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정재원 기자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1950년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반면 지금 한국은 ‘선진국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요 회원국이며 2019년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2위다. 이런 놀라운 성장에 큰 몫을 한 것이 교육이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자원빈국에서 믿을 건 ‘인재’ 뿐이었다. 국가는 공부 ‘싹수’가 있는 학생들에게 군 면제와 해외유학 등의 혜택을 몰아주며 정부와 기업에서 일할 ‘엘리트(우수인재)’로 키웠다. 가정에서도 ‘명문대 보낼 한 명’을 위해 기꺼이 논밭을 팔고 형제자매를 희생시켰다. 그렇게 성장한 엘리트는 노력의 대가로 부와 권력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국가와 가정은 그런 엘리트 덕택에 나라와 집안이 함께 일어설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되던 시절이 있었다. 교과서를 성실하게 암기하고 정해진 답을 맞히는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비교적 공정한 시험을 거쳐 권한이 큰 자리를 차지했고, 선진국을 열심히 베끼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산업화를 이끌었다. 이들은 많은 보상을 차지했고, 불평등하긴 하지만 다른 구성원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고 있는 지금, 이런 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외우고, 베끼고,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일은 인공지능(A.I.)이 훨씬 더 잘할 수 있게 됐고, 인간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창의적 발상을 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다가왔다. 암기한 지식으로 우열을 가려 엘리트를 뽑고, 이들에게 권한과 보상을 몰아주는 기존 방식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

▲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간적인'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 pixabay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의 입시부정 의혹을 계기로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를 줄이고 수능시험 위주의 정시를 늘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수시든 정시든 대학입시에서 ‘엘리트’를 정점으로 모든 수험생을 줄 세우는 경쟁구도가 유지되는 한 우리 교육에 희망은 없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를 위한 전쟁터가 되고, 중학교 교육이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각축장으로 남아 있는 한 한국의 내일은 어둡다. 시험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바뀌든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해 ‘부모자원’을 총동원하는 구조는 공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형화할 수 있는 일은 인공지능로봇에게 넘어가고, 창의성과 공감, 연대, 배려 등 ‘가장 인간적인 능력’을 중시하게 될 4차 산업혁명시대는 결코 엘리트를 키우는 경쟁교육으로 대응할 수 없다.

한국 교육을 ‘엘리트’가 아닌 ‘사람’을 키우는 교육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여기서 ‘사람’은 기존 학교체제에서 소외됐던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학생’이다.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이 주된 요소가 되는 일자리만 살아남는 시대, 학생 하나하나의 개성과 잠재력에 주목하지 못하는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와 덴마크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장애인, 빈곤층 등 소수자를 포용하면서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키워주는 ‘연대 교육’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친구와 줄 세우는 경쟁 대신 협력과 협업을 강조하는 교육,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개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배워야 한다. 그런 교육이 뿌리를 내리면 ‘학벌 집착’이 낳는 ‘한국적 비극’은 사라지고,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산업을 이끄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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