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국방개혁 2.0’ 군부대 해체 지역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 일환으로 육군 상비병력 감축을 추진하면서 2024년까지 2개 군단과 6개 사단 해체를 진행중이다. 1개 사단에 1만씩 6만여명 군인들이 빠져나가면서 군부대와 군 장병들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해온 접경지역 주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단비뉴스>가 군부대가 해체된 강원도 양구지역과 군부대 재배치가 진행중인 철원지역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편집자)

지난 11일 오후 찾아간 강원도 양구군 남면 구암리 2사단 32연대 입구에는 철문이 닫긴 채 굳게 잠겨 있었다. 10분 동안 부대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보아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근처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부대안은 텅 빈 채 적막감이 감돌았다. 벌써 녹슨 철문 너머로 보이는 생활관 건물에는 경찰 폴리스라인 같은 붉은 끈이 둘러쳐져 출입통제지역임을 표시하고 있었다. 

▲ 강원도 양구군청앞에 주민들이 내건 ‘국방개혁 2.0 피해 보상을 촉구하는 현수막.  ©  권성진

막사 아래로 축구장과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배드민턴’ 장이 보이고 그 옆 텅 빈 주차장에는 ‘독수리 역사관’이라는 푯말이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담당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 전화를 해보니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 32연대 역대 지휘관과 부대 역사를 소개하는 사진과 글이 전시돼 있었다. 육군 상비병력 감축계획에 따라 작년 5월 31일 군인들이 떠난 뒤 부대가 폐허로 변한 것이다. 

거리에 인적 드물고 문닫는 가게 늘어

32연대와 함께 나머지 다른 연대들도 인근 사단으로 편입돼 떠나면서 그 여파는 이곳에서 8km쯤 떨어진 양구읍까지 미치고 있었다. 읍내 중심가인 ‘양구 중앙시장’과 ‘아름답고 걷고 싶은 거리’ 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규제에 묶여 3층 이상 건물이 없는 거리에는 저녁 무렵인데도 군인은 서너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단이 빠져 나간 뒤 길거리에 사람이 40% 정도 줄었다고 한다.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내 중심가의 밤 거리 모습. 세사람의 군인들 외에 인적이 드물다. © 권성진

군장병들이 많이 이용하던 햄버거나 토스트, 아이스크림 등 프랜차이즈 가게도 손님 없이 비어 있었다. 30여분을 지켜봐도 토스트 가게를 찾은 사람은 아이와 함께 나온 어머니가 전부였다. 가게 주인은 “사단이 완전히 빠져나간 작년 말 이후 손님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근처 ‘ㅁ만두’ 집은 계약기간이 남아 임대료를 계속 내야 하지만 손님이 없어 가게를 접었다. 터미널 옆에는 완전히 빈 건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임대 문의’라는 종이가 붙어 있어 주민들에게 물어 보니 ‘고기 대통령’이라는 식당이 영업하던 곳이었다. 군인들이 빠져나가기 전에는 빈 자리가 없는 식당이었는데 2사단 해체 뒤 문을 닫았다고 한다. 터미널 앞 카페와 피자집도 모두 가게를 내놓는 등 양구 읍내는 하루가 다르게 쇠락하고 있었다. 

양구군이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국방부가 작년 4월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2사단 해체’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중동부 전선에 있는 양구는 2사단과 21사단의 주둔지로, ‘민관군’의 상생으로 지역경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갑작스럽고 보완책 없는 2사단 해체로 양구군 지역경제와 주민들의 생업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2사단 예하 3개 보병연대는 해체되고 일부는 인근 21사단과 12사단으로 통합됐다. 

무너진 ‘민관군’ 상생, 지역경제 쇠락

양구읍내에서 ‘ㅍ모텔’을 운영하는 김호(45, 남) 씨는 “정부나 군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동안 군사시설 보호구역 규제에 묶여 재산권 행사도 마음대로 못하는 등 불이익을 감내하면서도 군부대와 군인들을 바라보고 생업을 유지해 왔는데, 아무런 사전대책도 없이 부대들을 해체해 버려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13개 객실이 있는 그의 모텔은 몇 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면회객과 군인들로 ‘만실’을 이루던 곳이었다. 최소 2-3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주말에도 2개 정도만 나간다. 그나마 출장 나온 공무원이고 군인들은 거의 오지 않는다. 김 씨는 “하루 매출이 30만원, 주말 기준으로 방 7개는 나가야 최소한 유지가 되는데 그것이 안 돼 속이 탄다”고 말했다. 

▲ 양구읍 ㅍ모텔 주인 김호 씨가 보여준 숙박장부에는 주말 예약손님이 ‘2팀’뿐이었다. © 권성진

군부대 주둔지에서 숙박업소와 함께 군인들이 많이 찾는 PC방도 파리를 날리고 있다. 양구읍에서 컴퓨터 100대를 설치해 놓고 ‘ㅂPC’ 방을 운영하는 한 아무개(43) 씨도 2사단 해체 이후 급격한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작년 초 위수지역 완화조처로 한 차례 매출 감소를 겪은 뒤 차츰 회복세를 보이던 차에 2사단 해체로 주말 기준 매출액이 반토막 났다. 한 씨는 “인건비도 나오기 힘든 수준이라 주말에 둘을 쓰던 알바생을 한 사람으로 줄였다”며 “할 일이 없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군인이나 면회객을 대상으로 영업해온 상점들도 타격이 컸다. 양구읍에서 ‘ㅁ군인상점’을 운영하는 이현주(48, 여) 씨는 “옛날에는 2사단과 21사단 군인들과 면회객이 몰려와 북적댔는데 2사단이 없어지고 난 뒤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위수지역이 완화되면서 군인들이 도시지역으로 나가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되면서 부대 안에서 인터넷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래저래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농민들의 군부대 농산물 납품규모도 30%정도 감소했고, 인구도 2만명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도 나돌고 있다. 

주민들은 이런 상황인데도 지방자치단체나 군 지역 상인회 등 누구에게서도 사전 설명이나 대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ㅍ모텔 주인 김호 씨는 “그동안 연락받은 것은 ‘저금리’로 안내해주겠다’는 은행들의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출 권유 문자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영업자들을 빚쟁이로 만들고 다 죽으라는 것 같다”며 “이달에만 대출을 1200만원을 받아야 하게 생겼는데 이런 문자 받으면 더 열받는다”고 말했다. 강원도가 접경지역 대책을 세운다고 말을 하지만 부대가 해체된 지 8개월이 넘어 가는데도 구체적인 지원대책은 시행되는 것이 없어 생계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 부대가 해체되고 난 자리에 있는 독수리 연대 공원. 군인 및 면회객 차량으로 붐볐던 곳이 한산하게 변했다. © 권성진

부대 재배치 철원도 공동화 진행중

양구보다 많은 군부대가 있는 강원도 철원지역도 ‘국방개혁 2.0’의 후폭풍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었다. 양구보다 서쪽에 위치한 철원군은 서쪽에 6사단, 동쪽에 3사단이 있고, 그 아래 8사단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그러나 사단 재배치 계획에 따라 6사단은 서쪽 지역인 포천으로 이동하고 8사단은 남쪽 지역인 양주로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어 지역 주민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6사단 19연대가 철수한 곳은 폐촌처럼 변해가고 있다. 부대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고 ‘부대 구호’ 등을 써놓은 현판은 색이 바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부대 옆에 있던 주유소는 사람이 없어 영업을 중단한 지 오래다. 근처 상점 주인은 “부대가 빠져 나간 지 체감상 2년은 된 것 같다”며 “군인들이 오가며 담배나 물건을 샀는데 이제 군인들은 볼 수가 없다”고 했다. 

6사단과 가까운 철원군 동송읍내는 양구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이곳도 ‘국방개혁 2.0’의 여파가 밀려오고 있다. 이제 6사단 예하 1개 연대만 포천으로 이동했을 뿐인데도 PC방, 음식점 등에서는 “주말이나 저녁 손님이 40% 이상 감소했다”는 말이 나왔다. 남아있는 2개 연대까지 다 빠져나가면 읍내가 급격히 공동화할 것이란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 부대 재배치 계획에 따라 부대가 철수한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6사단 예하 보병 연대의 정문 모습. © 권성진

동송읍내에서 PC 카페를 운영하는 정금주(39, 여) 씨는 “6개월 전에 6사단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주말 손님이 30~40% 정도 줄었다”며 “’주말 장사’인데, 130대 중 80대가 차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ㅎ모텔을 운영하는 허경자(76, 여) 씨도 “부대가 대책없이 빠져 나가 하루 아침에 수입이 5분의 1로 줄었다”며 “29개 방 중 4~5개나 차면 다행”이라고 했다. 

강원 접경지역 주민 10만, 생업타격

지금 군부대 해체나 재배치가 진행되고 있는 강원도 전방지역의 양구(2만2천), 인제(3만1천), 철원(4만5천), 화천(2만4천) 등 접경지역 4개군의 인구는 10만2천여명에 이른다. 고성군까지 포함한 강원도 접경지역 5개군은 전체 행정구역의 53%인 2500여㎢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토지이용과 재산권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다. 지난 2018년 강원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군사시설보호구역 규제로 토지가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발생한 자산가치손실액만 8조8천879억원이다. 또 접경지역 시장군수협의회가 2015년 용역을 주어 연구한 ‘접경지역 규제해소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강원도 접경지역 5개군의 생산손실 추정액이 2조 5천718억원으로 나타났다. 

접경지역이란 이유로 각종 규제에 묶여 심대한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접경지역 주민들은 ‘민관군 상생’을 기치로 내걸고 군부대와 군인들을 상대로 생업을 유지해왔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군 의존도는 대단히 높다. 화천군은 인구가 2만4천여명에 불과한데 이 지역에 주둔하는 육군 3개 사단의 군인수는 3만명이 넘고, 양구군은 인구가 2만2천여명인데 부대해체 전 2개 사단 병력이 2만명을 넘었다. 

강원연구원의 2017년 분석자료에 따르면 1개 사단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연간 917억원에 이른다. 양구군 2020년 예산이 3400억원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2개 사단이 주둔할 때 지역경제에 미친 파급효과는 18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양구군 예산의 절반 가까운 규모에 이른다. 이런 엄청난 효과를 제공해왔던 군부대들이 해체되거나 재배치되면서 접경지역 경제와 주민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 ‘지속가능한 상생’ 요구

부대해체에 따른 지역경제 쇠락 방지를 위해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상생’이다. 양구읍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일규(58) 양구군요식업협회장은 “대안 없는 국방개혁 2.0은 지역주민의 생업은 물론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며 “군관민이 상행해온 정신을 살려 조속한 대책을 시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양구는 다른 접경지역과 달리 관광자원이나 다른 활용가능한 자원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인공적인 관광자원 개발 등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철원은 북한이 철수하면서 남긴 건물이나 관광자원이 있고 화천은 물을 활용한 관광사업이 가능하지만 양구는 땅굴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는 “4계절 상용 가능한 관광지 개발이 필요하다”며 “포병 사격장 등 군시설을 돌려받아 스키장과 생태공원 등을 조성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 이미경 철원 외식업지부장이 부대 이동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권성진

이미경(68) 철원군외식업지부장은 “지금 철원은 ‘죽음의 도시’ 같다”며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철원에는 ‘한탄강’을 비롯한 자연자원과 관광자원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해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현재 포천까지만 개통돼 있는 고속도로를 철원까지 확장해서 서울과 경기남부지역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여 주고, 철원에 농공단지를 유치해 줄 것”을 촉구했다.

‘대책 논의한다’며 주민들엔 묵묵부답

강원도와 해당 지자체는 물론 군당국은 ‘국방개혁 2.0’에 따른 접경지역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지역주민들의 요구에도 공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철원군 주민을 대표한다는 철원군국방개혁투쟁위원회조차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공개할 수 없다”며 “확정되지 않아 그런 것이니 양해 바란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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