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㉗

▲ 이재형 박사

우리 마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이 지구에는? 사람 수를 세는 것은 통계의 한 출발점이었다.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은 언제까지 살아계실까? 이런 궁금증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더욱 커졌을 것이다. 수명에 관한 궁금증 해소는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경제, 그리고 국가 운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보험회사가 새로운 생명보험 상품을 만들 때 잠재적 가입자들이 몇 살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은 필수 정보다. 많은 국민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도 가입대상자들의 생존연령을 제대로 예측해야 건전하게 운용될 수 있다. 주택정책, 교육정책, 보건복지정책 등을 만들 때도 장래 인구수와 생존연령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합리적인 정책을 개발할 수 있다.

17세기의 신산업 ‘생명보험’

17세기 유럽에서 새로운 산업이 출현했다. 바로 생명보험 사업이었다. 사람들은 젊을 때 보험이나 연금에 가입해 일정 기간 돈을 규칙적으로 불입하고 나이가 들면 보험회사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받아 노후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얼마나 보험료를 받고 보험금을 내줄 것인가 하는 가격조건은 보험회사와 보험가입자 간에 이해가 상반된다. 보험회사는 가능하면 보험료를 많이 받고 보험금은 적게 지불하려는 유인이 있으며, 보험가입자는 그 반대다.

이 계약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려면 보험가입자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 것인가, 즉 기대여명(期待餘命)이 얼마인가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그런데 생명보험이 처음 나온 시대에는 인간의 기대여명이 얼마인지 아무도 몰랐다. 주먹구구식으로 보험료 불입액을 결정하고 보험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생명보험은 보험회사나 가입자 모두에게 일종의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는 핼리혜성을 발견한 영국의 천문학자이다. 그는 뛰어난 수학자로서 연금을 계산하려면 사람들이 살고 죽는 기간을 정리한 수표(數表)가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표를 만들려면 매년 사람들의 출생과 사망에 관한 정보가 필요했다. 핼리는 런던과 파리의 출생과 사망 자료를 겨우 얻어 출생과 사망을 정리한 표를 만들려고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대도시는 인구이동이 빈번히 이루어져 출생한 사람과 사망한 사람 간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핼리 혜성의 발견자 에드먼드 핼리는 천문학자이자 뛰어난 수학자였다. ⓒ Pixabay

폴란드 소도시에서 탄생한 생명표

그러던 중 핼리는 우연히 폴란드의 작은 도시 브레슬라우(Breslau) 시 시민들의 탄생, 결혼, 사망에 관한 기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도시는 인구 이동이 거의 없어 핼리는 이 자료를 이용해 최초로 생명표를 만들었다. 핼리가 만든 브레슬라우 시 생명표의 일부를 잠시 보면, 1687년에 1,186명이 태어났는데, 이들 가운데 1년을 생존한 사람이 940명(79%), 5년을 생존한 사람이 708명(60%) 등으로 나타났다. 생명표는 사람들의 연도별 탄생수와 사망수를 토대로 사람들이 평균 몇 살에 사망하는가를 정리해 평균 기대여명을 계산한 것이다.

▲ 핼리가 정리한 브레슬라우 시의 연도별 출생과 사망자 수. ⓒ 이재형

우리는 평균수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평균수명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그해 사망한 사람들의 나이를 평균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실은 평균수명이란 그해 태어난 아기들의 기대여명을 말하는 것이다. 2017년도 생명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수명이 79.7세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7년에 태어난 아기는 평균 79.7년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평균수명이란 것은 해당연도에 태어난 아기에게 적용되는 것이므로, 이미 오래전에 태어난 우리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연령별 기대여명이다.

19세 남성은 80세, 여성은 87세까지 산다

연령별 기대여명은 어떻게 될까? 올해 대학에 입학한 만 19세 청년은 앞으로 남자는 61.1년, 여자는 67.1년 정도 더 살 수 있다. 즉, 남녀 각각 평균 80세, 87세까지 산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경로우대 대상이 되는 65세 시민은 기대여명은 남자는 18.6년, 여자는 22.7년으로 각각 84세, 88세까지 사는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우리나라에서 생명표가 처음 만들어진 1970년과 가장 최근 생명표인 2017년을 비교해보면 47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1970년의 우리 국민 평균수명은 62.3세였는데, 2017년에는 82.7세로 20년 이상 늘어났다. 1970년에 태어난 아기 100명 중 4명은 1년을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에 견주어 2017년에 태어난 아기는 1,000명 가운데 3명 정도가 1년 이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에 65세였던 분, 즉 을사늑약이 있었던 1905년에 태어난 분들은 100명 중 57명이 65세까지 살았다. 그런데 2017년에 65세였던 분들은 100명 중 91명이 살아남았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의 연장을 잘 보여주는 숫자다.

20년대 후반부터 우리 인구 감소 예측

통계청에서는 생명표를 매년 새로 작성한다. 인간의 생존은 사회와 자연환경, 의학과 과학기술 등 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이런 요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생명표를 작성하는 데는 별도로 조사를 하지는 않는다. 사망원인통계, 주민등록자료, 사망자수 등 여러 기존 통계자료를 활용해 생명표를 만들어낸다. 생명표는 앞으로 우리나라 인구 변화를 예측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다. 장래 인구는 신생아 출생률과 생명표가 있으면 자동으로 계산된다.

앞으로 우리나라 인구는 어떻게 변할까? 지금은 출생률이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지만, 평균수명 연장과 가임 연령대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근소하나마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2020년대 후반쯤을 정점으로 우리 인구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주택, 교육, 연금 등 많은 면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지만 인구감소의 영향이 이런 부분적인 영향으로 그칠 것인가? 우리의 가치관, 공동체, 사회구조, 정치·경제·사회에 관한 인식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떤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수명 연장 일등공신은 ‘깨끗한 물’

20세기 들어 전세계적으로 인간의 수명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으며, 그중에서도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특히 길어졌다. 인간 수명이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의학 발달을 첫 손가락으로 꼽고, 그 외에도 세균학 등 과학의 발달, 영양상태 개선,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 연장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깨끗한 물 공급’ 곧 ‘상수도 보급’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수돗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양동훈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