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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의 부인 넘어 불꽃같은 항일투쟁
[TV 독립열전] ⑫ 여성투사 박차정
2019년 07월 06일 (토) 20:11:28 김유경 윤종훈 기자 nanchohyanggi@gmail.com

김원봉의 부인 넘어 불꽃같은 항일투쟁

<앵커>

일제시대 국권을 되찾기 위한 항일투쟁에 많은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쳤는데요. 박차정 의사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요즘 재평가와 훈장 수여 문제로 화제의 중심에 선 약산 김원봉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졌죠. 하지만 김원봉의 부인이란 이름에 가려지기에는 민족사에 남긴 공과 업적이 너무 큽니다. 학창시절 광주학생의거 투쟁부터 중국에서 의열단을 거쳐 무장투쟁까지 선봉에 섭니다. TV독립열전, 오늘은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항일투쟁사를 고향인 부산에서 김유경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28일 부산시 동래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뮤지컬 <그날이 오면>. 여성 무장 독립투쟁가 박차정 의사의 일대기를 그렸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박차정 의사의 투쟁을 복원해 낸 배우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인터뷰) 최혁(부산시 연제구)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우리 여성운동가인 박차정 의사님을 국민들이 더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고...”

인터뷰) 이상미(배우 / 박차정 역)

“제가 생각할 때 박차정은 지조 있고 강단 있으면서 우리 민족의 여성상을 대표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이지만 앞서서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이 받으셨던 고통이나 아픔들을 몸으로도 함께 같이 표현하면서 그분의 모습을 조금 더 생생하게 보여드리고자...”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부산 동래구 칠산동에 나와 있습니다. 후미진 주택가 골목길 안쪽에 박차정 의사가 살던 생가가 자리합니다.

박 열사가 17살이던 1936년에 건축됐는데요. 지난 2005년 말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의열단과 김원봉을 다룬 영화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한 곳입니다.

목조 기와집 안에 여러 유품이 전시돼있습니다. 박차정 의사의 아버지 박용한, 어머니 김맹련이 보입니다. 1995년 정부에서 받은 건국훈장 독립장도 보관돼 있습니다.

인터뷰) 임필순(동래문화해설사)

“박차정 의사는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굉장히 큰 활약을 했지만 오랫동안 우리들 속에 묻혀 있었어요. 그러다가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음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고 보면 되겠고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동래구청이나 부산시, 보훈처에서 이 생가를 복원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2005년에 지금 이곳 우리가 보고 있는 생가를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강대민(부산시사편찬위원장 / 경성대 전 교수)

“그동안 여성 독립운동사가 연구가 안 됐거든요. 그걸 계기로 해서 여성 독립운동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고. 그 다음 두 번째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우리나라에서 남북간 대치상황 때문에 1995년도 이전에는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 계열 운동은 배제된 상태였다고. 또 함부로 연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러다 박차정 의사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됨에 따라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역사의 전면에서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박차정은 1910년 부산 동래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 가풍 자체가 독립운동 정신으로 가득했습니다. 신식교육을 받고 탁지부에서 측량기사로 일했던 아버지. 일제치하에 근무했다는 자책감에 유서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9살 때 아버지의 우국충정을 경험한 그녀는 항일의식을 키우며 성장합니다.

인터뷰) 박의영(박차정 의사 조카 / 박문희 의사 막내아들)

“조모님으로부터 들은 바는 많습니다. 원래 고모님 똑똑하셨던 모양이야. 그 당시 여학교 졸업하고 근우회 활동하시고 똑똑했답니다. 성격이 굉장히 남성적이고...”

# 어둠을 몰아내는 등불

박차정은 15살 때 동래 일신여학교 고등과에 들어갑니다. 기독교 계통이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학굡니다. 학교 안에는 기념관이 있는데요. 박차정은 교지 <일신(日新)> 2집에 ‘철야(徹夜)’라는 소설을 싣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옥사한 독립투사의 아들과 딸이 고아가 된 사연을 다뤘는데요. 추운 겨울 밤 사회의 냉대와 굶주림에 맞서면서 밤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로 민족의 수난사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일제와 맞서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민족정신이 깃든 유서 깊은 동래여고.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이수미(동래여고 3학년)

“당시에 일제 강점기라서 어른들도 잘 나서지 못 하는 독립운동 상황에서 학생 신분으로서 그리고 여잔데 그때 나서서 독립운동을 앞에서 주도적으로 했다는 게 현대 여성상에서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차정은 근우회 활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 듭니다. 근우회는 차별받는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항일운동을 펼치는 단체였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는 서울에서 시위를 이끕니다. 일제에 구속돼 이곳 서대문 형무소에 갇힙니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감옥에서 나온 박차정은 의열단원이던 둘째 오빠 박문호를 따라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인터뷰) 강대민(부산시사편찬위원장 / 경성대 전 교수)

“둘째 오빠 박문호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 때문에 박차정 의사가 중국에 가게 되는 거죠. 두 오빠는 동래지역 명문사학이 동래보통사립학교거든요. 다 이 대학, 이 지역 출신입니다. 이 집에 살았고, 이 지역에. 오빠가 국내 신간회 활동을 1927년에 하다가 결국 한계를 느끼고 중국에 가게 된 거죠. 그때는 함부로 중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비밀리에. 그때부터 이분이 의열단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의열단 활동을 하면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하게 돼요. 1934년도에 미혼인 상태로 20대에 옥사를 하게 되는 게 둘째 오빠고...”

인터뷰) 박의영(박차정 의사 조카 / 박문희 의사 막내아들)

“(선친이자 박차정의 첫째 오빠 박문희는)신간회 중앙상무위원 하셨고 의열단 소집책을 담당하시다가 2년 감옥생활을 하셨죠. 나오셔서 정당 활동 하시다가 언론인 활동도 하시다가 해방 후에는 모든 걸 다 그만두세요. 하도 그 당시에 해방 후에 좌우 시끄러우니까...”

# 독립은 무력(武力)으로 쟁취하는 것

의열단에 합류한 박차정은 22살에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결혼합니다. 결혼 뒤 본격적으로 무장 독립투쟁 전선에 뛰어드는데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여자부 교관으로 여성독립군을 기릅니다. 1932년 만주사변 이후 한중이 연합해 만든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단장도 맡습니다. 그러다 그만 강서성 곤륜산(관) 전투에서 어깨에 총상을 입습니다. 총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독립을 1년 앞둔 1944년 35살에 순국합니다. 해방 뒤 남편 김원봉은 박차정의 유해를 안고 귀국해 자신의 고향 밀양에 안장합니다.

인터뷰) 박성일(부산동래여고 교사 / 인문사회부장)

“그 당시에 여성이 실제 총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운 경우고 실제 그렇게 뛰어들었고. 거기에서 총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몇 년 뒤에 돌아가셨고... 44년도에 돌아가시고 95년도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으니까 50년의 세월을 거의 잊혀진 채...”

박차정 의사의 항일 투쟁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란 배경과 깊이 연결됩니다. 어머니 김맹련은 약산 김원봉과 의형제를 맺었던 약수 김두전과 육촌입니다. 또 한글학자이자 무장독립투쟁사에 큰 족적을 남긴 태항산 호랑이 김두봉과 사촌이고요. 큰 오빠 박문희 선생은 신간회 활동을 거쳐 김원봉의 요청으로 독립군을 모집합니다. 그러다 체포돼 일제 치하에서 징역을 삽니다. 국가보훈처는 박문희 선생에게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습니다. 둘째 오빠 박문호 선생은 올 11월 순국선열의 날을 계기로 공적 심사를 받습니다.

인터뷰) 박의영(박차정 의사 조카 / 박문희 의사 막내아들)

“정확한 자료도 없이 제 아버지 월북했다고 하는 것. 그 당시 빨갱이라고. 어릴 때 굉장히 상처 받았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신원조회가 나와요. 여러 가지 남모르는 굴레, 트라우마, 시선 이런 게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어린 제 심정에는 아주 싫어했어요. 독립유공자... 말도 끄집어내지 말라고... 심지어 저는 한때 뭐라고 했냐면, 제가 만약 제 앞에 고모님이나 아버님 계시면 나는 항의를 하겠다, 왜 쓸데없이 독립운동을 했느냐. 우리가 이렇게 피해를 보고 본인들도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고...”

부산시 금정문화회관 만남의 광장 박차정 의사의 동상입니다. 군복에 총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늠름한 기상이 엿보입니다. 35살 길지 않은 삶을 일제의 폭거에 맞서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아울러 여성 차별에 맞서 평등을 지향했던 여성해방 의사이기도 했습니다. 민족과 여성의 아픔이란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온몸으로 투쟁하다 산화한 박차정 열사. 그녀의 불꽃같은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가슴에 와 닿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단비뉴스 김유경입니다.

(영상취재 : 김유경, 윤종훈 / 편집 : 김유경 / 앵커 : 최유진)


편집 : 김유경 기자

[김유경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기획탐사팀 김유경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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