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9.11.18 월
> 뉴스 > 칼럼 > 글케치북
     
조국이 ‘지니’에게 빈 세 가지 소원
[글케치북] 분노의 효용
2019년 09월 20일 (금) 13:19:40 양안선 PD yasun2002@gmail.com
   
▲ 양안선 PD

신의 계시다. 이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현 정권의 상징과도 같던 내가 딸 입시 때문에, 5촌 조카 사모펀드 때문에, 동생 부채 때문에 흔들렸다. 바로 이때 ‘지니’가 나를 찾아왔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개혁을 완수하라는 신의 뜻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시대의 정의를 외쳤던 나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나의 진정성이 신에게도 통했나 보다. 지니에게 빌 세 가지 소원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써야겠다.

   
▲ 알라딘 지니에게 3가지 소원을 빌었다면... ⓒ Pixabay

“사람들의 분노를 없애줘.”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내가 법무부장관에 올라 사법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대한민국 절반이 나에게 분노하고 있지만, 그들의 분노만 수그러든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지니의 힘은 대단했다. 소원을 빌자마자 사람들은 분노라는 ‘감정’을 잃었다. 화를 내지 않는 사회라니, 평화 그 자체였다. 나에게 화를 내던 사람들이 일삼던 인터넷 검색어 조작이 사라졌다. 매일 내 얼굴로 도배되던 신문 기사도 사라졌다. 나는 순조롭게 법무부장관이 되었다.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이는 허상이었다. 분노를 잃어버린 사회는 기득권이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밀려도, 어느 대기업 부장이 비정규직 여직원을 성추행해도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추진하고 있는 사법개혁에도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대한 검찰 권력에 분노하던 시민들이 없어지자, 개혁은 힘을 얻지 못했다.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려줘.”

변화는 분노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분노가 필요했다. 나는 지니에게 다시 소원을 빌어야 했다.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을 되찾았다. 이제는 검찰을 바꾸나 싶었는데... 이런, 사람들의 분노는 너무나도 짧았다. 검찰의 권력 남용이 드러날 때만 분노했다. 개혁은 장기전인데, 사람들의 화는 거품마냥 쉽게 꺼졌다. 계속해서 이슈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의 냄비 같은 분노 때문에 나는 세 번째 소원을 빌어야 했다.

“사람들이 계속 분노하게 해줘.”

이제 사람들은 계속 화를 냈다. 덕분에 검찰개혁은 쉽게 해낼 수 있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외쳐대니 검사들도 버티지 못했다.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장관이 되었다.

개혁도 끝났는데 사람들은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손에 든 피켓에는 나의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믿을 수 없어 핸드폰 인터넷 창을 켰다. 뉴스 창에는 나의 과거 기사들이 떠 있었고, 검색어 1~10순위 모두 나의 퇴진 관련 키워드였다.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바꿀 수 없어.”

어리둥절한 내 옆에서 지니가 말했다. 지니는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억’을 조정했단다. 첫 번째 소원에, 그는 나의 의혹과 관련한 기사와 정보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웠다. 사람들이 화가 날 것 같은 사실들이 생길 때마다 그 사실을 지웠다. 사람들은 모르니까 분노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 소원에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렸지만, 원래 사람들의 기억용량에는 한계가 있어 분노가 오래가지 않는단다. 세 번째 소원으로 ‘지속적인’ 분노를 요구하자 지니는 지웠던 기억을 모두 되살렸다 한다. 기억뿐 아니라 지니의 존재도,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분노를 지속시키기 위한 지니의 조처였다.

세 가지 소원은 다 써버렸다. 나는 핸드폰 창 한 구석에 있는 SNS 어플 버튼을 눌러 접속했다. 떨리는 손으로 글을 올렸다. “사법개혁으로 정의로운 사회가 왔습니다. 이제 모든 걸 잊고 편안한 삶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편집 : 윤재영 PD

[양안선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환경부 양안선입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관련기사
· “우리는 도구가 아니다”
· “우리는 미쳤다!”
· 교수님과 노래방에 가기 싫은 이유
· 보이지 않는 자들의 도시
· 다섯 개의 방
양안선 PD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충북 아 00192|발행인: 이봉수|편집인: 김문환|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