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장애인’
내가 입대한 9월 날씨는 가을보다 여름에 가까웠다. 훈련은 뜀걸음부터 시작하는데 아침부터 내의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훈련병이라 내의를 빨래할 시간도 제한됐다. 그마저 손빨래였다. 자취할 때 세탁기만 사용해본 나는 처음 하는 손빨래가 어색했다. 내의에 빨랫비누를 고루 묻히는 일부터 헹구는 일까지 손으로 하다 보니 쉬운 게 아니었다. 세탁기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훈련소 기간에 어쩔 수 없이 내의 두 벌을 아껴 입으며 버텼다. ‘장교는 물론 기간병 숙소에선 세탁기가 놀고 있는데…’
급속한 문명 발달로 인류가 누리는 혜택은 급증했다. 10여 년 전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출시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편리한 휴대성 덕분에 어디서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한 사람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 내 손 안의 모바일로 또 다른 세계를 펼칠 수 있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면 음식을 만들어주는 로봇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가 더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편리함을 누리고 있을까? 아직 모바일 티켓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이나 시각장애인은 터미널이나 음식점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법조차 모른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휴게소 가운데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를 설치한 데는 28%밖에 안 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용 키오스크는 아예 없다. 보통 사람에게는 정말 편리한 기계가 다른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편리함은 무차별적이지 않다.
물질과 공간 면에서만 배려가 없는 게 아니다. 교육과 취업 등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말로는 ‘공존 사회’라고 하지만 장애 학생과 일반 학생을 분리해 교육하고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지난 9년간 법정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장애인 혜정과 비장애인 혜영 자매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하는지 물음을 던진다. 혜영은 ‘혜정의 언니가 된다는 것은 내가 된다는 걸 포기하는 것이었다’며 한국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장애인 가족의 형편을 부각했다. 기술 발달로 이룩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우리 의식은 예전 그대로다. 아니, 인성과 공감능력은 오히려 후퇴한 듯하다. 혜영이 혜영임을 포기하게 만든 건 혜정을 배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다. ‘배려’(配慮)는 말 그대로 짝을 생각하는 것이다. 장애인을 가족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들의 짝이 되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편집 : 권영지 기자
단비뉴스 황진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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