌’ 등의 구호를 외치고 손팻말을 흔들었다.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제출한 이들은 재판기간 동안 헌법소원 청구 지지 서명운동을 이어가고, 5월에 결석시위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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