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을 망친 사람들] ⑨ 김재철 전 MBC 사장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던 지난달 16일 오후 청와대 앞 광장. 황 대표보다 나이가 많은 60대 후반 남성이 난데없이 튀어나와 황 대표 앞에 무릎을 꿇고 ‘황비어천가’를 외쳐 참석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오직 나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임진왜란 때 생각하면 됩니다. 강 앞에 서서 죽느냐 사느냐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가 ‘황교안’ 하면 ‘황교안과 같이 간다’ 세 번만 외쳐 주십시오.”

이 남성은 “MBC 사장 최승호가 적폐냐, 김재철이가 적폐냐, 묻고 싶다”고 한 뒤 털썩 무릎을 꿇고는 ‘황교안을 세 번 외쳐 달라’고 한 것이다. ‘조국 퇴진’ 시위에 ‘황교안’을 외치는 것도 황당한데 무릎까지 꿇는 모습에 일부 참석자들은 “뭐야, 누구야”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수군거림 속에 그가 김재철 전 MBC 사장이란 것이 확인되자 “그러면 그렇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난데없이 무릎 꿇고 ‘황비어천가’

▲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지난달 1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삭발식에서 연설하면서 무릎을 꿇고 있다. ⓒ <미디어오늘>

사람이 어떤 상대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무조건 복종이나 굴종을 의미한다.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시키는 대로 복종하고 따르겠다며 자신을 종으로 바치는 것이다. 언론인이 상대가 그 누구든 무조건 복종하고 엎드려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나팔수요 앞잡이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날 김 전 사장이 보여준 행태는 MBC 기자로 출발해 이명박 정권 때 사장까지 지낸 언론인으로서 굴절된 역정과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권력자 앞에 무릎 꿇고 ‘용비어천가’를 부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가 MBC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이명박 정권 출범을 전후해서부터다. 그전까지는 기자로서 특별히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것이 없이 국제부장 등 비요직 부서장을 거쳐 보도제작국장을 역임했지만, 보도국장 등 핵심 보직은 맡지 못했다.

▲ 2010년 4월 13일자 <MBC노조 총파업특보>. 익명의 조합원들이 김재철 사장과 관련된 의혹 등을 제기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그랬던 그가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떠오르게 된 것은 그 전부터 꾸준히 정치권과 깊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MBC 내부 관계자들 증언이다. 기자 시절부터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김재철은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오직 정계 진출만을 꿈꿨던 사람이다. 기자로서는 ■■■했고, 하루 종일 ‘줄’을 잡기 위해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이 사람이 원하는 건 오로지 정계 진출을 위해 필요한 MBC 사장 타이틀이 전부다.” (2010년 4월 13일 자 <MBC 총파업특보> ‘김재철을 바라보는 보직 부장과 고참 사원들의 한마디’)

MB 친분으로 사장 올라 반MB 보도 통제

김 전 사장은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로 알려졌다. 그가 모친상을 당한 2007년 9월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가 바쁜 시간을 쪼개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MBC 사장 공모에 나섰으나 노조가 그의 한나라당 행사 참여 사실을 공개하면서 반대 투쟁을 벌여 선임에 실패했다.

김 전 사장은 2010년 2월 다시 공모에 나서 사장이 된 이후 완전히 공영방송 MBC를 정권의 방송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장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 홍보수석과 수시로 청와대 인근 음식점에서 만난 사실이 노조에 의해 폭로될 정도로 청와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 전 사장은 자신이 ‘한나라당 및 이명박 정권과 유착됐다’는 이유로 노조가 2010년 3월 39일간 취임 반대 파업을 벌이자 당시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해고하면서 MBC 내 반 이명박 세력 정리에 나섰다.

당시 MBC는 이명박 정부가 휘청거릴 정도로 ‘비판적이거나 불편해할 기사나 작품’을 많이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PD수첩>의 광우병 특집은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이 의심되는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다’고 보도해 그 여파로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한 해 동안 촛불집회가 이어져 정권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어 2009년 1월 용산 철거민 참사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용역 깡패를 동원했다고 보도하고, 그해 6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는 추모 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고 보도해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09년 2월 용산 참사 보도와 관련해 MBC가 과잉진압, 전국철거민연합에 용산 철거민이 함께한 배경, 중재 역할을 제대로 못 한 용산 구청과 용역의 문제점, 무분별한 재개발정책 등 본질적인 보도를 통해 언론의 기본적 역할에 충실했다며 지상파 3사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정권 비판 프로그램 방영 금지, 제작진 해고

이런 상황에서 2010년 2월 사장으로 취임한 김재철 사장은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나 프로그램을 폐지 축소하고 관계자들을 전출시키는 등 강력한 보도통제에 나섰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추진 과제였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 비판하는 <PD수첩>의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을 방영하지 못하게 하고, <PD수첩> 팀원들을 비제작 부서로 전출시키거나 해고했다. 2008년 <PD수첩> ‘광우병’ 편을 제작한 조능희 PD(당시 CP)는 사회공헌실로, 송일준 PD(당시 진행자)는 미래전략실로 내보냈다. 지금 MBC 사장인 최승호 PD는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김 전 사장은 또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 씨를 중도 하차시켰다. 2010년에 김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출연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강경하다’는 지적을 한 것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PD수첩> 포스터. 김재철 전 사장 임기 동안 이 프로그램 주요 제작진은 해고나 인사조처를 당했다. ⓒ MBC

공영방송을 '정권방송’으로 만든 주역

김 전 사장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축소, 뉴스데스크 시간대 변경 등에 반대한 노조 조합원들을 비제작 부서로 전출시키고 부당하게 해고했다. <파업채널M>이 2012년 9월 20일에 게시한 글에 따르면, 당시 김재철 사장이 제작부서에서 내쫓은 징계·교육·부당전출자는 130여 명에 이른다.

<PD수첩> 한학수 PD는 경인지사로 발령내 지역 ‘왕갈비 축제’를 기획하게 하고, 2012년 파업 이후에는 MBC아카데미로 보내 ‘브런치’를 만들도록 했다. 그는 <PD수첩> <MBC스페셜-아프리카의 눈물>을 제작했고,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권성민 PD는 부당한 인사조처에 반발하는 웹툰을 그렸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2012년 파업을 주도한 이용마 기자는 해고 뒤 암과 싸우다 지난 8월 21일 유명을 달리했다.

‘언론 대학살’이라 할 만큼 정권 입맛에 맞춰 비판적인 보도를 통제하고 비판적인 기자나 PD들을 비제작 부서로 내쫓고 부당해고를 한 것이다. 2012년 6월 23일 <뉴스타파>는 MBC의 대량해고를 “80년 전두환 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언론 통폐합 사태 이후 단일 언론사로서는 최대”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해서 공영방송 MBC를 ‘정권방송’,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켰다.

이런 김 사장의 폭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서 김 전 사장 해임안이 발의됐으나 2012년 3월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이를 두고 당시 민주통합당 한명숙 의원은 2012년 11월 청와대와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 의원은 “김재철 사장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 장악을 위해 서로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관계를 유지해왔고, 지금 (이 관계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 MBC 사장 때는 정치 활동

김재철 전 사장은 정치권과 유착해 MBC 사장에 오른 뒤 보은을 위해 공영방송 MBC를 ‘정권방송’을 만들고 자신이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았다. 기자 시절부터 정치적 야심을 채우려고 언론인의 직분과 지위를 악용해 정치권과 유착해온 그는 지역 MBC 사장 시절에는 내놓고 정치 활동을 하고 지역관리를 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고향인 경남 사천의 지역 활동에 정성을 쏟았다.

김 전 사장은 울산MBC 사장 시절인 2010년 4월 23일 사천·삼천포 통합 신청사 개청식에도 참석했다. 사천 바로 옆 진주 MBC 사장도 참석하지 않은 자리였다. 지역 MBC 사장 시절 회사 간부 워크숍을 사천에서 열어, 간부들로부터 “너무 노골적”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또 관할 지역 행사에 사천 주민들을 초청해 세 과시를 하기도 했다. 그해 4월 현직 언론인이 정치 활동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고향은 쉬러 가는 곳일 뿐”이라고 부인했지만, 그는 2014년 새누리당 경남 사천시장 경선에 출마해 낙선했다.

▲ MBC 노동조합이 김재철 전사장이 지역 MBC 사장 시절 ‘지역구 챙기기’ 활동을 했다고 수집 공개한 내용. ⓒ <파업채널M>

김재철이 망친 MBC의 오늘

김재철 전 사장이 부임하기 전 MBC는 ‘2009년 가장 신뢰받는 언론매체 1위’였다. 당시 <시사저널>은 다른 매체에 비해 권력에 대한 감시를 비교적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이 취임 기간과 퇴임 후에 MBC는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시사IN>이 2012년 주요 언론매체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MBC의 신뢰도는 6.9%로 김 전 사장 취임 전 3분의 1 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김 전 사장이 남긴 부당 인사조처의 후유증은 2017년 MBC가 정상화하기 전까지 악영향이 계속됐다. 이우환 PD는 2011년 <PD수첩> ‘남북경협 중단, 그후 1년’ 결방에 항의하고, 2012년 파업에 참여한 것 등을 이유로 비제작 부서로 쫓겨났다가 2014년에는 세월호 사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경영진과 갈등을 빚다가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발령 났다.

파업에 참여했던 임명현 기자는 당시 경험을 토대로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MBC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냈다. 그는 이 논문에서 MBC가 파업 참가자들을 보도 인원과 비보도 인원으로 나눠 연대감을 파괴했고, 교육프로그램으로 모멸감을 줘 사원들을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기자들은 회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잉여 인간이 될 것을 강요당했고, 협조한 사원과 파업한 사원 사이에 갈등 관계가 형성됐다. 기자들에게는 퇴사하거나, 저항하거나, 회사에 따르거나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장기간 탄압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길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영방송 기자로서 올바른 저널리즘을 수행하려는 의욕을 잃어버렸다. 김재철 전 사장이 망쳐 놓은 MBC의 실상이다.

현직 언론인이 정치권에 굽실

김 전 사장은 MBC 퇴사 뒤 본격적으로 정계로 나서 정치 활동을 하다 2018년 11월 뉴스경남·한남일보·경남N(유튜브 방송) 회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다시 언론으로 복귀했다. 그는 “회장으로 취임하지만 대기자로서 현장에서 뛰며 경영과 취재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한남일보> 알림을 보면, 그는 대기자 및 특별취재팀장으로 취재팀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뉴스경남> <한남일보> 홈페이지에서 그의 이름으로 달린 기사는 찾을 수 없다. <경남N> 유튜브 채널은 현재 사라진 상태다.

그런 그가, 현직 언론의 타이틀을 달고 야당 대표 앞에 무릎을 꿇고,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며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한국 언론인의 자존심을 짓뭉개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영향권에 있는 매체들이 논조를 180도 바꾸는 사례를 수없이 보면서 시민들은 ‘언제 우리도 BBC 같은 공정한 언론을 갖게 되나’라는 염원을 품어왔다. 사실 언론 독립은 제도의 문제인 동시에 언론인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언론에는 저널리즘의 표준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언론인이나 이데올로그 행세를 하면서 언론을 망치거나 출세의 도구로 악용하는 이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기성언론은 비판의식과 윤리의식 부재 또는 동업자의식 때문에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을 피하려 한다. 성역 없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가 한국 언론을 망친 이들의 행적과 보도태도를 추적하고 고발하는 장기기획을 시작하는 이유다. (편집자)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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