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남북대화'

▲ 강찬구 기자

들에는 봄이 오고 있건만 코로나19 사태는 국내외 통행까지 막아 사람들은 봄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 그 와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에 동포의 온정을 느끼게 하는 서신이 오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동토를 뚫고 나온 새싹처럼 대화 재개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북관계는 해빙 기미가 전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관계에서 독립적으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힌 뒤에도 북한은 금강산에서 건물을 철거하라는 통지만 보내왔다. 2017년 7월 문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 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물꼬를 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 상태에 있었다. 북한은 작년 하반기 여러 가지 발사체를 쏘아 올리고는 신년사를 대신한 ‘전원회의’ 결과 발표에서 ‘정면돌파’를 선언하며 평화 행보에는 선을 그었다. ‘하노이 회담’ 이후 우리 손에서 벗어난 남북과 북미 관계를 복원하려면 관계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과 조건을 다시 복기해 봐야 한다.

▲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깜짝회동'을 한 한국, 북한, 미국 세 정상. ⓒ 청와대

우선 3국 지도자들이 처한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자. 먼저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오랫동안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교류협력을 가치로 내세워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개성공단 철수에 이어 사드 배치까지 추진하며 남북관계를 대립 일변도로 치닫게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관성에 제동을 걸고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김정은 위원장도 평화 무드 조성에 중요한 배경이었다. 남한과 미국에서 온 호의적 신호에 즉각 손을 내밀었고, 핵무기에 관해서도 종전까지 고수해온 태도를 유화적으로 바꿨다.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미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악에 받치게 하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수정했고, ‘쇼맨십’이든 ‘나르시시즘’이든 과감하게 화해의 몸짓을 취했고, 김정은을 만났다.

각국 지도자들의 사정은 평화 프로세스의 조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있었던 선거들에 활용할 치적이 필요했다. 북한 건국 이래 한번도 없었던 북미정상회담을, 그것도 트위터를 통해 성사시키는 볼거리를 위해 트럼프는 지금껏 어느 미국 대통령도 하지 않은 과감한 결단을 했다. 김정은은 선대 지도자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대중적 지지세력을 모으기 위해 북한의 최우선 과제인 경제문제를 풀 활로를 찾아야 했다. 경제난 해결의 가장 큰 얼개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대북제재를 푸는 것이었기에 그 기회를 북한은 놓칠 수 없었다. 남한이 한반도 평화 문제를 풀려고 노력해야 했던 동기야 두말할 것 없다. 핵과 미사일 위기를 수시로 터트리는 이웃을 위에 이고 사는 것은 남한 사회에 큰 부담이 돼 왔기 때문이다.

이제 평화 프로세스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간 뒤 북한은 남한의 문제해결 능력을 의심했고, 트럼프의 재선 여부와 미국 의회 문제에 얽혀 비핵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불확실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에 강한 흥미를 보일 이유는 재선밖에 남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신년 구상에서 밝힌 ‘독자 행보’도 벌써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고, 북한도 일단 퇴짜를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번 ‘코로나 서신’을 계기로 남북교류를 계속 시도해 북한이 아주 엇나가는 것을 막으면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당국자들 간에는 심한 말이 오가도 문재인∙김정은∙트럼프가 서로를 비난하지 않은 것은 멈춰 있던 평화 프로세스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조건이다. 프로세스는 진전돼야 프로세스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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