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공영방송 거버넌스 어찌할 것인가

‘방송 장악’.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공영방송 KBS 사장 선임 과정에는 항상 정부 코드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공영방송 보도는 이 당이 집권하면 저 당이 편파방송이라 하고, 저 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 당이 편파방송이라 한다. 각론만 바뀐 채 반복되는 이 논란의 근본 원인은 공영방송 운영의 의사결정 구조를 결정하는 ‘거버넌스’에 있다.

공영방송 거버넌스는 이사회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와 사장 선임을 어떻게 하느냐로 대별된다. KBS 이사회는 11명 이사 중 7명을 여당이 추천한 인사로 채운다. MBC 지분의 70%를 가지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9명 중 여당 추천 인사가 6명이다. EBS는 방통위가 9인을 임명한다. 그러나 방통위원 임명 구조가 대통령과 여야의 몫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EBS 이사 선임에도 정치권의 영향이 미친다.

이런 구조는 사장 선임 방식으로 이어진다. KBS는 이사회 제청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한다. MBC 사장은 방문진 이사회가 추천하고 선임한다. EBS는 방송통신위원장이 위원들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공영방송 3사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곧 공영방송의 운영은 결국 의회의 영향력 아래 있다. 그 영향력은 여당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공영방송 보도를 정치에 종속시킨다. 정부와 여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사 선임 방식, 이사회 구성 비율, 사장 선임 방식 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 현재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정치권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는 구조다. ⓒ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

20대 국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정안 분분

20대 국회에 발의된 공영방송에 관한 법률과 관련 개정안은 방송법 95건, 한국교육방송공사법 18건, 방송문화진흥회법 16건이다. 이 중 공영방송 거버넌스, 즉 이사회 구성, 사장 선임, 편성책임자와 감사 인사 등에 관한 개정안은 10개 정도다.

대표발의자 소속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 4건, 정의당 2건, 바른미래당 2건, 자유한국당 2건으로 나타난다. 민주당 개정 발의안은 공영방송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여야 간 이사회 구성비를 조정해 여 7, 야 6으로 하고, 사장임면에 3분의 2 동의를 얻도록 하는 방안에 초점을 두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낸 2개 발의안은 KBS와 EBS 모두 이사 추천을 ‘한국방송공사, 한국교육방송공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추천국민위원회’에 일임하도록 하자는 게 특징이다. 현재 방통위가 임명하는 EBS 사장을 EBS 이사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수정하는 안도 포함됐다. 바른미래당의 2개 안 역시 공영방송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한편, KBS 사장의 전문성 검증을 위한 절차를 도입하자는 안이 포함됐다. 자유한국당의 2개 발의안은 방문진을 감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과, KBS 이사를 지방정부와 9개 사회단체가 추천하도록 하자는 강효상 의원 개정안이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결정방식을 조금 더 공정하고 경합적인 여야 정당 간 경쟁으로 바꾸자는 쪽이 민주당 안이고, 정당의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하자는 게 정의당과 자유한국당 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유형···한국은 정치종속적 신흥국형

집권당과 정부의 영향을 줄이는 것, 정치권이 고루 공영방송 운영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지금의 구조보다 공정한 거버넌스 개선 방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 거버넌스에 정치권이 꼭 관여해야 하느냐, 곧 정치세력의 후견주의를 배제할 수 없느냐는 문제의식도 가능하다. 세계적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공영방송 거버넌스 사례가 있다.

핼린과 만치니는 대중매체의 시장 규모, 정치조응성의 양태, 언론의 전문직화 수준, 국가나 정부에 의한 미디어 개입 양식 등 4대 변수를 중심으로 자유주의, 민주적 코포라티즘, 분극적 다원주의라는 세 가지 미디어 시스템 모형을 추출했다.

자유주의 모델은 영국과 미국 등의 미디어 모델로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해 법률에 의한 권위와 전문직적 성격을 강화한 모델이다. 영국 BBC가 모범 사례다. 독일이나 북유럽의 미디어 시스템은 민주적 코포라티즘으로 분류된다. 다당제에 기반한 합의제 정치문화, 잘 조직된 시민사회에 기반한 높은 정치조응성을 보인다. 분극적 다원주의 모델은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포착되는 양상으로 특정 정치 엘리트 세력과 높은 정치조응성을 보이며 법합리성이 낮고, 방송의 전문직화 수준도 낮다.

정준희 교수는 여기에 한국, 남미, 동유럽 등에서 보이는 ‘신흥민주주의 모델’을 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모델은 분극적 다원주의 모델과 비슷하지만, 미디어의 전문성, 온건하고 중도적인 다원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 핼린과 만치니는 세 가지 미디어 시스템 유형을 제시했다. 사진은핼린. ⓒ Mediaflows

공영방송의 공정성, 공공성을 결정짓는 요인은 정치가 얼마나 공영방송에 개입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켈리는 정치 관계성을 기준으로 공영방송의 유형을 정치종속형, 정치수용형, 정치절연형 세 가지로 구분했다. 정치종속형 거버넌스는 행정부와 정치적 다수파의 직간접적 통제가 정당화한 형태다. 한국은 여기에 가깝다. 정치수용형 방송은 의회모형과 시민모형이 있는데, 의회나 시민사회의 권력분점이 공영방송 거버넌스에 그대로 이식되는 형태다. 시민모형이 독일과 북유럽의 코포라티스트 모형이다. 정치수용형 거버넌스는 의사결정이 합의제로 이뤄진다. 하지만 형태만 분점적이고 의사결정은 다수주의적이라면 정치종속형 거버넌스와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지는 정치절연형 거버넌스는 중립성 원칙과 직업적 전문성에 대한 신념, 이에 관한 사회적 신뢰에 기반을 두고 정치세력과 절연하는 형태다. ‘독립성’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BBC의 설립 근거는 ‘왕실칙허장’이다. 이를 제정하는 권한은 ‘국왕권(Royal Sovereignty)’에 있다. 현대에는 이 권한을 정부가 실질적으로 행사하므로,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다.

하지만 이사회와 사장 선임에서 정치 다수파에 의한 후견주의는 보이지 않는다.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이 각자 우위에 있을 때 연관된 인사가 선임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들이 정부와 집권당의 이해에 복무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오히려 정권에 각을 세우다 사퇴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말하자면 정치절연형 거버넌스는 공식적 법∙제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정치문화, 조직문화, 사회규범 같은 비공식적 메커니즘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국 공영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

▲ KBS와 MBC 노조가 2017년, 고대영 KBS 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한국 공영방송 거버넌스가 지향해야 하는 형태는 어떤 것인가? 한국 공영방송은 권위주의 시기 정치종속형 거버넌스에서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화 흐름에 따라 자유주의적 모델, 정치절연형 공영방송을 지향해왔다. 이후 일정 부분 진전하다가 2010년대 보수정부에 의해 다수주의적 측면이 강화돼 현재에 이르렀다 볼 수 있다. 현재 국회 계류중인 민주당의 공영방송 거버넌스 발의안은 보수정부 아래 생긴 ‘퇴행’을 교정해 ‘방송 장악’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정당간 추천비율 조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정치 엘리트들에게 결정권이 독점된다는 한계가 있다. 의회는 국민의 대의기구이지만, 국민 여론과 이해를 모두 담지 못한다. 특히 한국 정치의 양당제적 성격으로 국민의 의사가 비례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특정 정치세력의 후견주의적 개입을 차단하고, 공영방송 운영에 공공성의 원천인 시민의 의사가 잘 반영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계류 개정안에도 있듯, 편성규약과 편성위원회에 관한 방송법 관련 조항을 강화해 편성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보도와 제작에 관한 외부의 개입을 범죄로 다룸으로써, 공영방송의 법합리적 권위를 세워야 한다.

이사회 구성에도 시민사회 의사가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계층, 직능 대표 등이 이사회 구성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시청자위원회 등 시민참여 기구의 권한과 역할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BBC 사례에서 보듯,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은 제도로만 보장되지 않는다. 제도 개혁과 더불어 시청자와 국민이 공영방송이 건강함을 유지하도록 감시해야 더 좋은 공영방송을 만들 수 있다.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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