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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동력은 내 것이 아니었다
[상상사전] ‘공유’
2019년 09월 16일 (월) 14:40:55 강도림 기자 kangdl0314@naver.com
   
▲ 강도림 기자

난 몰랐다, 내가 공유되고 있다는 걸. 일을 시작하기까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전부터 계속 깊이 생각해 왔기에 결정의 순간, 바로 정하게 된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진로를 생각하고 온 특성화고니까, 내 목표는 그저 빨리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니까,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나는 원예를 전공했다. 그런데 왜 음료회사에서 일하게 됐더라. 실은 특성화고 진학은 형을 보고 따라 한 것이다. 특성화고는 형편이 어려운 우리 형제에게 딱이었다. 3년 동안 수업료도, 기숙사비도 다 공짜였다. 그런데 졸업하면 바로 취업까지 시켜준다니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도 하지 않고 특성화고 진학을 선언했다. 아빠가 조금 미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기특해하는 눈치다.

우리 학교는 졸업하려면 적어도 1개 자격증이 필요했다. 원예과는 딱히 딸만한 자격증이 없었다. 아빠가 지게차 운전면허증을 따라고 했다, 전문자격증이라서 취업에 도움이 될 거라며. 고3이 되면서는 현장실습을 가야 했다. 아빠는 과거 운송업을 할 때 거래처였던 한 음료공장을 추천했다. 회사 일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긴 했는데 아빠는 그 회사가 직원을 잘 돌보는 곳 같았다며 사회생활은 원래 그렇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아빠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그 회사는 건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작업실장이 바뀐 줄도 몰랐다고.

아 아빠가 몰랐던 게 또 있다. 지게차 자격증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회사에서 내게 준 업무는 지게차 운전이 아니라 한 기계 담당이었다. 공장의 핵심 기계니까 잘해보라고 했다. 14시간 일하는 날도, 주말 근무도 일상이었지만 현장실습하는 내 친구들이 다 그랬으니 나 역시 원래 다 이러는 건가 보다 했다. 아, 그때는 조금 서러웠다. 한번은 기계를 고치다 떨어졌는데 갈비뼈를 다쳐 응급실에 실려갔다. 회사에서는 계속 출근하라며 독촉 전화를 해댔다. 내가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속상하긴 해도 ‘일 시작한 지 고작 두 달이니 내가 일을 잘하나보다’라고 애써 자위했다. 병원에서는 더 쉬라 했는데, 공장장이 집 근처까지 와서 나를 데려갔다.

몸이 다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니까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병원비를 생각하니 이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나에게 누가 250만원이나 줄까? 그렇게 회사 일을 다시 해나갔는데, 그날은 느낌이 싸했다. 평소처럼 공장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벨트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환자실로 실려갔고 이젠 열흘 째다. 아직은 온 힘을 다해 정신줄을 붙잡고 있긴 하다. 그런데 너무 힘들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

   
▲ 학교에서 원예를 전공한 故 이민호 군은 생수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온 지 4개월 만에 사고로 숨졌다. ⓒ KBS

중환자실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 얘기를 들으며 꽤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장실습생에게 이렇게 오래 일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었구나. 내게 일주일간 기계 일을 가르치고 바로 회사를 그만둔 사수는 기계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회사에 수리를 계속 요구했는데 회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사수는 이러다가 자기가 다칠 것 같아서 사표를 썼다. 그런데 회사는 석 달 동안 새 직원 뽑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한다. 새 직원은 바로 나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수는 2년 동안 일했다는데, 난 그저 1주일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회사는 정직원이 해야 될 많은 일을 학생인 내게 떠넘겼다. 정직원을 뽑으면 돈이 많이 드니까 학생을 선호했던 것이다.

내 노동력은 그렇게 싼 값에 공유됐다. 내 주변 친구들도 다 그랬으니까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는 늘 착하게 베풀며 살아가라 했다. 가난한 우리집이 베풀 수 있는 건 노동력뿐이다. 나 말고도 전국의 많은 학생실습생들이 자신의 노동력 공유가 잘못됐다는 걸 모르고 있겠지. 내 이야기가 뉴스로 공유되는 거 같은데 이제는 좀 알려나? 아 어차피 학생들 말고 사회의 좀 높은 사람들에게 공유돼야 나 같은 일을 당하는 애가 없을 거다. 지금도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둘러싸고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있는 놈이 더 한다’더니 자기네 이윤은 거의 공유하지 않으면서 왜 없는 애들 노동력만 공유하려 드는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권영지 기자

[강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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