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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급식통에 담배꽁초·쥐약까지
[동물도 생명이다] ➂ ‘길냥이 밥 주기’ 주민 갈등
2019년 08월 11일 (일) 22:03:38 장은미 기자 josinrunmi@naver.com

“길고양이 밥을 주러 가면 밥그릇에 담배꽁초, 가래침, 아이스크림 막대 같은 쓰레기부터 치킨, 족발처럼 양념된 음식물 찌꺼기까지 있어요. 심지어 쥐약도 놓였던 적이 있어서 너무 걱정되고 마음이 아파요.”

부산시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캣맘(고양이엄마)’ 박미경(52)씨는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일부 주민들 때문에 근심이 많다. 밥그릇에 쓰레기를 버리는 정도를 넘어 동물학대 의도로 보이는 행동도 있어 다른 캣맘들과 함께 경찰에 신고한 것도 여러 번이다. 서울시 강동구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고 돌보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지만, 박씨의 아파트처럼 길고양이 밥 주기를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을 겪는 곳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16일 해운대 아파트를 현장 취재한 것을 포함, 지난달 22일까지 주민과 관계자들의 입장을 다각도로 들어봤다.

길냥이 ‘아리’의 모성애 때문에 ‘캣맘’의 길로

4년째 길고양이 밥을 챙기고 있다는 박씨는 흰색 바탕에 검은 점박이 무늬가 있는 길고양이 ‘아리’ 때문에 캣맘이 됐다고 말했다. ‘비가 많이 왔던 어느 날 어미고양이가 빗물에 흠뻑 젖은 채 새끼들을 살리겠다고 한 마리씩 물어 옮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려서’ 아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집에서 개를 키우는 박씨는 아리 말고도 대여섯 마리 길고양이의 밥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 박미경씨가 밥을 챙겨주고 있는 점박이 무늬 어미고양이 아리. 낯선 사람을 많이 경계한다고. ⓒ 장은미

박씨는 지난해 10월 어느 날 동네 주민의 항의를 받았다. 그 주민과 산책하던 개가 길고양이 밥그릇에 놓인 뭔가를 먹고 탈이 나 동물병원에 갔는데, 알고 보니 쥐약이었고 이틀 만에 죽었다는 것이다.

“저한테 ‘당신이 길고양이 밥 준다고 밥그릇을 놔둬서 산책하던 우리 개가 그걸 먹고 죽었다’며 따지더군요. 그 말을 듣고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어요. 거기에 쥐약을 놔둔 사람이 나쁜 거 아닌가요?” 

박씨는 동네 캣맘들과 함께 범인을 찾아달라고 신고했지만 폐쇄회로TV 등 증거를 확보할 만한 수단이 없었고 경찰도 별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늦은 밤에 눈치 보며 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

박씨와 뜻을 같이하는 아파트 주민 10여명은 지난해 11월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임(고사모)’을 만들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면서 아픈 길고양이 치료와 불임수술(TNR) 등 근본적 대책에도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 이들은 우선 아파트 단지 안에 나무로 짠 급식소 9개를 설치했다.

   
▲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고사모(고양이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단지 곳곳에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 나무로 짠 상자 모양의 급식대에 사료와 함께 깨끗한 물을 매일 챙겨 놓는다. ⓒ 장은미

모임의 회장인 천대기(59)씨는 “캣대디(고양이아빠)인 저를 제외하고는 다 캣맘들이라 만만하게 본 남자 주민들이 시비를 건 일도 여러 번”이라며 “혼자보다는 같이 힘을 모으고 대응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고 결성 배경을 밝혔다. 천씨는 몸이 온통 새까만 길고양이 ‘깜시’의 친화력에 반해 밥을 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도 처음엔 고양이를 무서워했지만 사람들에게 발라당 배를 보이며 스스럼없이 대하는 깜시가 ‘고알못(고양이를 모르는 사람)’ 을 ‘고잘알(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로 바꿔놓았다고 한다.

   
▲ 길고양이 깜시는 남녀노소 주민에게 발라당 배를 보이는 스스럼없는 행동으로 사랑을 받는다. 캣맘 박미경 씨가 깜시를 쓰다듬고 있다. ⓒ 장은미

고사모 회원 유희진(47‧가명) 씨는 “길고양이 밥을 챙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피해 일부러 밤 시간대 등 인적이 드물 때 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밥을 주는데 남자 주민이 시비를 걸어, 너무 무서워서 고사모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길고양이 밥 주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밥을 주니 고양이들이 더 몰린다’ ‘고양이가 울어서 시끄럽다’ ‘환경이 더러워진다’ 등을 이유로 든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소장 등의 노골적 방해에 몸싸움도

특히 이 아파트 관리소장과 일부 동장이 길고양이 밥 주는 것을 대놓고 반대하고 있다. 천 회장은 “아파트 소장이 바뀐 후 2018년 말부터 밥 주는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를 내기 시작했다”며 “이 때문에 갈등이 촉발됐다”고 전했다.

“길고양이 급식소 주변에 소장이름으로 된 관리 공문을 붙이거나 경비원들을 시켜 밥 주는 것을 방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당신들의 행동이 잘못됐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죠. 관리소장은 캣맘들에게 폭언을 하기도 하고 나와 몸싸움을 한 일도 있습니다.”

   
▲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임’의 천대기 회장은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라 만만하게 본 남자 주민들이 시비를 건다”며 힘을 모아 대응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장은미

<단비뉴스>가 이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길고양이 밥 주기를 둘러싼) 갈등은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길에서 살던 고양이 ‘미미’와 ‘산이’를 구조해 키우고 있다는 김미정(57)씨는 “싫어하시는 분들의 입장도 이해하기 때문에 밥도 지정된 장소에 주고, 급식소가 가까이 있어 싫다는 주민이 있으면 장소도 바꾸고, 밥을 줄 때 주변 환경 정리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막무가내로 ‘고양이가 싫으니 밥을 주지 말라’거나 ‘길고양이이니 학대해도 된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길고양이 급식소 철거 요청’ 법적 근거 있나

관리소장은 고양이 시설물 철거요청 문서를 내걸면서 ‘공동주택관리 법령 및 관리규약’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실제 ‘공동주택관리법’에는 길고양이 먹이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는 게 고사모측의 주장이다. 공동주택 입주자를 보호하고 주거생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입주자들이 자치규약을 정할 수 있지만, 이것도 상위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 길고양이 급식에 반대하는 아파트 관리소장이 지난 3월 게시한 시설물 철거 요청 공문. ⓒ 장은미

한국고양이보호협회 고문변호사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서연 변호사는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공동 주거생활의 질서유지를 위해 관리규약을 자치적으로 정할 수는 있지만 이것 역시 합목적적인 정당성, 즉 공동생활의 질서유지라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파트 주거생활의 질서나 안전을 해친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 상태에서 (금지 규정을) 넣는다면 상위법령을 위반할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공동 주거생활의 안전과 질서를 해친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동물보호법 제4조엔 국가‧지방자치단체‧국민의 동물보호 책무를 강조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동물보호) 사업을 적정하게 수행하기 위한 인력‧예산 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등 동물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경기도내 15개 시군과 부산 북구, 서울 종로구·강동구 등은 길고양이 급식소를 지자체에서 직접 설치하고 주민들과 협력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동구는 2013년 5월 지자체 최초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는데, 이후 길고양이가 먹이를 찾느라 쓰레기봉투를 뜯는 일이 줄고 TNR 등 개체수 관리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지자체 동물보호 증가 추세 속 해운대구는 미온적

그러나 부산 해운대구청은 주민들이 여러 차례 갈등 중재를 호소했는데도 미온적 대응에 머물고 있다고 고사모측은 비판했다. 천 회장은 “여러 차례 문의 끝에 유기동물 담당직원이 동석해 구청장 면담을 진행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며 “기본적으로 길고양이 등 동물보호에 관한 지자체의 이해와 역할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운대구청 일자리경제과 김민영 주무관은 지난 6월 4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아파트 내 주민들 간의 갈등이라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중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신주운 활동가는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지자체가 동물보호 문제에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 활동가는 “이런 갈등은 결국 주민 간 합의로 해결해야 하는데 ‘고양이들이 싫으니 없애 달라’는 입장은 ‘공존’의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동물학대는 범죄라는 메시지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애달픈 길고양이의 삶… 생명 보듬는 사회를

고사모에 따르면 8월 현재 해운대 아파트의 주민 갈등은 일단 소강국면이지만 관리소장과 일부 동대표가 아파트 관리규약에 일방적으로 넣은 ‘길 고양이 밥 주기를 금지한다’는 규정은 삭제되지 않은 상태다. 또 지난달 중순 단지 내 화단에서 목이 없는 길고양이 사체가 발견되는 등 동물학대 정황들이 이어지고 있어 천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 길고양이 밥그릇에 쥐약이 놓이거나 목 없는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는 등 동물학대 정황이 이어지자 고사모 회원들은 ‘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아파트 단지 내에 달았다. 그러나 현수막이 찢어지는 일이 3차례 정도 반복됐다. ⓒ 장은미

부산 다솜 고양이 메디컬센터 박자실(43) 내과원장은 지난달 3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길고양이 문제의 근본 대책에 대해 “현재로서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TNR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임수술로) 개체수 조절을 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동물보호센터 확대 등을 통해 길에 사는 유기동물을 줄여나가고 정해진 급식소 위주로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좋은 공존의 대안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동물보호단체인 한국고양이보호협회와 동물권행동 카라도 TNR을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이 불임수술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사료와 물을 제공하는 등 사후관리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부산 해운대 한 아파트 단지의 고사모 회원들이 밥을 챙겨주는 노란색 줄무늬 길고양이.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그루밍(몸을 핥는 고양이의 행동)을 하고 있는 이 고양이도 불임수술을 했다는 표시로 한쪽 귀 끝이 잘려있다. ⓒ 장은미

고사모 회원인 박미혜(55)씨는 ‘좋은 일 한다’며 응원해주는 주민도 있지만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학대하는 사람이 있어 힘들다며 생각을 조금만 바꿔달라고 호소했다.

“고양이를 꼭 좋아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배곯지 않고 편안히 밥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길고양이라 해서 괴롭혀도 될 이유는 없잖아요. 불쌍한 아이들에게 밥 챙겨주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저희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밥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개나 고양이 등을 가족처럼 여기며 사는 ‘반려동물 시대’다. 반면 버려지는 동물도 매년 10만여 마리에 이르고, 이들 중 상당수는 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하거나 길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단비뉴스>는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관점에서 반려동물의 현실과 제도상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관련 시민활동을 소개한다. 나아가 공장식 사육과 남획, 잔인한 도축 등 이윤논리에 희생되는 짐승의 문제를 ‘동물권(인간의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 차원에서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장은미 기자

[장은미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장은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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