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한끼, 맘 한끼] ⑮ ‘해독을 위한 빼기’ 그룹 나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울고 나면 슬며시 기분 좋은 느낌이 들어요. 일에 치여 녹초가 돼 돌아와 의자에 털썩 기대어 앉으면 어쩐지 개운함이 느껴지죠. 밤새 신나게 놀고 난 뒤 집에 들어가는 길에는 좀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몸의 감각과 마음의 감정을 잘 관찰해보세요. 특정한 상황에서 감정이 일어났을 때 그 뒤에 다른 결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생각을 걷어내고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는 게 중요합니다.

[몸 한끼, 맘 한끼] 일곱 번째 시간에는 ‘해독을 위한 빼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호흡명상을 했어요. 잔잔한 명상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습니다. 생각들을 거품이라 상상하고 그 거품이 꺼지는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오롯이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어깨의 긴장감, 머리의 무거움이 조금 가셨죠.

그 다음 소금, 고춧가루, 레몬, 초콜릿으로 먹기명상을 했습니다. 음식을 보고 향을 맡고 손으로 만져 촉감을 느끼고, 그리고 천천히 입안으로 넣었습니다. 음식을 바로 삼키지 않아요. 혀 위에 올려놓고 맛이 사라질 때까지 느긋하게 음미합니다. 마지막 목 넘김까지 하나하나 느끼는 거죠. 명상이 끝난 뒤 그 경험을 화선지에 먹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사람당 그림 네 장이 나왔는데요. 짠맛, 매운맛, 신맛, 단맛으로 분류해 벽에 걸어 함께 보았어요. 그리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 [몸 한끼, 맘 한끼] 일곱 번째 클래스가 열렸습니다. © 이현지
▲ 이지현 님이 초콜릿을 음미한 뒤 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이현지

생각이 사라지는 마법, ‘음미’

요새 사업을 확장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고덕조 님은 먹기명상을 통해 “감각에 집중하니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생각을 하면 맛을 못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도 했죠.

그저 음식을 먹는 것뿐인데, 오로지 음식에 집중해서 먹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밥을 먹을 때가 많죠. 시간에 쫓겨 또는 너무 배가 고파 맛을 느낄 새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도 하고요. 오늘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걱정하거나 어제 했던 실수를 후회하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강사 생강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먹고, 정서적 결핍을 채우려고 먹어요. 입은 후루룩 빨리 먹고, 머리는 생각으로 가 있어요. 먹는 행위와 자기 자신이 분리되는 거죠. 허겁지겁 먹을 때와 천천히 잘 느끼며 먹을 때 몸과 마음의 반응을 살펴보세요. 음미하면 차분해지고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되거든요.”

▲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을 표현한 작품을 한데 모아봤습니다. © 이현지

음미’로 키우는 마음의 근력

고춧가루, 소금, 초콜릿, 레몬을 먹고 그린 그림을 모은 모습입니다. 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모두 다른 경험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죠. 생강에게 신맛은 몸에 확 흡수되어 활력을 주는 맛이지만, 송윤서 님에게 신맛은 넘기기도 힘든 괴로운 맛인 것처럼요. 그러니 감각에 집중한다는 것은 나를 인지하고 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감각에 집중해 나를 인지하는 훈련으로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트라우마가 있거나 감정이 억압돼 있으면 무감각해지는데요. 보고 듣고 맛보는 감각부터 슬프다 즐겁다 우울하다 등의 감정까지 잘 못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감각적으로 닫혀있다’고 표현하는데요. 감각에 집중해 나를 바라보는 훈련을 하면, 몸과 마음이 조금씩 세상을 향해 열리게 됩니다.

음미하며 자신을 관찰해보세요. 감각이 열리면 자신에 관해 사유할 근력이 생기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취할 판단력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 송윤서 님이 소금의 짠맛을 보고 있습니다. © 이현지
▲ 송윤서 님이 짠맛을 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이현지

인생에도 ‘뒷맛’이 있어요

천천히 조금씩 먹으며 감각에 집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뒷맛이 강하게 올라오는 경험을 했다는 분이 많았습니다. 은지 님은 레몬의 신맛 뒤에 단맛이 확 퍼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현 님은 소금을 혀 위에 올려놓자 침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짠맛을 뒤따라 여러 가지 맛이 올라오는 경험을 했고요. 먹기명상 경험을 통해 한 가지 맛이라고 생각했던 음식에 여러 층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도 그렇죠. 특정 상황과 그 상황이 주는 감정 뒤에는 다른 결의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짜릿하게 즐거운 일 뒤에 공허한 외로움이 찾아오고, 지치고 힘든 일 뒤에 평온함이 올라오는 것처럼요.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음미하면 인생의 뒷맛을 느낄 수 있어요.

‘인생의 뒷맛’을 느끼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도 음미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천천히 맛을 보았던 것처럼 일상의 시간을 음미하듯 하나하나 느껴보는 것이죠.

하루의 시작을 가다듬어 보세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순간을 활용해볼까요? 잠시 생각을 멈추고, 현관문 앞에 서봅니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감촉과 온도, 돌리는 감각, 삐거덕 소리까지 느껴봅니다. 문밖으로 한 발 나설 때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첫 느낌, 발목이 꺾이는 감각까지 음미하는 거예요. 문밖으로 나가 ‘흠-’ 숨을 들이쉬고 ‘후-’ 내뱉어보세요.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가다듬어보세요.

일상 안에서 꾸준히 ‘음미’를 훈련했을 때 그 경험이 쌓여서 마음의 근력이 돼요. 마음의 근력이 생기면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어요.

생각을 걷어내고 순간을 음미해보세요.
음식의 뒷맛, 그리고 인생의 뒷맛까지 느껴보세요.
마음에 탄탄한 근력이 자라날 거예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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