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 중앙일보 ‘386의 나라 대한민국’

 ‘각종 혜택·특혜 속 승승장구한 386세대’

 ‘노태우 정부 주택 200만호 건설의 최대 수혜자’

 ‘국가적 재앙 외환위기도 386 세대엔 전화위복’

√ ‘취업 땐 '3저호황' 퇴직 앞두고 '정년연장'···불로장생 386’

386세대가 우리 앞에 다시 소환됐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언행 불일치’라는 화두가 386세대의 위선과 기득권 논란으로 확산되면서, 이들을 향한 논쟁적 메시지가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 <중앙일보>는 지난 9월 ‘386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창간기획] 기사를 23편 연속 보도했다. ⓒ 이정헌

386세대 ‘특혜’만 부각하고 공로는 무시

<중앙일보>는 9월 23일부터 30일까지 ‘386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창간기획] 기사를 23편이나 연재했다. <중앙>은 시리즈 1편 ‘대한민국은 386의 나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386세대를 대한민국의 주요 포스트를 장악하고 ‘장기집권’하는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1960년대에 출생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지금 50대들이 대기업 임원 72%와 국회의원 44%를 점유하는 등 우리 사회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386세대는 졸업정원제 덕분에 수월하게 대학에 입학했고, 주택 200만호 공급의 수혜를 누리며 중산층으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 갓 입사한 세대라 당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이뤄진 구조조정도 피했고, 선배들이 퇴직한 빈자리를 메우면서 빠른 승진을 하는 등 수혜를 누렸다고 지적한다. 이런 배경으로 386세대가 승승장구해 기득권이 돼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그들이 기여한 공로는 물론 양극화 사회를 개선하려고 부족하나마 노력한 점은 전혀 부각하지 않았다.

<중앙>은 386세대가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결과적으로 후속 세대의 기회를 축소하고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386세대가 ‘헬조선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헬조선’은 20~30대 청년들이 ‘열심히 노력해도 살기 힘드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함축하는 용어다. <중앙>은 이를 ‘세대간 불평등’의 맥락으로 풀이하며 386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아’서 후속세대가 피해를 본다는 논지를 편다.

<중앙>이 지적한 ‘기득권’이란 말은 부정적인 맥락에서 많이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기득권’의 의미를 ‘특정한 자연인, 법인,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은 ‘정상적이지 않거나 정당하지 않은 방법과 수단으로 먼저 차지하고 있는 권익’이란 의미가 강하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한다는 의미로 확장된다. <중앙>은 이 [창간기획]에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기득권’ 개념을 동원해 ‘386세대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 1980년 5월 ‘서울의 봄’ 시위 현장은 386세대가 주도한 군사독재청산과 민주화 투쟁의 절정으로 기록됐다. ⓒ KBS

‘모호하고 고약한 개념’ 386세대

<중앙>이 제기하고 있는 ‘386 기득권’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중앙>이 제기한 대상이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중앙>은 우선 대학시절 운동권 출신으로 지금 정치권에 진입해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386세대’의 행태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그것이 마치 1960~69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비쳐지게 하고 있다. ‘생계형 386의 비극…암흑의 시대가 사교육 큰 손 만들었다’, ‘386하면 떠오르는 단어? 1위 민주화투쟁, 2위 내로남불’ 등 ‘운동권 출신 정치권 386’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대부분인데 마치 이것이 이 세대 전부의 문제인 양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386은 학번, 출생연도라는 생물학적 기준으로 정의된 세대지만 여기엔 ‘386=민주화운동 세대’라는 암묵적 등식이 깔려 있다…거악을 척결했다는…집단 경험은 세대 전체를 하나로 결속하는…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 모두가 ‘민주화 세력’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취업할 땐 ‘3저 호황’ 퇴직 앞두고 ‘정년 연장’···불로장생 386)

<중앙>은 아예 내놓고 386 세대 전체가 자신들을 ‘운동권 출신 정치권 386’과 동일시한다는 논지를 편다. 그러나 시리즈의 다른 기사에서는 386세대를 다르게 규정한다.

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일컫는 말로 80년대 민주화 운동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한 진보성향의 집단이란 뉘앙스가 담겨있는 용어.(창간기획 여론조사 질문지)

여기서 말하는 ‘민주화 운동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한 진보성향의 집단’은 주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 일부를 지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대학진학률이 30% 전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취업현장으로 들어간, 70% 가까운 386세대의 다른 사람들은 ‘억울한’ 지적과 비판을 받고 있는 셈이 된다.

세대 개념은 동년배 무리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다. 세대는 단순한 출생 연도부터 집단적으로 공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특징은 보통 그 세대를 지칭할 때 일반화해서 규정하는 것일 뿐 그 세대 구성원 각자가 전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세대’는 굉장히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고약한 개념’이 된다. 연령으로 묶인 세대와 정체성으로 규정된 세대가 뒤섞여 사용돼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 견인하는 50대 ‘세대 때리기’

문제는 정체성으로 규정된 아주 좁은 범위의 ‘세대’가 사회적 지탄을 받아 국민의 심판대로 소환될 때, 연령으로 묶인 세대 전부가 줄소환돼 책임을 추궁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앙>의 386시리즈는 ‘정체성’으로 규정된 세대의 부분적인 현상을 비판하면서 ‘의도적으로’ 연령으로 묶인 세대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386세대는 대학진학률이 평균 30%에 불과한 데다 운동권은 극소수였다. 개인의 정체성도 가변적이어서 ‘과거의 생각과 성향’으로 ‘현재와 미래의 생각과 성향’을 규정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19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권 386세대의 문제를 이 세대 전체의 문제인 양 확장한 데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싼 보수 진보 간 대치 상태의 여론 지형에서 ‘조국 지지’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 386세대인 지금 50대란 점을 겨냥한 ‘세대 때리기’란 의문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를 움직이고 있는 핵심인사들과 남북평화, 탈원전 등의 주요 정책 지지층이 50대란 점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불평등의 세대> 저자인 이철승 교수는 채널 예스 인터뷰에서 “세대는 아주 불분명한 범주”라며 ”분석의 단위로 쓰기에는 너무 커서 애매한 측면이 분명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이현상 논설위원의 ‘그냥 386은 억울하다’는 칼럼을 실어 반론을 해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균형 맞추기일 뿐 전반적으로는 교묘하게 ‘세대 갈라치기’ 또는 ‘세대 때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과연 386의 나라인가?

<중앙>이 모호하게 세대 개념 흐리기를 하면서 비판하고 있는 386세대의 문제점과 행태는 과연 사실일까? 386세대가 특혜와 기득권을 누렸다는 지적부터 살펴 보자.

<중앙>은 기업 임원 72%, 국회의원 44%가 386세대라며 ‘대한민국은 386의 나라’라고 지적했다. 386이 한국 사회의 주요 포스트를 독점하고 기득권이 돼 있다는 주장이다. 386세대는 정확하게 1960년에서 1969년까지 태어난 세대로 지금 50~59세인 사람들이다. 최근 기업들의 인사정책을 보면 임원 연소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대응하고 경영혁신과 세대교체를 통한 기업 활로 개척 차원에서 진행돼 온 변화다. 그전에도 기업 임원은 당연히 50대가 주축을 이루었고 지금은 거의 모든 임원이 50대다. 40대와 60대는 많지 않다.

국회 구성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사회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일정 연륜을 갖춘 뒤에 진출하는 곳이다. 정부와 기업의 고위직 출신, 법관∙검사∙변호사 등 법조인이 정계에 진출하려면 50대 전후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대 총선 당선자들의 연령별 분포에서 50대 비율은 13대 46%, 14대 59%, 15대 54%, 16대 59%, 17대 39%, 18대 47%, 19대 47%, 20대 53%였다. 지금 20대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원들은 3년 전 당선 때는 53%였으나 지금은 44%로 줄어들었다. 과거와 견주면 50대 국회의원의 비율이 특별히 높은 것이 아닌데 마치 386이 국회를 거의 다 차지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중장년층의 대규모 실직이 발생했다. ⓒ KBS

20-30대에 박탈감 안겨 세대갈등 조장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책임이 크고 일이 많은 핵심 중추역할을 맡고 있을 뿐, 기득권을 누린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중앙>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요직을 독점하고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포장해 20-30대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성을 교묘하게 건드리고 있다. 20-30대의 박탈감을 부추겨 세대간 갈등을 유발하고 그들이 386세대를 때리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앙>이 지적한 ‘386 세대가 대학 입시에서 특혜를 누렸다’는 ‘졸업정원제’는 ‘쉬운 입학, 어려운 졸업’이라는 취지로, 과외 시장 과열을 식히기 위한 정부 정책 변화의 결과이지 386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조처는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군사정권이 대학 졸업을 까다롭게 만들어, 대학생들의 관심을 학생 시위에서 학교 공부에 묶어 두려는 정치적 의도로 취한 조치란 해석이 유력하다.

주택 200만호 공급은 80년대 후반부터 올림픽(1988)과 3저(엔저∙저금리∙저유가)에 따른 호황으로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런 정책의 결과로 386세대가 혜택을 받았을 수는 있지만, 투기 또는 투자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집값이 올라 386세대 중에서도 기회를 잡지 못한 이가 많았다.

<중앙>은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으로 중장년층의 대규모 실직이 발생할 때 386세대는 피해 갔고, 선배들이 나간 빈자리를 차지하고 고속승진을 한 것도 거론했다. 이 역시 386세대가 주도해 선배들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뿐이다.

‘현대차도 인천공항도…비정규직의 적은 386정규직 노조’ 기사도 계층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적 기사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전세계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슬로건 아래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386세대인 지금 50대는 정규직이 대세인 상황에서 취업을 했고 그들이 만든 노조는 어쩌면 정규직 중심의 노조일 수밖에 없다. 또 정규직 중심 노조는 50대뿐 아니라 40대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지금 20-30대는 비정규직이 대세가 되어가는 시대에 ‘취업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갈등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양자간 대결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중앙>은 이처럼 정치적으로 무당층화 또는 보수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20-30대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취업∙주거∙비정규직 문제를 집중해서 다루면서 이런 분야에서 386세대가 ‘특혜’를 받고 공유해야 할 사회적 자산을 독점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처럼 부각하고 있다. 그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20-30대와 다른 세대가 집단적인 386세대 때리기를 하도록 유도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 ‘386 때리기’ 되풀이

▲ <중앙>은 2003년 2월 12일에도 ‘386 운동권 세대’ 때리기 기획 시리즈를 내보냈다. ⓒ 이정헌

<중앙>의 ‘386 때리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더욱 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중앙>은 16년 전 현 정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의 출범을 앞둔 2003년 2월 ‘운동권, 신주류로 뜬다’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내보냈다. 당시 <중앙>은 1편 기사에서 ‘운동권이 신주류로 뜬다’며 노무현 정권 핵심부에 386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진출했다고 한 뒤, 2편 ‘반미(反美)로 집권해 경제에 발목’, 3편 ‘386 주사파서 젊은 피 최측근으로’란 기사를 통해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386세대 인사들을 ‘반미 주사파’로 부각했다.

이제 범운동권 네트워크를 모르고는 사회 변화를 제대로 읽기 어렵다. 사형을 선고받았던 사람이 정무수석으로 내정되고, 공안당국이 주사파(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세력)로 분류했던 사람이 당선자의 '최측근'이다. (2003.2.12 <중앙> 기획취재 ‘운동권, 신주류로 뜬다’)

새로 출범하는 정권을 구성하는 인사들의 면면과 특징을 소개하는 것처럼 하면서 ‘386 때리기’를 통해 보수진영에 경계령을 발령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색안경 못 벗은 운동권 보도’란 비평 기사를 통해 ‘마치 진보세력이 사회의 모든 부문을 휩쓸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과잉보도’라며 ‘보수-개혁 갈등을 부추기는 식으로 보도해 진보 진영의 부상을 경계하는 보수 세력을 대변해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중앙>은 앞서 2002년 12월 26일, ‘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하자 인수위를 두고, ‘변혁의 열정이 넘쳐난다’면서 ‘인수위가 국정을 학문적 실험대상으로 삼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노무현 정권 후신인 문재인 정권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보수∙진보 갈등과 대립구도가 형성되자, <중앙>은 다시 386 때리기를 통해 ‘진보’를 견인하는 50대 운동권 출신을 고립시키고 보수정치 부활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악이란 결코 진부하거나 평범하지 않으며 고도의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지금 유튜브 등을 이용한 가짜뉴스 제작과 유포 행위는 평범하지 않을뿐더러 고도로 계산된 ‘범죄’이며 건전한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주범’이다. 기성 언론 중에도 사실확인보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매체가 많다. 이들은 잘못되면 ‘오보였을 뿐’이라면서 의도성을 감춘다. 이에 성역 없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가 명백한 가짜뉴스뿐 아니라 ‘무리한 흑백논리’ ‘일반화 오류’ ‘인과관계 오류’ 등 진실과 거리가 먼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편집자)

편집 : 이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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