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현장] ‘검찰개혁’ 100만 집회

의회정치와 정당정치가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거리의 정치’가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극우 성향 정치인들은 ‘서초동 집회’를 막말로 비난하는 데 앞장서고, 기성언론은 ‘검찰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 목소리가 높은데도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비영리 대안언론 <단비뉴스>가 시민정치의 현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한다. <편집자>

“민심이 폭발했다.”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기만 했는데 여기 나와보니 속이 다 후련하다.”

집회 주최 측도 참가자도 예상을 10배 이상 뛰어넘는 엄청난 인파에 고무됐다. 2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집회에는 전국에서 10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려 검찰개혁을 향한 국민적 열망을 표출했다. 주최 측 추산 150~200만 명은 좀 과장됐을 수도 있지만 반포대로 누에다리(구름다리) 인근에서 시작된 거대한 군중은 8차선 도로는 물론 양쪽 인도를 완전히 점거한 채 연단이 가설된 검찰청사 앞을 지나 서초역 네거리에서 예술의 전당 쪽과 교대역 방향 등으로 총연장 2Km 정도 이어졌다.

서초역 포기∙∙∙고속터미널∙교대역 하차

지하철 서초역에서는 내리기조차 힘들어 집회 참가자들은 고속터미널역과 교대역에서 하차해 집회장으로 향하는가 하면 서초역 네거리에서 반포대로와 만나는 서초대로까지 십자(+) 형태로 운집한 군중은 연단도 보이지 않았지만 촛불과 휴대폰 전등을 흔들며 구호를 따라 외쳤다. 고속터미널 인근 반포대로 양옆에는 지방에서 온 전세버스들이 수십 대 도열해 있었다.

주최 측은 8시 이후 거리 행진을 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인파가 몰려 취소했다. 그 대신 6시에 시작한 집회는 연단 발언과 구호 제창, 노래패 공연, 레이저쇼 등으로 이어지며 9시 30분까지 계속됐다. 집회를 주최한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는 ‘이제 울지 말자’ ‘이번엔 지키자’ 등을 써 붙이고 ‘검찰개혁’ 등의 구호로 군중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 8차선 차도와 인도를 가득 메우고 있다. ⓒ 박지영

검찰개혁 촉구 교수 서명 7천 명 넘어

지난 26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한 교수·연구자 대표들은 연단에 올라 “지금까지 서명한 분들이 7천 명을 넘었다”고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대표 발언을 한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검찰이 수사 내용을 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수사 중에 누가 전화했다는 사실까지 자한당 의원에게 고자질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평검사들이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낭독하기도 했다.

“젊은 평검사들이여. 너희들이 뜨거운 열정을 갖고 선서했을 것이다. 너희들도 시간이 지나면 못난 너희 선배처럼 될 것이다. 평검사들이여 일어나라.”

시국선언 대변인을 맡은 김동규 동명대 교수는 “지금 조국 장관 가족이 문제가 아니다”며 “문제는 검찰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 검찰이 있기에 그들의 문제에 분노하고 비판하고 행동하기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며 집회의 의미를 되새겼다.

▲ 집회 참가자들은 촛불을 흔들거나 브루젤라를 불며 기세를 올렸다. 한 참가자가 ‘이제는 울지말자, 이번엔 지켜내자’라는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박지영

서울대 민주동문회 대표도 연설자로 나와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 김학의 성폭력 사건, 공정위 불법 취업 사건, 세월호 사건, 재벌의 불법 상속 사건 등 작금의 대한민국 모든 권력형 부패와 비리는 검찰 조직의 부패와 검찰권의 부당한 행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또 “검찰은 형사 사법 절차에서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 형 집행 지휘권을 독점하면서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에 기대어 수사해야 할 것은 수사하지 않고, 수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수사하는 등 마치 조폭 집단처럼 조직과 보스의 입맛대로 검찰권을 갖고 가진 이들과 한패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도 연단에 올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고 촛불 시민들이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때 당내에서 친노친문 진영과 대립했던 점도 사과했다. 그는 “제가 왜 문재인 대통령을 그리했던가,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면서 “목숨 걸고 문재인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을 뒤흔드는 정치검찰을 개혁하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검찰이 조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은 문재인 정권을 흔들기 위한 행위"라며 “윤석열 총장은 스스로 정치검찰을 했다는 걸 자인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것을 언급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한 참가자가 ‘정치검찰 물러나라, 자한당을 수사하라’고 쓴 종이 팻말을 쳐들고 있다. ⓒ 박지영

‘언론개혁’ 구호에 더 큰 박수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검찰개혁” 구호와 함께 “언론개혁”을 계속 외쳤다. 연단에 오른 이들이 ‘언론 개혁’ 구호를 외치자 박수 소리가 더 크게 터져 나오는가 하면, 많은 방송기자들이 리포팅을 하다가 야유를 받기도 했다. 최민희 민주당 전 의원은 기성 언론이 사실대로 보도할 것을 부탁한 뒤 1인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기 있는 저 카메라들, 1인 미디어가 대부분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가지고 계신 스마트폰. 여러분 모두가 언론입니다. 저는 지난 40일 동안 ‘우리 언론은 하나도 안 바뀌었구나’라는 자괴감을 느끼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 모인 100만 시민이 전부 1인 미디어라는 걸 선언합니다.”

이어서 연단에 오른 안진걸 민생연구소장은 언론이 기득권이 됐다며 비판했다. 그는 시민들과 함께 “자한당과 <조선일보>, 미세먼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구호를 외쳤다.

▲ 오후 9시 30분쯤 집회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참가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찰개혁” 구호를 외친 뒤 휴지 등을 줍기도 했다. ⓒ 박지영

‘세월호 심야식당차’ 커피 나눠줘

▲ 푸드트럭을 몰고와 ‘행동하는 양심 커피로 보답합니다’라는 안내판을 써 붙이고 참가자들에게 커피 봉사를 하는 이도 있었다. ⓒ 박지영

비영리단체 ‘집밥’을 운영하는 김학주 이사는 푸드트럭을 몰고 와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타주었다.

“국민으로서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이잖아요. 저는 ‘집밥’이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상식으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그거를 표현해야 하는데, 집에 있으면 표현되는 게 아니잖아요. 나와서 투쟁하는 분이 있듯이 나는 투쟁하는 분들을 위해 차를 한잔 대접하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 전철과 휠체어를 타고 인천에서 서울 서초동까지 온 한 참가자. ⓒ 박지영

“<단비뉴스>는 제대로 쓰는 언론인가요?”

집회장에 모인 이들의 사정은 다양했지만, ‘검찰개혁’을 원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휠체어와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서 서초동까지 온 고창문(49) 씨는 “지난주에 뉴스를 보는데 사람이 한 200명 왔다고 축소 보도하길래 열이 받쳐 오늘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는 것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는 유아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도 눈에 띄었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심영희(65) 씨는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져서 나왔는데,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지난(2016년) 촛불 집회 때부터 개혁을 이뤄낸 건데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비뉴스>는 제대로 쓰는 언론인가요”라며 기성 언론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서초동 인근에 왔다가 자연스레 집회에 참여한 시민도 있었다. 김유섭(25) 씨는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부정적인 댓글이 많았는데, 와보니까 그렇지 않다”며 집회 참여 후 여러 가지를 새로 알게 된 점들을 꼽았다. 밤 9시 30분이 넘어 집회가 끝나자 대전에서 온 이주원(28) 씨처럼 되돌아갈 먼 길을 재촉하는 이도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대전에서 왔거든요. 집회 참여하려고 개인적으로 버스를 2시간 타고 왔어요. 서울에 12시 도착해 여기 3시부터 와있었어요. 뉴스와 댓글만 봤을 때는 사람이 많이 안 올까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와서... 영화 <봉오동 전투>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오잖아요. 그런 장면처럼 되게 멋있었어요.”


편집 :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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