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내부자들’과 언론

영화 <내부자들>은 권력층의 실체를 내부자가 고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민호 감독은 인물, 상황, 내용 등이 모두 허구라고 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개봉 전부터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나 '고 장자연 사건'을 떠올렸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허구적 스토리텔링이 사실 뒤 진실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스토리는 조폭과 검사, 언론인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조폭 안상구는 선거를 계기로 <조국일보> 주필 이강희를 만나 정치·경제 권력층의 뒤를 봐주게 된다. 경찰 출신 우장훈은 족보 없는 지방 검사 출신으로 출세를 위해 권력층의 비리를 수사하려 한다.

안상구는 연예기획사 사업 겸업을 중단하고 정치계로 입문하려 하고, 이강희는 자기가 대통령을 만들어 더 큰 권력을 손에 쥐려 한다. 우장훈도 힘있는 검사가 되어 더 큰 권력을 쥐려 한다. 영화 속 내부자들은 공공이익을 겉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는 철저하게 그들 개인의 권력 유지와 출세를 위해 행동한다.

▲ 영화 <내부자들>은 정치·경제·언론 권력의 유착관계를 드러낸다. ⓒ <네이버> 영화

‘최악’ 대 ‘최선’ - ‘선’이 사라진 시대의 대결 구도

신화 스토리텔링 분석을 통해 영웅서사구조 이론을 정립한 조셉 캠벨은 영웅 스토리텔링을 현실에 대입했다. 현실 속 ‘우리’ 삶의 방식을 신화 속 ‘영웅’ 이야기 패턴에 조응시키는 방식이다. 영웅은 ‘악’에 맞서 싸운다. 그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에 처하지만, 조력자를 만나 악당을 이겨내고 ‘선’을 실현한다.

▲ 안상구와 우장훈은 욕망을 위해 손을 잡는다. ⓒ 영화 <내부자들>

등장인물들은 영웅이 되어 악과 싸우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은 권력을 유지하거나 차지하기 위해 행동한다. 영화에 나오는 행동들은 ‘악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강희는 논설을 통해 정치·경제 권력자를 대변하고, 안상구는 그들의 성욕을 채워주는 연결고리 구실을 하며, 우장훈은 권력을 협박해 출세하려는 위험한 게임을 한다.

그들은 수직구조 최상부에 자리잡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들의 권력이 유지되어야 그들의 삶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정치·경제 권력층이 악의 핵심인 ‘최악’이다. 그들은 자기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강희는 이들 권력층을 대변하는 전달자일 뿐이다. 그는 여론을 선동하거나 왜곡한다. 언론을 통해 그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은 한계가 있다. 본인이 속한 위치에 따라 권력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최악의 말단 자리만 허용된다.

▲ 권력의 상층부에 자리잡은 오회장은 자기 입맛에 맞는 장필우를 대선후보자로 지원한다. ⓒ 영화 <내부자들>

안상구는 이강희와 우장훈에게 이용만 당하다 절망에 빠진다. 결국 그들을 배신하고, 권력층을 고발하는 ‘내부자’로 변신한다. 자신이 해온 행동은 반성하지 않는다. 정의를 위해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자 복수하는 것이다. 선으로 탈바꿈하지 못하고 차악으로 변신하는 데 머문다. 선을 대변하는 인물은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기 이익과 욕망을 위해 행동한다. 최악과 차악의 구분만 가능할 뿐이다.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은 ‘선과 악의 대결’을 축으로 했다. 선한 프로타고니스트가 악한 안타고니스트를 응징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최근 사회악을 고발하는 일련의 영화는 ‘최악과 차악’의 대결을 기본축으로 한다. 선이 사라진 시대의 새로운 내러티브다. 전자는 교훈적 주제를 전형적으로 제시하지만, 후자는 있는 그대로 현실을 사실적으로 제시한다. 스토리텔링은 더 역동적이고, 관객은 자신이 사는 현실을 보듯 스토리에 몰입한다.

‘코리아 느와르’ 전성시대

사회 고발 영화의 배경과 분위기는 어둡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밤이나 깜깜한 방 등을 자주 미장센으로 활용한다. ‘홍콩 느와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홍콩 느와르’는 어두움과 진지함, 비정함 등 분위기를 내용이나 소재보다 더 중요시했다.

우리나라에서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사회 고발 영화는 이런 분위기를 이어 받았다. ‘홍콩 느와르’와 차별되는 지점은 ‘사회악 고발’이라는 주제 의식을 부각한다는 점이다. 비평가들은 이를 ‘코리아 느와르’라는 장르로 분류했다.

성접대 장면이나 권력층을 대변하는 언론인 모습 등은 뉴스를 통해 우리가 현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대중은 사회악에 쉽게 분노하고 쉽게 잊는다. 영화에서 이강희는 이런 말을 한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것입니다.” ‘코리아 느와르’는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문제를 되새기게 하는 효과적인 형식으로 재창조된다.

‘역대급 영화’를 대하는 보수언론의 태도

이 영화는 일반판과 감독판을 합쳐 관람객 약 900만 명을 기록했다. 우리 사회가 이 영화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 감독은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인 시스템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상하 수직구조가 명확히 나뉘어 있고, 그 관계는 갈등적이다. 정치·경제·언론의 유착과 관련한 뉴스는 우리가 늘 접하는 소재다. 이런 유착 관계에 사람들은 분노하지만, 시원하게 해결한 사례나 뉴스를 접한 적은 없다. 대중과 수직구조 위에 있는 권력층의 가치관을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이고 내재화하는 경우가 더 많다.

▲ 이강희는 논설주간이라는 위치에서 오회장과 장필우를 대변한다. ⓒ 영화 <내부자들>

<미디어오늘>은 2015년 11월 19일부터 2016년 1월 12일까지 이 영화와 관련한 <조선><중앙><한겨레>지면을 분석했다. 그중 보수언론으로 분류되는 <중앙>과 <조선>은 이런 ‘느와르류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중앙>은 ‘’언젠가부터 우리 영화계엔 사회적 분노 장르란 게 생겼다”며 “썩은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순간의 카타르시스와 세상에 대한 염증”이라고 평했다. 이에 더해 이하경 당시 논설주간 말을 인용해 “대권주자와 재벌 총수를 컨설팅해줄 정도로 논설주간은 한가하지 않다”며 영화의 허구성을 꼬집었다.

<조선>은 <내부자들>을 소개한 기사가 0건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유료부수 1위, KBS와 함께 매체영향력 1위권인 조선일보가,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논설주간이 주인공인 영화를 소개하는 데 있어 소홀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며 ‘영화가 소개할 만큼의 깜냥이 떨어지거나, 소개해주고 싶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체제 유지에 헌신하는 캐릭터가 ‘최악’

체제유지적 인간은 전통적인 ‘선과 악’을 대결 구도로 하는 스토리텔링을 선호한다. 반체제적 캐릭터를 악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최악과 차악’의 대결 구도는 이런 전형성을 깨트린다. 이런 스토리텔링에서는 체제유지적 캐릭터가 ‘최악’으로 설정된다.

‘영화는 사회를 바라보는 볼록렌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를 확대해서 들여다보게 하고, 이를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카타르시스라고 했지만, 이 영화가 기록한 흥행 성적이 카타르시스 때문만일까?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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