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2035년, 아버지와 딸의 대화

▲ 이신의PD

“로디, 오늘 일정 뭐야?”
“수지, 오늘 일정은 없습니다만, 1급 보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버지야?”
“네.”
“지워.”
“그럴 수 없습니다.”
“지우라니까!”
“자동시스템으로 변경됐습니다. 1급 보안 메시지입니다. 거절할 수 없으며, 강제 청취하셔야 합니다.”

-메시지
딸아, 그만하면 됐다. 아비가 일구어가는 이 회사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님을 알기 바란다. 구글의 시작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500년 전 데카르트는 눈에 보이는 육체를 넘어 보이지 않는 인간 정신에 집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눈을 감아라. 귀를 막고, 몸의 감각을 차단하라. 모든 육체적 이미지를 생각에서 몰아내라.’

데카르트는 인류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 했다. 노블은 데카르트의 시도를 극찬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철학적인 방법이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극복하고, 내재한 신적인 힘의 일부를 다시금 제어하게 해줄 것으로 믿었다.’ 수 세기에 걸쳐 수학자나 논리학자들은 생각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의 체계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 체계는 정교함을 더해갔지만, 육체의 감옥을 없애지는 못했다. 

구글은 데카르트가 실패한 프로젝트를 부활시켰다. 인간 해방이 구글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했다. 지구상의 모든 데이터를 모았다. 구글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스캔했고, 인터넷에 퍼진 데이터를 집대성했다. 그 후 그것을 분석했다. 사람들의 이동 경로와 인터넷에 머무르는 시간 등을 분석해 정치 성향을 알아냈고, 투표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했다.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태어날 아기의 미래도 알아냈다. 헤아릴 수 없는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제 인간의 무의식 속에 원하는 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철학이 하지 못한 일을 테크놀로지가 완성할 것이다.

반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딸아, 구글의 시작을 기억해라. 우리 목표는 인간을 육체로부터 해방시켜 신이 허락한 최고 이성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완벽한 목적이 있었으므로 구글 경영진에게 법이나 선례 따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인류에게 옳은 일이었으니까. 구글이 행한 모든 불법은 데카르트의 순수이성에 의해 정당화한다.  

이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다이애먼디스가 말하지 않았니. ‘이런 진행에 저항하는 사람은 진화에 저항하는 셈이다. 진화에 저항하는 개체는 결국 사멸하게 되어 있다.’ 딸아, 너 혼자 막을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1시간 전 ‘인지조작허가법’에 관해 반대하는 글을 썼더구나. 이제 그만하거라. 구글은 너를 CEO 후보에서 제외했다. 괜찮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 하지만 이후 ‘교란자’로 분류되면, 아비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모든 문명의 이기에서 배제된 채 무얼 할 수 있단 말이냐. 아비를 봐서라도 부디 인간다운 삶을 살거라. 

“메시지가 끝났습니다.” 

▲ 정보기술(IT)을 넘어 데이터기술(DT) 시대다.인공지능 전문가이자 데이터 저널리스트 메러디스 브루서드는 인공지능이 고도화할수록 '인간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pixabay

-메시지
아버지, 구글은 데카르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철학적 질문을 모두 내다 버렸습니다. 데카르트는 회의와 의심을 강조했지만, 구글은 귀찮게 두 번 생각하지 않았죠. 인간 해방을 테크놀로지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겼지만, 이 프로젝트가 인간에게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도 답하지 못했어요.

“로디, 이 글을 그대로 해쉬로그에 올려.” 
“관리자 모드로 변경됐습니다.”

-메시지
위 내용은 세계를 분쟁으로 내몰 가능성이 98%에 이르는 매우 위협적인 게시물임을 공지한다. 현시간부로 ‘수지 페이지’는 S등급에서 ‘교란자’ 등급으로 변경되었음을 알린다.


편집 : 정소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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