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임지윤 기자

‘의혹의 쓰나미’에 휩싸였던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결국 법무부 장관이 됐다.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조 장관을 둘러싼 숱한 논란이 ‘뚜렷한 증거 없는 의혹 제기’에 머문 반면 그가 이끌 검찰개혁은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과제라고 본 듯하다. 하지만 지방의 일반고를 나와 지방대 학부를 거쳐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나는 그 검찰개혁보다 더 시급하고 본질적인 과제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했다. 바로 ‘계급 대물림의 사다리’가 된 입시위주 교육을 손보는 일이다.

계급 대물림을 만들어내는 ‘입시 신공’

‘불법은 없었다’는 조국 장관 딸의 ‘입시 신공’에 20대 청년층이 특히 분노한 것은 우리 교육이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함’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은 알았지만, 조국 일가를 포함한 ‘대한민국 1%’가 부와 인맥 등 온갖 자원을 총동원해 자녀들을 ‘성층권’으로 밀어 올린 수법을 확인하는 것은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지는 과정이었다.

▲ ‘의혹의 쓰나미’에 휩싸였던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결국 법무부 장관이 됐다. ⓒ Google

부유층 자녀의 의대 진학을 책임져 주는 ‘입시 코디네이터’를 그린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고 내 주변에선 ‘사실이다’ ‘허구다’ 논란이 벌어진 일도 있다. 하지만 교수 부부 딸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고교생 의학논문 제1저자’ 사건 등은 현실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극적임을, 뒤통수를 치듯 알려주었다. 부모가, 학교가, 교사가 ‘1% 학생’을 위해 온갖 ‘몰아주기’를 하는 동안, ‘부자 부모도 없고, 학교를 빛낼 가능성도 없는 나머지들’은 사실상 버려지고 있다. ‘버려지는 다수’를 딛고 엘리트가 된 1%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혹시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나도 특목고를 나와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거쳐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을 가는 길을 너나없이 동경하는 우리 사회가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독일, 핀란드처럼 ‘경쟁과 서열화’가 아닌 ‘연대와 협력’을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가진 유럽 선진국이 기술발전, 인권, 국민 행복도 등 모든 면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친구를 밟고 더 높은 등급을 받는 것’ 대신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돕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을 ‘부정행위’라고 여기고, 무상으로 제공되는 공교육 안에서 모든 학습이 이뤄지므로 부모의 재산 차이가 아이의 장래를 심각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서울 명문대’만을 위해 든 촛불이라면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에 직업안정성과 보상의 격차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교육개혁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되진 않을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해도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공정한 거래구조와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비정규직 착취를 막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정착시키는 등 노동시장 개혁을 병행해야 ‘학벌’ ‘입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줄어들 것이다.

‘조국 사퇴’를 외치며 촛불을 든 서울의 명문대생들이 시위 참가자들의 학생증을 검사했다는 뉴스는 우울한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시국선언을 했던 지방대 학생들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가 생각 없이 따라 한다’고 조롱했던 일이다. 이번에도 괜히 목소리를 냈다가 그런 소릴 듣는 건 아닌지 마음속 응어리를 삼켰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묻는다. ‘절망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교육’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보면서, 우리 함께 분노할 수는 없는 것인지.


편집 :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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