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에너지정의집담회 ‘탈핵운동과 기후위기운동’

“대전역에서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학생과 교수진이, 서울역에서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부생과 교수진이 ‘미세먼지 없는 원자력’ ‘원전으로 녹색에너지 살리자’며 탈원전 여론을 방해하고 있어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당시에 한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은 큰아들, 재생에너지는 막내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에너지시민연대가 주최하고 에너지정의행동이 주관한 ‘탈핵운동과 기후위기 운동, 어떻게 만날까’ 집담회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2가 모임공간 토즈에서 열렸다. 환경·종교·법률분야 전문가 15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김현우(48)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후위기운동의 현재와 기후정의’ 주제 발표를 통해 원전이 기후위기 대안으로 홍보되는 현실을 걱정했다.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홍보하는 찬핵 집단

▲ 25일 열린 ‘탈핵운동과 기후위기운동 어떻게 만날까’ 집담회에서 김현우 에너지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원전을 ‘기후위기를 막는 녹색에너지’로 주장하는 집단에 우려를 표했다. ⓒ 윤종훈

그는 “이웃 국가 대만에서도 원전을 옹호하는 국민당이 ‘이핵양녹(핵으로 녹색을 만들자)’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재생에너지로 가는) 징검다리로서 원전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처럼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핵발전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재생에너지가 갖는 기술적 간헐성, 변동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전력예비율을 현재 25%에서 5%까지 줄이는 등 수요대응을 보다 효율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재훈(41) 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은 ‘탈핵운동의 현재와 에너지전환’ 주제발표에서 “일부 단체는 미세먼지, 기후변화, 한국전력 적자, 폭염으로 인한 전기수요 폭증, 경기 침체 등 모든 원인이 탈원전이라고 주장한다”고 꼬집었다. 자유한국당 최연혜, 강석호, 이채익, 윤상직 의원,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한국수력원자력 노조 등이 포함된 ‘탈원전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서명운동본부’는 지난 1월 33만여명의 탈원전 반대 서명을 받아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러나 엄청난 탈핵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2018년 말 현재 기존 원전 중 가동을 멈춘 것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2곳뿐이며, 총 2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5기가 건설되고 있다. 국내 전력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6.8%로 이전에 비해 큰 변동이 없다, 우리나라의 탈핵은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의 수명연한인 60년 후, 2080년 무렵에야 이뤄지게 된다.

▲ 탈핵운동과 기후행동의 연대 방안을 모색하는 집담회 참석자들. ⓒ 윤종훈

한국 원전 비중 높은데도 온실가스 급증

영국계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륨(BP)이 2019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온실가스증가율은 1990년 대비 295.7%로 일본(105.9%), 미국(101.4%), 덴마크(65.3%)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안 국장은 “우리나라가 1990년부터 2018년 사이에 지은 원전이 많고 원전 비중도 늘었는데 왜 온실가스가 줄지 않고 있는지, 반대로 독일이나 덴마크, 일본은 왜 온실가스가 줄고 있는지 봤을 때 원전은 온실가스 감축과 상관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산업부가 2017년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 에너지원별 전원구성에서 원자력 비중은 23.9%로 줄어들 예정이다. 석탄도 45.4%에서 36.1%로 줄고 액화천연가스(LNG)는 16.9%에서 18.8%, 재생에너지는 6.2%에서 20.2%로 늘어난다. 안 국장은 그러나 “지금도 탈원전 반대 여론이 센데 이대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기후위기 운동으로 석탄이나 LNG 가동은 막을 수 있겠지만 원자력은 오히려 비중이 늘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법률사무소 이이의 구민회(46) 변호사는 ‘기후위기 해결 비용은 누가, 어떻게’라는 주제 발표에서 “지금처럼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상황에서는 탈원전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최종에너지소비에서 산업부문이 61.7%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부문의 에너지낭비가 특히 심하다고 지적했다. 구 변호사는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가 문제라고 말하면 다소비 산업구조라서 원전을 더 지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더라”고 꼬집었다.

▲ 구민회(왼쪽) 변호사는 무엇보다 공장 등 산업부문의 에너지과소비가 줄어야 탈원전과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윤종훈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2018년 현재 IEA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반면 석탄과 원전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다. 역대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투자를 게을리 하고 원전과 석탄발전에 치우친 에너지정책을 추진한 탓이다. 구 변호사는 “지금처럼 에너지과소비를 유지하고 전기요금 인상으로 반감을 사기 싫은 정권이 계속되다 2025년쯤 포퓰리즘 대통령이 나타나면 ‘세계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원전을 다시 짓고 수명을 연장해서 쓰자’는 제안이 엄청난 찬성을 얻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우리나라는 2018년 현재 전체에너지공급량(TPES)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를 차지할 만큼 태양광 풍력 등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반대로 원전과 석탄 발전 비중은 높다. ⓒ 구민회

기후행동과 탈핵은 모두 ‘위험한 에너지 탈출하기’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며칠 전 에너지정의행동이 기후 집회에 참여한 모습을 본 한 시민이 ‘너희도 결국은 중산층 운동 같은 느낌의 기후 시위로 가고 있구나’ 라고 비판하는 걸 봤다”며 “(탈핵과 기후행동이) 분리된 게 아닌데 탈핵운동을 하는 분들 중 기후 집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에 따르면 기후행동과 탈핵을 위한 연대운동 단체로 ‘탈핵시민행동’ ‘기후위기비상행동네트워크’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가 있다. 이들 단체는 화석연료와 핵발전에서 모두 벗어나 재생에너지로 가야 기후위기도 막고 원전사고 등의 위협에서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현주(35) 와트몰에너지 협동조합 이사장은 “핵발전소 건설 문제가 생명과 안전의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고 정쟁의 도구로 쓰이면서 대중들은 ‘탈원전’을 정치적인 문제로 판단한다”며 “탈핵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기후와 환경운동가들을 언급해주시면 이 두 개가 나눠지지 않고 같이 엮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현주(가운데) 와트몰에너지 협동조합 이사장은 최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한 그레타 툰베리를 보며 희망을 봤지만 에너지자립마을 대표 등을 맡으며 재정적인 문제 등으로 어려움에 부닥칠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 윤종훈

이효상(39) 불교환경연대 총무팀장은 “종교환경회의에서 한 달에 한 번 탈핵순례를 하는데 시민들이 지나가다 보시면 ‘전기 어떻게 할 건데? 석탄 돌리면 미세먼지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어보신다”며 “시민들은 탈핵을 하면 미세먼지가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보다 쉬운 언어로 설명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담회를 마무리하며 안재훈 대안사회국장은 “언론에서 (원전, 기후위기 문제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언론의 관심과 노력을 촉구했다. 김현우 선임연구원은 “내년 총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정치인들이) ‘우리 미래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 같은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며 “특히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반영해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에너지효율 관련 산업과 재생에너지산업이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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