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환경디자이너 좋아은경

좋아은경(34·본명 김은경)씨는 야간 자율학습을 강요하는 고등학교가 싫어 입학 3일 만에 때려치웠다. 집에서 교육방송(EBS) 강의로 공부하던 좋아씨는 TV강연에서 ‘그린 디자이너 1세대’로 꼽히는 환경활동가 윤호섭(76·시각디자인) 국민대 명예교수를 발견했다. 윤 교수는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헌옷에 환경관련 그림을 그려주는 등의 독특한 활동을 했다. 그는 88서울올림픽 디자인에 참여하고 펩시콜라의 한글 로고 등을 만든 유명 상업 디자이너 출신이다.

자기가 잘 하는 것으로 세상에 기여하기

윤 교수가 매주 일요일 서울 인사동에서 헌옷을 가져온 사람에게 천연염료로 그림을 그려준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던 것이 2003년 무렵. 윤 교수는 좋아씨에게 누군지, 몇 살인지, 왜 오는지를 묻지 않았고 좋아씨는 이후 4년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찾아가 윤 교수의 작업을 도왔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 윤 교수의 말이 강렬하게 다가왔고, 환경 이야기를 환경 운동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환경재단 ‘피스 앤 그린보트’에 초대손님으로 탑승한 좋아은경씨가 지난 4월 10일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장은미

좋아은경 씨는 지난 4월 9일부터 7박 8일간 한일 양국 시민 1천여 명이 한배에 타고 동북아시아의 환경과 역사문제 등을 토론한 ‘피스 앤 그린보트’에 초대손님으로 탑승했다. 주최 측인 환경재단은 좋아씨를 ‘그린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그는 선상 워크숍에서 달력의 스프링, 시금치묶음용 끈 등으로 쓰이고 버려진 철사를 모아 작업을 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재활용 소재에 디자인을 접목해 더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으로 환경 메시지를 전하는 좋아씨의 활동에 많은 참가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단비뉴스>는 4월 10일 그린보트 내에서 좋아씨를 직접 만나고 지난달 14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좋아씨는 검정고시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통해 2005년 성공회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사회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성공회대와 국민대를 같이 다녔다고 할 정도로, 당시 국민대에 있던 윤 교수 작업실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졸업 후에도 3년간 ‘어시스턴트(조수)’로 윤 교수를 도왔다. ‘좋아’라는 이름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다짐으로, 17살 때 시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버려진 철사로 만든 ‘침묵의 봄’

윤 교수는 지난 2004년부터 매해 환경 피해를 최소화한 그린 디자인으로 달력을 만들었는데, 배포되고 남은 달력을 좋아씨가 분리 배출하는 과정에서 ‘침묵의 봄’이 탄생했다.

“철이 엄청난 자원이잖아요. 그날도 (달력 스프링을) 분리배출 하는데, 달력을 벗어나는 스프링이 마치 나뭇가지를 잡은 새의 발톱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걸 구불구불 펴서 새를 만들어 보았고, 혼자 보기 아까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윤 교수에게 보냈다. 윤 교수는 “통렬한 아이디어니까 작품을 계속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좋아씨는 오직 버려진 철사만을 이용해 계속 작품을 만들었다. 빵을 묶는 끈, 채소 단을 엮는 끈 등 우리 주변에 버려진 철사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사람들이 철사로 만든 작품들을 보면서 이 철사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지, 어떻게 하면 낭비가 없을지 떠올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좋아씨가 작품을 시작한 2012년은 살충제 환경오염을 고발한 레이첼 카슨(1907~1964)의 <침묵의 봄>이 나온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환경이 파괴돼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카슨을 기리며 좋아씨는 첫 작품의 이름을 ‘침묵의 봄’으로 정했다.

▲ 버려진 달력 스프링이 한 마리 새로 변신했다. 좋아씨는 여기에 ‘침묵의 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좋아은경

살충제 오염 경고한 레이첼 카슨과 각별한 인연

좋아씨는 레이첼 카슨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대학시절 교내 신문사에서 개최한 편지쓰기 공모전에서 카슨에게 쓴 편지가 당선됐다. 해양생물학자로서 미국 어류야생동물국의 고위직에 올랐던 카슨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아는데 어떻게 외면하나’ 하는 생각으로 용감한 고발자가 됐다. 이후 화학회사 등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았던 카슨의 삶을 좋아씨는 편지에서 높이 평가했다. 그는 카슨의 <침묵의 봄>이 지금도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첼 카슨이 쓴 책에는 이런 언급도 있어요. 나무 종류와 벌레 이름을 아는 것보다 자연에 경외심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고요. 자연이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지 감동을 받고나면 그걸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죠.”

좋아씨는 철사(와이어) 아티스트로서, 대안공간이나 갤러리 등에서 소규모 전시와 강연 등을 꾸준히 하고 있다.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레이첼 카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을 달고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이다.

“레이첼 카슨이 누구지 하고 그녀를 떠올리면서, 그녀가 50년 전에 제기한 그런 문제의식을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잠시라도 떠올리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해요. 예술작품을 매개로 환경과 사회문제를 공유하고 싶어요.”

▲ 철사로 새집을 만들고 쓰레기를 동그랗게 말아 새알을 만든 좋아씨의 작품 ‘침묵의 봄; 새둥지’. ⓒ 좋아은경

양탄자 밑으로 먼지를 쓸어 넣는 짓은 그만

좋아씨는 삶에서도 환경적 실천을 이어나가기 위해 ‘형편없는 살림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의 <잃어버린 숲>에 나오는 ‘형편없는 살림꾼’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다. 카슨은 이렇게 말했다.

“현대적인 방식이 만들어낸 엄청난 쓰레기 처리 문제에 직면할 때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과학의 안내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만 안보이면 된다며 양탄자 밑으로 먼지를 쓸어 넣어 버리는 속담 속의 '형편없는 살림꾼'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가져온 온갖 종류의 쓰레기를 시내에 갖다 버립니다. 우리는 수백만 개의 굴뚝과 쓰레기 소각장에서 배출되는 연기와 유독 가스를 대기로 내보냅니다. 대기가 그러한 것들을 수용할 만큼 충분히 광활하다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좋아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bad.housekeeper)에 일회용품 없이 여행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간 태국을 여행했을 때는 물병, 아이스티용 텀블러, 뚜껑이 달린 도시락통, 손수건, 젓가락, 티스푼, 장바구니를 챙겨 떠났다.

“‘잘 하고 있어요’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방심하면 쉽게 일회용품을 쓰게 되는 시행착오를 보여주려 했죠. 우리가 깔끔한 행색으로 다니지만 내가 버린 쓰레기는 지구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형편없는 살림꾼일수밖에 없음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 좋아은경씨는 인스타그램에 일회용품 대신 쓸 물병과 도시락통 등을 챙겨 태국을 두 달간 여행하는 모습을 올렸다. ⓒ 좋아은경 인스타그램

지난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가족들과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도 좋아씨는 ‘플라스틱 없는 여행’에 도전하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관련 사진을 올렸다.

“사람들은 ‘나 하나 쯤이야’ 하잖아요. ‘나 하나 줄인다고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겠어?’ 하면서요. 최근 빨대가 코에 끼인 거북이나 고래 뱃속의 비닐봉투가 많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었죠? 저는 그거 보면서 ‘저거 내가 버린 거 아닐까’하고 뜨끔 했답니다. 제 작품과 활동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 : 김지연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