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권석천 논설위원 초청 특강

“내부자들이란 영화가 극단적으로 과장했지만 사실 (권력집단이 서로 봐주는) 그런 구조가 계속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검찰만 개혁한다 해서 될 게 아니고 언론도 개혁되어야 하고, 정치도 개혁되어야 하는 그런 상황인 거죠.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이라고 내놨지만, 검사들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이 다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제왕적 권력을 그 내부에서도 행사하고 있는 것이죠. 사법농단도 대법원장이 모든 권한을 갖고 제왕적으로 하는 것이었죠. 일부 언론사에도 제왕적 권력이 내부에 또 있고, 정당도 마찬가지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도 사실 몇몇 제왕들이 주고받고 거래하면서 이뤄졌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일 오후 5시 서울 대학로 민송아트홀에서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주관으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초청 특강이 열렸다. ‘사법개혁과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권 위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일어난 ‘부산 법조비리 은폐사건’을 예로 들어 “판사의 비리를 덮기 위해 법원행정처가 나서고 언론의 보도를 청와대 정무수석이 막았다”며 “(권력자들이 결탁해 끼리끼리 봐주는) 영화 ‘내부자들’의 상황이 현실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가혹한 수사에 대한 분노’가 불지른 검찰개혁 요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제정임 원장이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 이날 특강에서 권 위원은 최근 서울 서초동에서 이어진 ‘검찰개혁’ 시위에 대해 ‘가혹한 수사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결집된 것’으로 해석했다.

 
▲ 18일 서울 대학로 민송아트홀에서 열린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 특강에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과 ‘사법개혁과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 김서윤 신수용 윤상은

“저 개인적으로는 사실 조국 전 장관이 수사 과정이나 그 전에 의혹제기 됐을 때 보였던 모습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아 심란했습니다. 하지만 서초동에 나오신 시민들은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보면서 자기 일처럼 생각하셨던 게 아닌가,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다’ 생각을 하신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전에는 없었던 거거든요. 학계나 정치권에서 검찰 개혁을 얘기했지, 시민들이 모여서 검찰개혁을 구호로 얘기했다는 건 한국역사에는 없던 장면이라서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조 전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교수를 검찰이 서둘러 기소한 것에 대해 “기소는 수사가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인데 검찰이 계속 수사 중이라고 하면서 기소한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18일 열린 정 교수 관련 첫 공판에서 검찰은 방어권 행사를 위해 수사기록을 보여 달라는 변호인 요구에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권 위원은 “검찰이 사문서위조 혐의의 공소시효가 만료된다는 이유로 서둘러 기소했는데, 더 중대한 범죄인 업무방해 등의 공소시효가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권 위원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관련, 과도한 구속수사 관행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검찰은) 구속을 시키고 나중에 무죄가 나와도 크게 신경을 안 쓴다”며 “무죄가 많은 검사가 출세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유는 ‘얼마나 능력이 있으면 무죄가 나올 사안인데 구속을 시킬 수 있었나’라는 것이라고 권 위원이 설명하자 청중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피의자 구속이 검사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검찰 문화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은 무시되고 인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피의사실공표죄 무시하고 ‘흘리는’ 검찰, ‘받아쓰는’ 언론

 
▲ 권석천 논설위원 특강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과 외부 언론인지망생, 현직기자 등 80여명이 참석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열띤 질문 공세를 폈다. ⓒ 김서윤 신수용 윤상은

“최근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논란들 중에 언론이 너무 검찰 얘기를 받아쓰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있죠. 그런 말은 제가 법조 출입을 시작한 30여 년 전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반복되는 거 보면 한국 언론이 참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 위원은 검찰에 처음 취재하러 나갔을 때 경쟁 매체에 엄청나게 ‘물을 먹고(낙종)’ 혼비백산했던 경험을 털어 놓으며 “그때도 검찰에서 뭘 듣느냐에 따라 정말 기자들의 하루가 아니라 평생이 오고 가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검찰이 한두 매체에만 정보를 몰래 흘려주고, 단독 보도가 나가게 하는 방식은 ‘밴드왜건(Bandwagon)’처럼 앞에서 소리를 엄청 내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면서 ‘여론재판’의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그는 피의사실공표죄를 무시하고 이렇게 흘려주는 정보는 피의자의 인권과 방어권을 침해하는 ‘불량식품’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언론이 여기 매달리는 대신 ‘공식 브리핑제도’와 ‘발로 뛰는 현장 취재’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탄희 전 판사가 찾아와 시작된 ‘두 얼굴의 법원’ 인터뷰

지난 8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사건을 다룬 책 <두 얼굴의 법원>을 낸 권 위원은 이날 특강에서 이탄희 전 판사가 자신을 찾아와 인터뷰를 부탁한 사연 등 출판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로 발령받은 이탄희 전 판사는 ‘법관 뒷조사 파일(블랙리스트) 관리’ 등 부당한 지시를 받은 뒤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는데,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등 사법농단의 전모가 단계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권 위원은 “이 책을 쓰면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 온 법조계 인사들과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부담과 고민이 컸지만 결국은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으니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니죠. 구속이 끝이 아니라 재판에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사법개혁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시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 거래’를 통해 5년씩이나 지연시킨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고령의 원고 9명 중 8명이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음을 지적하며 “(사법개혁이 되지 않으면) 재판이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계속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란법’과 ‘주52시간’ 시대, 기자는 달라져야 한다

 
▲ 강연이 끝난 후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참가자들이 권석천 위원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김서윤 신수용 윤상은

“기자들이 길게 쓰고, 깊게 쓰는 노력을 해야 해요. 취재 방식의 변화도 이뤄져야 하고요. 자기 생활이 달라져야 하는 거죠. 이건 기자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문제고, 언론사에서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걸 상품으로 만들자는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선순환이 일어나면 전체 언론계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약 1시간의 대담 식 특강에 이어진 청중 질문 시간에 권 위원은 답변을 통해 ‘언론 개혁을 위해 기자들이 노력해야 할 점’을 제언했다. 그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주 52시간 노동제’가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 위원은 “김영란법 시대에는 옛날처럼 취재원과 술 마시고 뭐를 주고받고 그러면서 취재할 수 없고, 주 52시간 노동제에서는 남는 시간동안 혼자 공부하고 전문성을 쌓는 노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중 5일 일하고 주말 이틀에는 예컨대 매주 1건의 심층 인터뷰를 하거나 공부를 해서 전문성을 높임으로써 취재원이 찾아오고 전화하게 만드는 기자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매주 재판정에 취재를 가는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젊은 기자들이 직접 와서 매일 취재하고 디지털 뉴스로도 만드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노력들이 모여 저널리즘의 변화를 만들고, 언론의 신뢰성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사가 끝난 후 나종인(26·기자지망생)씨는 “알고 있던 언론인 중 가장 균형 잡힌 시선으로 글을 쓰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강연 들어보니까 과장 없이 사실로만 비판을 하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연구소는 오는 11월 1일 오후 2시 충북 제천 세명대 학술관 102호에서 임장원 KBS 보도본부 디지털뉴스 주간을 초청,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뉴스 전략’을 주제로 특강을 이어간다.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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