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이기적 재연’

▲ 강도림 기자

정확히 어떤 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특별한 날이었던 것 같다. 화장하고 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쳐다봤다. 그제서야 엄마의 눈길이 내 얼굴이 아닌 손 위 아이섀도우에 머물고 있음을 알았다. 머쓱한 느낌에 물었다. “엄마도 할래?” 엄마를 예쁘게 화장시켜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너나 해~” 하고 돌아섰을 엄마가 그날은 “어... 한번 해볼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웬일인가 싶었지만 민망해할까 봐 엄마에게 눈을 감으라 하고 눈두덩에 섀도우를 발랐다. 처음 느끼는 감촉이었다. 평소 친구들 화장을 해주며 느낀 감촉이 아니었다. 섀도우는 엄마의 우둘투둘한 피부에 매끄럽게 발리지 않았고 잔주름에 끼어 엉김이 생겼다. 나와 친구들에게는 어울리는 밝은 코랄색 섀도우가 50대 엄마한테는 어울리지 않았다. 화장을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 것이다. 당황한 나는 애써 “아 이거 엄마랑 안 어울리네~ 그냥 안 하는 게 낫겠다”는 말로 엄마의 화장을 급히 마무리했다. 

그저 5초쯤의 찰나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내겐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있다. 엄마에게 자신있게 화장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망쳐버린 미안함, 엄마의 세월이 담긴 피부 결을 생각조차 못 한 무심함. 결국 나와 엄마 모두 민망했다. 내 또래만 생각한 ‘이기적 재연’이었다. 무언가를 재연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배경과 속성이 같아야 한다. 공산품이라면 모를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뭔가 좋았다고 생각해서 그걸 재연하려 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도 좋을 거’라며 이기적 재연을 강요한다.

▲ 각자에게 맞는 화장이 있는 법이다. ⓒ pixabay

“전쟁통에도 애를 낳았는데”라는 말은 그저 꼰대의 말로 들려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 뿐이다. 급박한 전쟁통에도 많은 아이가 태어난 것은, 아이를 많이 낳는 당시 사회 분위기가 여성의 ‘출산 의무화’로 이어졌다. 지금은 아이가 필수라는 인식도 약해졌고 그 당시와 달리 많은 양육비가 든다. 2019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47%가 교육비, 양육비 등 경제적 부담으로 더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같은 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조사에서는 남녀 모두 성차별 지적이 가장 심한 분야로 ‘결혼, 출산, 육아’를 꼽았다. 남자에게는 “애를 왜 아빠가 봐”, 여성에게는 “여성은 결혼하면 끝”이란 말은 출산 기피 현상을 더 부추겼다. 애를 많이 낳던 시절을 재연하라는 것은 ‘기성세대는 말이 안 통한다’는 벽만 높일 뿐이다.

“선생님이 여자한테 최고 직업이지”라며 직업 선택의 자유조차 무시하거나 “나 때는 말이야”라며 젊은 너희들은 왜 못하냐는 투의 말은 거부감을 더 부추긴다. 드라마 ‘SKY캐슬’에는 3대째 의사 가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가 등장하는데, 이는 시대상을 잘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젊은 층의 시대감각을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가능한 재연을 강요하는 것은 억지로 끝나고 만다. 

엄마에게는 내 화장을 그대로 재연하기보다는 맞는 화장을 찾아주어야 했다. 내 화장 실력이 더 뛰어났다면 내 화장품으로 엄마에게 어울릴 화장도 할 수 있었을 거다. 이기적인 위안을 삼자면 내 화장을 엄마에게 똑같이 재연하는 것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서로가 깨달았다는 점이다. 서로 무리했더라면 엄마의 본연을 잃은 어색한 재연만 있었을 것이다. 내게 잘 어울린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이기적인 재연을 강요하는 이들도 포기하길.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연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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