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등 영향 기상천외한 ‘또래 언어’ 빠르게 확산

▲ 인터넷 미니홈피, 메신저 등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신조어. ⓒ 인터넷 화면 캡쳐

“나 남소 받는다.”
“안물!”
“찐찌버거는 곤란한데.”
“난 SC가 젤 싫어.”
  
이런 여중생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청소년들이 은어와 비속어를 통해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최근엔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을 타고 ‘또래 언어’가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남소’는 ‘남자 소개’의 줄임말이고, ‘안물’은 ‘안 물어봤는데?’의 축약이다. ‘찐찌버거’는 어리숙하고(찐따) 추접하며(찌질이), 버러지, 거지같다는 뜻의 욕이다. ‘SC’는 ‘센척’하는 사람을  말한다. 초중고생들은 학교 친구나 인터넷 등을 통해 이런 은어, 유행어를 배운 뒤 재빨리 일상 언어에 접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충북 제천시내의 영화관, 상가 등지에서 요즘 많이 쓰이는 또래 언어를 조사했다. 사전에 인터넷 채팅방, 미니홈피, 댓글 200여 건을 통해 수집한 신조어들을 중고생들에게 보여주며 실제 이런 말을 사용하는지도 물었다.

또래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신조어 사용은 필수

▲ 고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 이준석

“알빠, 에바다, 이런 말 많이 써요. ‘내 알 바 아니다’, ‘오버(over)다, 에러(error)다’ 하는 뜻이죠.”
“똘추는 ‘또라이 추리닝’이라는 뜻인데요, 사고방식이 특이하거나 겉모습이 남루한 애들을 그렇게 부르죠.”

제천중 1학년 김민주, 김소리 양은 기자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신조어 리스트’를 보여주자 “완전 대~박”을 연발하며 폭소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신조어를 아이들끼리 일상적으로 쓴다고 말했다. 필없다(필요없다), 솔삐(솔직히), 엄훠(어머나), 엄마찬스(엄마의 카드로 자기 물건을 사는 기회), 쓰담쓰담(손으로 살살 쓸어 어루만지기), 닼써(다크서클) 등도 자주 쓰는 용어라고. 

제천동중 1학년 김소희, 정혜영, 유윤지 양은 주로 친구들과의 인터넷 채팅에서 새로운 말을 배운다고 말했다. 일부 인격모독적인 표현이나 욕설도 있지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고 한다.

“네이트온 같은 채팅을 하면서 저절로 배우는데요, 이런 말 안 쓰는 애들이 정말 하나도 없어요.”

청소년들은 인터넷 등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를 못 알아들을 경우 또래집단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을까 내심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신조어를 만들고 수용하기 때문에 호응을 얻은 신조어는 급속히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국어 파괴와 세대간 소통 단절 가능성 우려

▲  청소년들의 신조어, 은어 현황(1). 원이 클수록 사용빈도가 높다. 문화관광체육부 용역보고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조사'의 자료를 아이비엠( IBM)이 제공하는 매니아이즈(Many Eyes) 프로그램으로 그래픽화했다. ⓒ 이준석

그러나 이런 ‘또래 언어’의 유행이 국어 파괴와 세대간 단절 등의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 용역으로 발간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연구책임자 장경희)’ 보고서는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서 국어의 왜곡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특히 인터넷 언어에서 문법 규칙이 파괴된 어휘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입말과 글말에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세대 간 소통단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형문자라고 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결합한 신조어는 세대간 소통단절을 낳을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세명고 3학년 최 모양(18)은 “우리가 이런 신조어들을 쓰는 게 일시적인 또래의 집단 문화라고 볼 수 있지만 무분별하게 국어를 파괴하는 인터넷 언어 사용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  청소년들의 신조어, 은어 현황(2). 원이 클수록 사용빈도가 높다. 문화관광체육부 용역보고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조사'의 자료를 아이비엠( IBM)이 제공하는 매니아이즈(Many Eyes) 프로그램으로 그래픽화했다. ⓒ 이준석

부산 한 중학교 국어교사 김은주씨는 “인터넷과 방송 예능프로그램 등을 통해 언어축약이나 은어 등을 여과 없이 접하면서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학교에서는 아나운서를 초청해 특별 강연도 하고 언어 순화와 관련된 자료를 나눠주며 지도하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단순한 ‘또래 문화’를 넘어선 국어 파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학교와 언론 등에서 각별한 인식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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