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제주어 알리는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
틀린 말은 없다. 다른 말이 있을 뿐. 한때 한국 사회에서 지역어는 ‘틀린 말’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하면서다. 30년째 방언 연구를 하고 있는 정승철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방언의 발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일본어 중심의 교육을 하되,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인에게는 제한적인 조선어 교육을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 서울말을 표준으로 정했고, 사투리는 ‘교정해야 할 비공식적인 언어’가 됐다. 1980년 이후에는 표준말 쓰기 운동과 방송심의 규정 제정 등으로 이어져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표준어로 지위를 굳혔다. 대중매체는 지역어를 쓰는 사람을 몰상식하게 그리거나 희화화 했다. 9일 한글날과 2019년 ‘세계 토착어의 해’를 맞아 사라지고 있는 지역어의 현실을 제주어에서 짚어보고 대안을 찾아봤다. <편집자> |
‘제주어의 미래’가 된 합창단원들
제주시 옛 제주대학병원에 자리잡은 ‘예술공간 이아’ 지하 연습실에는 주말마다 제주 문화를 제주 언어로 노래하는 어린이들이 온다. 4년 전인 2015년 9월에 창단한 ‘어린이 문화외교관’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이다. 만 7~13세로 구성된 이들은 제주어로 해녀문화, 4.3 등 제주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가 알려주면 돼요. 중요하고 사라지면 안 되는 소중한 언어니까요. 친구한테도, 서울에서 놀러 온 어른에게도 제가 노래로 알려줄 거예요.”
지난달 28일 제주에서 <단비뉴스> 취재진과 만난 양서윤(10)·서진(8) 자매(영상)는 단원들과 노래 연습을 하며 제주어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2016년부터 제주어를 배우기 시작한 자매는 제주어 구사 실력이 여느 어른 못지않다. 제주 문화를 향한 관심도 생활 속에 제주어가 자리잡으면서 절로 따라왔다. 다른 합창단원들도 비슷했다. 지역 어른조차 기억 못하는 제주어를 놀이처럼 노래로 부르고 그 뜻을 익히니 제주의 삶과 정신은 자연히 어린이들에게 스며든다. 이위동(11) 군은 “해녀의 물질과 4.3 이야기를 알게 해준 제주어는 신비의 언어”라며 “친구에게도 알려주고 싶고 점점 제주에 흠뻑 빠지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다”고 제주어 자랑을 늘어놨다. 제라진합창단은 소멸 위기 제주어와 제주의 미래였다.
편견과 언어 환경 변화가 소멸 초래
올해는 ‘세계 토착어의 해’다. 위기에 놓인 토착어는 어느 나라나 고장에서 본디부터 써온 말로 지역어라 부르기도 하는데, 유엔이 이를 보존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선포했다. 한국에도 다양한 지역어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제주어는 지난 2010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4번째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등재돼 보존과 교육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제주어는 5번째 ‘소멸한 언어’ 직전 단계다.
10년이 흘렀지만 대다수 제주도민들은 제주어가 ‘소멸 위기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지난해 제주어연구센터가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진행한 조사에서 도민 63.7%(잘 모른다 17.6%, 알지 못 한다 46.1%)가 ‘모른다’고 답했고, 전문가는 96%가 ‘알고 있다’고 답하며 격차를 드러냈다. 제주도 방언집 발간, 제주어 표기법 제정, 제주어 말하기 대회, 제주어 주간 등 지역어 보존을 위한 노력들은 하고 있지만, 지역민이 체감하고 문화적 정체성의 유지와 지속가능한 언어 사용을 늘리려는 직접적인 노력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미디어의 노력과 교육 등 대중화 방안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어 전문가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주학연구센터 김순자 전문연구위원은 “국어교육을 하듯 각 지역의 교육당국에서 초·중·고·대학 심지어 유치원부터 정규 교과과정에 지역어 교육을 넣어야 방언뿐 아니라 우리 국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을 가르칠 젊은 선생님들도 제주어를 모르는 만큼 교사를 위한 교육과 연구자 육성 등 지역어 정책이 이어지도록 행정과 교육 당국의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지역어 많아도 큰 문제 없어
“조상들이 사용한 언어잖아요. 후손들이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요?”
11년 전 중국 하얼빈에서 제주로 온 유춘금(49) 씨는 어린 아들에게 제주어 교육을 하는 이유를 일종의 ‘외국어 교육’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한국어지만 지역 언어를 안다는 것은 지역의 경험과 삶까지도 알게 되는 것”이라면서 “지역마다 언어가 다르면 불편함은 있겠지만, 세상을 보는 관점이 지역 언어처럼 다양해질 수 있다”며 제주어 교육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서 지역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큰 갈등도 없고 특정 지역어를 사용하는 이에 대한 편견도 없다”고 했다. 실제 중국은 인구 90% 이상이 한족의 지방언어를 사용하고, 55개 소수민족 언어가 있다. 이방인인 그의 눈에 한국의 지역어는 정겹고 신기했지만, 여행업을 하며 전국 곳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지역어 사용을 기피하고 편견도 심하다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지역어가 사라지는 다른 이유는 언어 환경 변화가 꼽힌다. 전통사회 언어인 지역어가 최근 기술 발전으로 농업 등의 전통 농법 언어들까지 사라지면서다. 가령 제주에서 해녀들이 물질 뒤 나눠주는 것을 ‘게석’이라 하는데, ‘나눠주고 베푼다’는 의미의 단어가 해녀 수 감소와 함께 사라지는 것과 같다.
김순자 전문연구위원은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사이에 언어 환경이 바뀌었다”며 “미디어를 통한 잘못된 인식 변화와 지역어 교육이 지금부터라도 진행되지 않는다면 지역어 소멸 속도는 점차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년 전 제주학연구센터가 중고생을 대상으로 생활 제주어 120여개 어휘 인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학생들이 아는 단어는 20여개도 안 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어 사용자의 가장 젊은 나이대가 70대였던 점으로 미뤄 지금은 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어는 지역의 삶과 정신
여전히 사투리 교정학원은 존재한다. 지역의 특색 있는 억양은 취업 등의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교정’의 대상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5년마다 실시하는 ‘국민의 언어인식 조사(2017)’에 따르면 표준어를 사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4.5%로 5년 전과 비교해 7%p 상승했지만, 지역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19%로 2010년 28.6%에 비해 9.6%p 낮아졌다. 지역어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약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tvN <응답하라 1994>를 시작으로 미디어에서 유명 배우들이 지역어를 정겹게 사용한 점도 한 몫한다. 전라남도 광주 송정시장의 사투리 고백 엽서가 인기를 끌고, 지역 마다 ‘사투리 말하기 대회’와 ‘사투리 사전 만들기’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작품 중 ‘사라지는 제주 방언을 지키기 위한 브랜드 디자인’도 변화하는 지역어 인식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면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언어는 정체성의 일부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집단이 공유하는 역사와 시대,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역어가 사라지면 지역 정신도 함께 사라진다. 제주어연구소 강영봉 이사장은 “사라지는 것은 언어만이 아니라 지역의 시각과 풍부한 문화 관습, 세계관도 포함된다”며 “지역 문화는 언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기에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우리 국어도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편집 : 오수진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오수진입니다.
어둠은 이해 못할 빛이 있다는 걸 안다.
희망은 그 작은 불빛 하나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