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이명주 교수 ‘제로에너지 건축’ 시민 강연

“우리나라 건축물 대부분이 시공비를 아끼려고 값싼 내단열로 지어져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일러 때고 에어컨 켜고, 공기가 답답하니 청정기 돌리고 어떤 집은 산소공급기까지 달죠. 이런 화석연료 에너지 과소비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입니다.”

15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청 2층 대회의실에서 이명주(53)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의 ‘이롭고 지속가능한 노원 이지하우스’ 강연이 열렸다. 경기도 에너지복지팀이 주최하고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과 경기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이 주관한 ‘에너지 프로슈머’ 연속특강의 하나인 이날 행사에서 이 교수는 국내 최초 제로에너지 실증 주택단지인 노원 이지하우스를 설계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후위기시대 건축의 방향을 제시했다.

싸구려 건축이 낳은 에너지 낭비와 건강 위협

▲ 국내 최초 제로에너지 실증주택단지인 ‘노원 이지하우스’를 설계한 이명주 명지대 교수가 “건축물의 에너지 과소비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윤종훈

이 교수는 우리나라 아파트 등 주택 대부분이 콘크리트 벽면 안쪽에 단열재를 붙이는 값싼 방법으로 시공해 냉난방 에너지 소비 증가를 낳고 결과적으로 내부 결로(이슬 맺힘)와 곰팡이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곰팡이는 지름 10마이크로미터(㎛) 미만인 미세먼지 입자”라며 “집에 곰팡이가 있다는 건 미세먼지 안에서 산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이 2015년 8월부터 1년간 지름 2.5㎛ 이하 초미세먼지를 관측한 연구결과를 보면 초미세먼지의 발생원인 중 1위가 난방(39%)으로, 자동차나 건설기계 비중보다 높았다. 집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공기순환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머물고, 내단열로 발생하는 곰팡이가 퍼지면서 각종 호흡기질환과 비염, 두통 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 교수는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 통계자료를 인용, “서울시의 경우 건물이 전체 에너지소비의 53.2%, 온실가스발생량의 72.4%, 전력사용량의 83.2%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고 각종 기후재난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건물에 있다”며 건축 관련 종사자와 건물주 등의 각성을 촉구했다.

▲ 건축물은 전체 에너지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시의 경우 건물이 전체 에너지소비의 53.2%, 온실가스발생량의 72.4%, 전력사용량의 83.2%를 차지할 정도다. ⓒ 이명주

이 교수는 ‘에너지 개념 없는 건축물’의 사례로 유리건물을 꼽았다. 그는 “1951년 세계 최초 유리건물인 영국 수정궁(the Crystal Palace)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된 유리건물은 보기엔 화려하지만 에너지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서울시가 조사한 ‘서울시 에너지 다소비 건물 현황’을 보면 에너지 사용량 1위로 꼽힌 서울대 등 많은 건축물이 사면을 유리로 덮고 있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유리건물을 많이 짓는 이유에 대해 “건축자 입장에서는 공사비가 싸고 시공도 빨리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심미적으로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값 떨어질까 봐 흠 있어도 숨기는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 있는 많은 집에서 동파(얼어서 터짐)가 일어나고 곰팡이가 생기고 그러는데도 왜 지금까지 바뀌지 않을까요? 단열 핑계 대지 마세요. 다 우리 모두 잘못이에요. 집이 소유물이고 재산이니까 흠이 있어도 숨기는 거죠. 집값 내려가니까.”

이 교수는 “지난해에만 폭염 사망자가 48명이고 그 중 33퍼센트가 집에서 숨졌다”며 “이제 시민 개개인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면서 쾌적한 주택에 살 수 있도록 '주거권'에 대한 의식을 정부와 함께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원 이지하우스의 에너지절감효과를 설명한 뒤, 외부단열 등으로 열손실을 최소화하는 패시브(Passive) 기술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자체 전기를 생산하는 액티브(Active) 기술을 결합한 제로에너지하우스(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주택)를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 2017년 말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들어선 국내 최초의 에너지제로 공동주택 노원 이지하우스. 빈틈없는 단열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한편 건물 외벽 등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과 지하 지열시설에서 전기 등 전체 세대가 요구하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 임지윤

이 교수는 “노원 이지하우스의 경우 건물 바깥벽에 외단열을 철저히 하고 삼중유리 시스템창호와 외부 블라인드, 열 회수형 환기장치 등을 설치했다”며 “냉난방을 틀지 않아도 집 내부 기온 유지가 가능하고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못생긴 태양광 전지판, 대중성 있는 디자인이 과제

“노원 이지하우스를 처음 지을 때 ‘철갑을 두른 아파트’니 ‘태양광으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아파트’니 얘기가 많았어요. 이 아파트가 쓰는 에너지 대부분을 이 아이들(태양광)이 생산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말 못 해요. 효자 노릇 하는 거죠.”

이 교수는 노원 이지하우스를 포함, 자신이 노원구에 설계한 9개 제로에너지 건축물 사진을 보여주며 “흉물스럽게 보일 수 있는 태양광을 대중성 있게 디자인하는 것이 앞으로 계속 해나갈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건물의 동서남쪽과 하늘 등 어느 방향이든 태양광 전지판을 디자인만 예쁘게 해서 달면 모든 면에서 태양을 추적하며 전력생산량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 이명주 교수가 리모델링한 서울 강동구청 건물. 이 건물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은 ‘선사시대 움집 모양으로, 관련 유적이 있는 강동구 특성을 잘 살렸다’는 평가와 함께 2018년 ‘자치구 디자인 태양광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 이명주

‘살기 위한 기계’에서 ‘살기 위한 발전소’로

이 교수는 ‘인간을 위한 건축’으로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제가 약 100년 전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고 한 말을 이제 “주택은 살기 위한 발전소다”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주택의 경제적 기능과 효율성을 강조했다면 이제는 집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프로슈머(Prosumer) 역할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정책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건축물이 제로에너지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소개한 뒤 “앞으로 땅값, 집값 얘기만 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직접 에너지 생산까지 하는 ‘플러스에너지 주택’을 고민하자”고 말했다.

▲ 이명주 교수의 제로에너지 건축 강의에 ‘에너지 프로슈머’ 시민 교육생과 기후활동가, 공무원 등 27명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윤종훈

강연에 참석한 변요수(55·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원)씨는 “에너지 문제가 기후변화라든지 환경이라든지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됐다”며 “특히 노후에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에너지 판매로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유익했다”고 말했다. 행사를 준비한 정상숙(57·경기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간사는 “제로에너지 건축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지원책이 나와서, 시민 모두가 에너지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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