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한끼, 맘 한끼] ⑪ 다섯 번째, ‘해독: 그릇 비우기’ 작품 인터뷰

▲ 초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깃털 달린 모자를 쓴 여인이 보이기도 하고 큰 매부리코를 가진 노파가 보이기도 합니다. © 이현지

유명한 착시현상 그림이죠. 어디에 초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깃털 달린 모자를 쓴 여인이 보이기도 하고 큰 매부리코를 가진 노파가 보이기도 합니다. 시각이 그림의 메시지를 결정하는 것이죠. 눈길을 바꾸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전혀 다른 그림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어렵고 힘든, 버겁고 불편한 상황이 있을 때, 그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새로운 해결책이 나타나기도 해요.

▲ 다섯 번째 시간 ‘해독: 그릇 비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이현지
▲ [몸 한끼, 맘 한끼]의 강사 생강이 수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 이현지

[몸 한끼, 맘 한끼] 다섯 번째 시간에는 ‘해독: 그릇 비우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내 몸-마음에서 여전히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살펴보았어요. 먼저 나를 상징하는 그릇에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밥상에서 느끼는 분위기를 캔버스 천에 물감으로 그려 식탁 매트를 표현했고요. 작품이 완성되면 매트 위에 그릇을 올리고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덜어내는 의식(ritual)을 진행했습니다.

▲ 송윤서 님은 구멍 뚫린 그릇과 국수를 만들고, 어둡고 일렁이는 이미지의 밥상 환경을 그렸습니다. © 이현지

송윤서 님의 작품입니다. 미술적 상징들이 인상적이에요. 검고 묵직한 파도가 들이치는 것 같은 배경이 윤서 님이 느끼는 밥상 환경입니다. 붓질 자국이 상당히 거칠어요. 그림 위에는 두툼한 그릇이 있네요. 안쪽 바닥에 홈이 송송 파여 있고 뒤엉켜 꼬인 면이 걸쳐져 있습니다. 그릇은 윤서 님이 몸-마음의 상태를 상징하고 꼬여 있는 면은 윤서 님의 몸-마음에 남아 있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의미해요.

감정의 찌꺼기가 잘 닦이지 않는 그릇

윤서 님은 자신을 ‘설거지하기 힘든 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입구가 좁은데 바닥에 구멍까지 파여 있는 이 그릇은 음식 찌꺼기가 쉽게 남는 형태죠. 게다가 구멍에 잘 끼는 면이 그릇 안에 있어요. 면 요리는 윤서 님이 실제로 잘 소화하지 못하는 음식인데요. 윤서 님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찌꺼기 같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그릇과 음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송윤서 님이 강사 생강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이현지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밥상 환경

윤서 님의 밥상 환경 그림은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와 같은 특정한 상황이 아닙니다. 윤서 님이 관계하고 있는 세상 그 자체입니다. 윤서 님은 “평탄하지 않고 일렁이고 때로는 나를 침해하려는 듯한 세상”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그러한 침해 받는 느낌 때문에 방어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송윤서 님은 인권과 동물권, 환경 등에 관심이 많은 채식주의자입니다. 채식을 실천하며 신념을 사회적 활동으로 실현하려는 꿈도 꾸고 있고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상처 되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는 이게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제 정체성을 증명하려 노력하고 계속 얘기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그래서 소외된 적이 많아요. 자꾸 나를 설명해야 하는 것에 무력감도 있었고요. ‘왜 계속 나를 증명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 자신의 작품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 이현지

다시 보기, 다시 또 보기

강사 생강은 뭉쳐 있는 면 가락들이 좌절감과 무력감의 상징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시각도 제시했어요. 면에서 덩굴식물처럼 힘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려는 듯한 느낌도 든다고 말이죠. 같은 형상이지만 반대 의미를 포착한 것입니다. 윤서 님은 생강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며 “세상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윤서 님의 어깨가 펴지고 조금씩 표정에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생강은 한 발 더 나아가 또 다른 시각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새롭게 세상을 인식하려면 그릇이 어떻게 변형되겠냐는 생강의 물음에 윤서 님은 “좀 더 입구가 열리고 두께가 얇아질 거다”고 대답했습니다. “홈의 수가 줄거나 깊이가 얕아질 거다”고도 하고요. 세상에 열려있고 마음이 가벼우면서 감정의 찌꺼기를 잘 씻어낼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된다는 것입니다.

들어오는 것 같으면서 퍼져 나가는 듯한

작품을 다시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게 없는지 물었어요. 윤서 님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뭔가, 경계 안이 더 밝게 보이네요.”

▲ 인식을 전환하니 하얀 부분이 밝게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이현지

윤서 님은 검푸른 이미지가 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 같으면서도, 안쪽의 하얀색이 퍼져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나를 침범하는 것을 생각하며 그렸는데 다시 보니까 내가 넓히려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지요. 윤서 님의 세상에 장면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윤서 님은 세상이 내게 침범해서 들어온다고 느꼈고 그래서 방어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합니다. 전환된 후에는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될까요? 윤서 님은 방어적인 것의 상반되는 느낌이 떠오른다고 대답했어요. 그렇다고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며, 그 느낌을 ‘열리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음도 열리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느낌이라고도 설명했죠.

▲ 송윤서 님은 감자 스프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세상에 자신의 신념을 스며들게 하고 싶다며 밝게 웃었습니다. © 이현지

따뜻한 감자 스프처럼

소화되지 않은 음식인 면 요리. 엉켜있는 면 가락들을 하나하나 풀어냅니다. 엉킨 감정을 풀어내는 거죠. 면을 덜어내고 이제 새로운 음식을 채워봅니다. 윤서 님은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뜻한 감자스프를 떠올렸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세상에 윤서 님의 신념과 정체성을 스며들게 하고 싶다는 거예요. 둥글둥글 부드러운 윤서 님의 행복감이 감자스프처럼 주변으로 퍼져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요청에 윤서 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감정이 올라오고 멀리서 감정을 지켜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의지라던가, 그런 새로운 발견을 하게 돼서 놀랐어요. 어쨌든 그게 저한테 있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저를 응원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응원이 됐어요.”

뇌신경과학자 뷰 로또는 미국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강연에서 인간이 색을 인지하는 방식을 설명하며 “(우리 시각에 들어오는) 정보 자체에 내재한 의미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그 정보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다”라고 말했습니다. 외부 세계에 객관적인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식이 의미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착시현상 그림처럼 말이에요. 어디에 초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그림의 내용이 달라졌던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뒤엉켜 무력하게 걸쳐져 있던 면 가락이 덩굴식물처럼 뻗어가는 의지가 되고, 나를 침해하는 일렁이는 검은 파도가 밝게 퍼져나가는 나의 활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삶의 풍경도 다른 의미와 해석과 메시지로 드러나지요.
순식간에 장면이 전환되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조금 힘든 상황이라면 나의 삶과 감정과 생각을 멀리 두고 지켜보세요.

여기저기 시선을 돌려 보고 보고 다시 보세요.

의지와 희망, 밝은 에너지,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장면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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