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들의 시선] ⑥

한국사회는 정치적 이념, 소득과 계층, 세대에 따라 상반된 두 얼굴의 모습으로 대립하고 있다. 자신만의 주장을 앞세운 채 서로 대화하지 않으며 심지어 상대 진영을 극단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내 탓이오’ 운동으로 함께 살아갈 공동체운동은 불가능한 것인가? [청년기자들의 시선] 세 번째 주제는 ‘한국사회의 두 얼굴’이다. ‘노동, 밥, 1%, 플라스틱’ 네 키워드로 한국사회의 상반된 양면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키워드 셋, 플라스틱>
사람들은 미세 먼지, 기후 변화 등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작 생활에서는 잘 실천되지 않는다. 지구적 환경 문제 해결에서 개인의 행위는 초라하고 때로는 유난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8년 한 해 플라스틱은3억6천만톤 생산됐는데, 한 사람이 재활용하는 9g짜리 일회용 페트병이 환경 문제 해결에 무슨 실효를 거둘까?

행동이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환경에 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언어는 넘쳐나지만, 대응하는 행동은 부족하다. ‘의식과 행동의 괴리’에는 조화하지 못한 ‘행동’과 ‘구조’라는 양면이 있다.

행동 -창의적인 재활용

환경부는 5년마다 종량제 봉투를 직접 뜯어보는 방식으로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를 벌인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한 사람은 하루 929.9g의 쓰레기를 버린다.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 등 재활용 가능 자원은 306.5g, 약 33%이다. 반면,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린 쓰레기는 225.4g, 27%인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플라스틱 등으로 재활용을 위해 분리배출해야 하는 자원이다. 분리수거하는 양의 절반 가까이를 분리수거하지 않는다. 재활용하는 양의 절반을 재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이 창의성을 발휘하면 버려진 페트병도 재활용할 수 있다. 창의적 발상은 가치 없는 쓰레기에 새로운 쓸모를 준다. 이태원 골목에서 두 집 사이 전선을 연결하는 데 페트병 반쪽을 잘라 활용한 것을 보았다. 난잡한 전선을 정리해 비바람에 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반쪽 페트병을 쓰레기라고 할 수 없다. 쓰임새가 분명하다. 디자인은 부차적이다. 최초 용도와 무관하게 새로운 용도를 고안하는 게 ‘창의성’이다.

▲ 이태원 골목에서 만난 페트병 활용 사례. 창의성을 발휘한 행동은 쓰레기를 줄인다. ⓒ 이정헌

페트병을 전선 연결에 재활용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심하며 설계도를 그렸을 리 없다. 그저 순수한 필요성과 약간의 직관으로 페트병을 재활용했을 뿐이다. 환경을 보호하려는 의도나 지구 환경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다만, 쓰레기를 보는 시선만큼은 분명히 다르다. 다른 시선이란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을 가욋일쯤으로 여기는 생활의 관성과 쓰레기는 가치가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스스로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다.

구조 - 대량소비 사회

창고형 대형 할인마트는 대량소비를 이끄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대량소비는 ‘환경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소비와 생산은 선순환을 이룬다. 대량소비가 대량생산을 만들고, 다시 대량소비를 낳아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선순환 구조는 유려한 물결과 같아서, 우리는 어떤 고민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담가왔다.

대량 쓰레기 발생에는 책임자도 없다. 환경 문제의 책임 소재는 쓰레기가 버려지는 순간 허공에 표류한다. 흩어져 있는 수많은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 개인들인, 우리는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 소비한다.

▲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에서 대량소비의 주체인 개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개인의 행동과 구조의 소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 Pixabay

환경 문제의 양면은 ‘구조와 행동’에 있다. 페트병을 창조적으로 재활용하는 개인의 행위는 행동의 영역이다. 쓰레기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소비만 권장하는 사회는 구조의 영역이다. 압도적인 소비 구조 앞에서 개인 단위의 창의적 재활용 행위는 사소하게 치부될 수 있다. 그렇지만 구조와 행위는 결코 별개가 아니다.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대량소비 체계와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개인의 창의성을 연결해야 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구조에 개입하는 정책 없이 개인의 창의만으로 환경 문제를 대처할 수 없고,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개인의 창의성과 실천없이 ‘대량소비체계’를 개선할 수는 없다. 개인의 행위나 의식개혁은 구조 개선과 함께 할 때 효과가 있다. 반쪽 플라스틱 페트병 사진 한 장에서 지구 환경 문제를 돌아본다.

(이정헌 기자)
 

<키워드 넷, 1%>
축산업계가 돼지열병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돼지열병은 치사율 100%이고 전염성이 강하다. 당국은 방역 차원에서 돼지열병 발생 농가 3km 반경 내에 모든 돼지를 살처분한다. 이미 10만 마리 넘는 돼지가 살처분됐다. 살처분 방식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다. 살처분에 투입된 공무원과 실무자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끊임없이 축산업계의 전염병과 살처분 조처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돼지 사회의 99%와 1%

돼지 사육에도 양극화가 심각하다. 밀집 사육되는 돼지 99%와 울타리 사육되는 돼지 1% 사이에서 삶의 질은 천지 차이다.

공장식 축산은 인간의 욕심이 반영됐다. 돼지는 1평도 안 되는 스톨(stall; 쇠틀)에서 오로지 인간 식탁에 오르기 위해 사육된다.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를 물어뜯지 못하도록 새끼돼지 때 꼬리를 자르고 이빨을 뽑는다. 밀집사육 돼지에게 성욕은 사치다. 수퇘지는 마취도 없이 거세당한다. 암퇘지는 새끼 낳는 기계다. 암퇘지는 출산 1주일 뒤 배란 호르몬 주사를 맞아 배란 주기를 앞당긴다.

태어난 새끼 돼지는 6개월 뒤 도축된다. 돼지들은 개보다 후각과 촉각이 발달했지만 악취 나는 음식물을 먹어야 한다. 먹는 것마저 고통이다. 질병을 방지하기 위해 항생제 투여는 기본이다. 돼지열병 사태로 돼지에게 음식물 잔반을 주는 건 금지됐지만 항생제 투여는 여전하다. 투여된 항생제는 사람 몸에 들어온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값싼 육류 섭취를 위해서다. 무한리필 고깃집이 흔한 이유다.

▲ 공장식 축산에서 길러지는 돼지. 스트레스와 전염병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 KBS

동물복지를 고려한 울타리 사육농장에서는 돼지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는다. 우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친환경에서 자라며 넓은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 공장식 축산 돼지와 다르게 꼬리가 보인다. 이빨도 뽑지 않는다. 면역력도 강해 전염병이 돌아도 생존율이 높다. 항생제도 투여하지 않아 먹거리로도 건강하다.

한국 동물복지 농장은 대부분 계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란계 농가다. 전체 돼지농가 중에서 돼지 동물복지 농가는 0.2%에 불과하다. 유럽과 미국 여러 주에서는 가축이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불법이다. 유럽은 2012년부터 닭을 가두는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에서 닭을 키우지 못하게 했다. 2018년부터는 돼지의 외과적 거세를 금지했고 거세가 필요하면 수의사의 마취가 필수다. 동물복지 농장은 무분별한 살처분을 예방할 수 있다. 사육환경이 개선돼 쉽게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열병이 심각해지자 한국에서도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이 대두되고 울타리 사육이 언급됐지만, 돼지 가격이 오른다며 금세 관심이 사라졌다.

1%가 되어야 할 99%

▲ 울타리 사육농장에서 길러지는 돼지. 동물복지도 보장되고 먹거리도 안전하다. ⓒ YTN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복지가 보장된 울타리 사육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동물복지 농장에서 나오는 고기는 비싸다. 사육비용이 증가해 값싸게 육류를 즐기지 못한다. 사실일까? 동물복지 농장보다 저렴해 보이는 공장식 축산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들어간다. 밀집된 공간에서 너무 많은 가축을 키우다 보니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처리에 과다한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이 대부분 세금으로 충당돼 지금까지 문제되지 않았을 뿐이다. 전염병에 걸려 살처분되는 가축에 지불되는 막대한 보상금 비용도 간과됐다. 환경처리비용, 살처분비용, 방역비용을 합치면 연간 3,000억원 이상 든다. 정부가 이 비용을 동물복지 농장 전환에 투입하면, 99% 돼지가 1% 돼지의 복지를 누릴 수 있고 전염병과 먹거리 공포를 잠재울 수 있다. 돼지사육 양극화 해소 없이는 전염병과 살처분, 먹거리 위기 순환구조는 해소되지 않는다. 돼지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

(박두호 기자)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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