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하산 미나즈의 이런 앵글’

넷플릭스에서 <하산 미나즈의 이런 앵글>을 클릭하면, 이목구비 뚜렷하고 수염을 기른 청년이 육각형 무대를 긴 다리로 겅중대며 돌아다닌다. 손을 흔들며 무대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앉은 청중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시사 코미디언 하산 미나즈다. 2017년 백악관 기자단 초청 만찬에서 트럼프의 반이민정책, 러시아 대선개입 의혹 등을 풍자하고, 넷플릭스 <하산 미나즈의 금의환향>이 성공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데일리 쇼>를 이끌었던 존 스튜어트나 그 후임인 트레버 노아처럼, 그는 코미디언이면서 시사를 진중하게 다루는 언론인이다. 코미디쇼 간판을 걸고 날카롭게 시사 현안을 비판한다. 

▲ <하산 미나즈의 이런 앵글> 포스터. 속도감 있고 다채롭게 세계를 ‘프레젠테이션’하겠다는 포부가 보인다. ⓒ Google

‘애국’에 도전하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이 프로그램의 원제는 <Patriot Act with Hasan Minhaj>. 직역하면 ‘하산 미나즈와 함께 하는 애국자법’이다. ‘애국자법’은 수사 당국의 권한 확대를 골자로 하는 법으로, 2001년 9.11 테러 직후 입안됐다. 법 통과 후 개인 인권 침해 논란이 일자 2015년 폐지했다. 2016년 통과한 우리나라 ‘테러방지법’과 유사하다. 

프로그램 기획자이기도 한 프리젠터 하산 미나즈는 부모가 이민자인 인도계 미국인이자 무슬림이다. 9.11과 애국자법 시행 이후 미국 내 무슬림들은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았다. 지금도 공항에서 자주 '무작위' 보안 검사에 걸린다. 승객 중에서 무작위로 뽑아 집중 검사를 한다는데, 유독 터번을 쓴 사람이 많이 걸리는 식이다. 일상적인 차별과 경계의 대상이다. 이 프로그램 제목은 그러한 차별과 편견을 향한 정면 도전이다. <하산 미나즈의 이런 앵글>이란 한국판 제목은 이런 배경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쉬운 번역이다.

앵커가 아닌 리포터 혹은 발표자

프로그램 기본 구성은 간단하다. 미나즈는 뒤에 파워포인트 화면, 앞에 관중을 두고 선다. 소재를 하나 제시한다. 유람선 여행, 당뇨약, 대학등록금 등 일상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사안을 주로 다룬다. 가끔 국제 이슈도 다루는데, ‘왜 우리(미국인들)가 이 일을 알아야 하는지’ 꼭 설명을 덧붙인다. 제시어 하나에서 사회가 앓아온 구조적 병폐를 한 계단씩 차례대로 드러낸다. 

미국 시청자들은 심야 코미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진행자가 앵커처럼 책상을 두고 앉아 자료화면을 옆에 띄워놓고 뉴스를 전하는 그림을 떠올린다. 다만, 진행자는 차분하게 정돈된 말투를 쓰지 않는다. 화내고 비웃고 소리 지른다. 진행자가 감정을 분출하면서 현장 분위기도 덩달아 달아오른다. 앉아서 방송을 보는 시청자와 한마음이 되어 정치인들을 ‘씹는다’. 심야 시간대에 주로 편성하는 만큼, 맥주 한잔 마시면서 보기 적합한 방송이다. 

▲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공석에서 자신의 부를 과시하자, <데일리 쇼> 진행자 존 스튜어트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 Comedy Central

<이런 앵글>은 <데일리 쇼>나 그와 비슷한 시사 풍자 프로그램과 다르다. ‘편성 시간대’ 자체가 없는 넷플릭스 콘텐츠이니 야밤에 술 마시면서 보는 프로그램일 필요가 없다. 각 회차 재생 시간은 30분이 안 된다. 각종 코너로 채울 필요도 없다. 따라서 심층적 보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짧고 굵게 끝내는 것이다. 85년생 밀레니얼 코미디언인 미나즈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스튜어트라면 분노했을 대목에서, 미나즈는 황당하지 않냐는 듯 실소한다. 또 매회 방송 말미에 문제 개선 방향을 제시할 뿐,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관중과 진행자의 관계도 결이 다르다. 대체로 환호를 보내지만, 발표 내용에 의문이 들거나 농담이 지나치다고 판단하면 멈칫하거나 가볍게 야유한다. 미나즈 역시 당황하지 않고 “잠깐만, 들어보세요”라며 설명을 덧붙인다. 시청자를 카리스마로 휘어잡지 않고, “한번 생각해봐요”라고 침착하게 제안한다. 그는 소식을 전하는 리포터이자 심층 토론으로 이끄는 발제자다. 

‘쇼양’이 대세라지만, ‘시사풍자’가 실종된 사회

이렇게 미국에서 예능과 시사교양 사이 줄타기를 하는 ‘시사 쇼’ 실험이 다양하게 시도되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는 왜 과감한 포맷의 ‘시사 쇼’가 오래 가지 못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KBS2 <개그콘서트>를 맡았던 서수민 PD가 정치∙시사를 풍자하는 코너를 방송에 내보냈다가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SNL> 정치 풍자 스케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를 국회의원이 직접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소한 일도 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를 편파적으로 묘사한다는 이유였다. 

▲ 정치 풍자 스케치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배우 김슬기가 맡았던 캐릭터 '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풍자해 화제가 됐다. ⓒ tvN

한국에서 풍자 코미디는 기획하기 힘들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엄숙’과 ‘진지’를 구분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다. 풍자 코미디는 진지하게 이슈를 파고들어 엄숙을 깬다. 사람들이 금기시하거나 어렵게 느끼는 영역을 사람들 눈높이, 또는 그 아래로 끌어내린다.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굴곡진 현대사를 지나치며 권위에 도전하는 방식마저 ‘엄숙’해야 한다고 믿게 된 걸까? 적절한 유머와 은유를 구사하는 정치인은 사랑받지만, 코미디언이 시사를 소재 삼는 건 모험이다. ‘감히 코미디언 따위가’ 정치를 평론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코미디언은 모두에게 즐거운 이야기만 해야 하는데,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고. 

코미디언은 원래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파악하고 그걸 다른 각도에서 보도록 인도하는 사람이다. 웃음은 안도에서 나온다. 다시 생각에 빠진다. 왜 우리에겐 진솔한 안도를 안겨주는 코미디언이 없는가? 왜 한국 방송계는 그런 코미디언을 키워내지 못했을까?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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