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첨삭후기]
기성언론인 잘못된 글쓰기 답습 말아야

▲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한 언론사 대학기자상 심사를 하면서 기사 작성법과 내용, 양면에서 대학생다운 ‘참신한’ 시도들이 거의 없어 실망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백일장 응모작들은 ‘실망’을 ‘희망’으로 바꿔놓았다 할까, ‘발칙한’ 발상에 만만찮은 필력을 과시한 것들이 꽤 있었다. '1'이라는 단순한 주제어를 던지면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고발하는 글들이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순전히 기우였다.

이런저런 생각과 반성이 꼬리를 물었다. 요즘은 언론인이 되려는 학생들조차 다른 ‘스펙’을 쌓느라 대학언론마저 기피한다는데...... 그래서 대학언론에 실린 기사들이 온전한 평가의 척도가 될 수 없었던 걸까? 기성언론인조차 대개 더 어렵다고 느끼는 칼럼을 예비언론인은 곧잘 쓰는 이유가 뭘까? 그런데 ‘기사 쓰기’에는 왜 약할까? 기사와 칼럼의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교육과 언론현장이 ‘요새 젊은 것들’의 자유분방한 생각을 ‘기사’라는 틀 속으로 우겨 넣으려는 데서 생긴 현상은 아닐까? 복잡다단한 언론사 공채제도가 '시험에 능한 평범한 인재'를 뽑는 데 그칠 뿐, 정작 '고수'들은 ‘강호’에 머물게 하는 건 아닐까?

첨삭을 하다가 상금과 <단비뉴스> 게재 편수를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은 ‘고수’의 잠재적 가능성이 엿보이는 응모자들을 크게 격려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상작 외에도 발상이나 필력이 좋은 글이 많았다. 고치다 보니 거의 이름만 남는 등 그야말로 ‘피투성이’가 된 글이 절반을 넘었지만, 꼭 잘못 쓴 글이어서 많이 고친 건 아니다. 나 역시 그렇지만 좋은 글의 경지가 아득하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수업시간에도 얼굴 붉히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작심하고 고친 글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고, 당신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그래서 신문에 기고해도 좋을 글 한 편을 자기 이름으로 갖게 된 거라고.

저널리즘스쿨에서 선생들이 대개 밤낮 가리지 않고, 휴일도 없이 온-오프라인으로 학생들 글 첨삭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된 글쓰기 습관을 지금 고쳐주지 않으면 평생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성언론인 중에도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가 너무나 많다. 학벌과 같은 '스펙'과 공채시험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언론사 충원제도가 낳은 부작용 중 하나다. 서구에서는 대개 학내외 언론활동 등으로 검증된 학생들이 교수의 엄정한 추천으로 마이너 언론사에 입사하고, 실적을 과시해 메이저 언론사로 옮겨간다. 한국에서 '신문활용교육'(NIE)이 유행이지만 보혁의 관점을 떠나 논리전개와 글쓰기 양면에서 잘못 쓴 글인데도 신문에 실렸다고 열심히 읽는 학생들을 보면, 언론이 우리 말 오염의 주범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과장하지 말라고?

못 믿겠다면, 순 한글신문이기에 그나마 더 공력이 있을 법한 <한겨레> 기자들의 글쓰기를 비판한 ‘시민편집인의 눈’가운데 하나라도 읽어보기 바란다. 어색한 표현과 그릇된 문장을 가다듬고 싶다면 <칼럼1>이 유용할 듯.

<칼럼1>‘동사를 사역•수동•명사형으로 바꿔 쓰는 데 중독’

<칼럼2>‘오•탈자, 문법 오류, 팩트 충돌…미세한 데 승부 걸어야’

백일장에서도 두어 편을 빼고는 문법적 오류와 군더더기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두 붉게 물들고 말았는데, 무슨 ‘가학증세’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다. 반드시 그렇게 써야 하기에 최소한으로 고친 것이다. 입상작이든 아니든 무엇이 고쳐졌는지 일일이 대조하며 읽어 평생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내게 오류가 있으면 반론을 제기하기 바란다.

다음으로, 글의 구조, 이른바 ‘프레임’을 어떻게 짤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역시 ‘시민편집인 눈’으로 대신하는 게으름을 용서 바란다. 앞부분은 신문위기 시대에 왜 오피니언면을 강화해야 하는지 강조한 내용이고, 칼럼이 갖춰야 할 요건은 뒷부분에 나온다. (오피니언면 강화 제안은 지난 5월 <한겨레> 지면개편 때 상당 부분 반영됐다.)

<칼럼3>‘칼럼과 여론면 혁신으로 진보신문 활로 찾아야’

무엇보다 첫 문장이 관심을 끌어야 한다. 인내심 있는 독자라도 첫 문단이 끝날 때까지 재미가 없으면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상당수 응모작들은 처음부터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거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범용자료를 인용한 것이어서 재미 없는 사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독자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늘어지는 문장은 줄이고, 한번 더 생각해야 뜻이 통할까 말까 하는 문장은 독자를 떠나보내는 ‘악문’이라 보고 모두 바꿨다.

절반 이상 칼럼이 결론 부분에서 칼질을 많이 당하고 문장이나 문단이 통째로 바뀐 이유는 뭘까? 마지막 문단은 반전을 하거나 주장을 펴는 곳이니까 좀 박진감 있게 쓸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짧은 문장으로 끝내되, 그 짧은 문장에 의문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결론 부분에서 앞에 나온 문장을 조금 고쳐 반복하거나 사족을 다는 것은 박진감을 죽이는 ‘독약’이다.

가능하면 ‘수미일관’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게 좋다. 글 맨 앞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황당한 시추에이션이 읽어내려 가면서 명쾌하게 정리되면 독자들은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독자들은 그 칼럼니스트 이름을 찾아가며 읽는 고정독자가 된다. 수상작 선정은 어차피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칼럼의 요건들을 비교적 많이 갖춘 것이 상위입상을 했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자. ‘신문은 제목 장사’란 말도 있듯이, 제목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구실을 해주어야 한다. 거의 모든 응모작에 제목을 새로 달았는데, 그런 취지였다. 첫 문장이 아니라 제목으로 복선을 깐 뒤 마지막에 해답을 주는 수법도 좋다.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니라 칼럼에 직설적인 제목을 달면, ‘뻔한 얘기’를 누가 애써 읽겠는가? 최악의 제목은, 흥미를 유발하는 큰 제목을 달고도 바로 뒤에 부제로 해답과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퀴즈를 내놓고 한 줄 밑에 답을 적어놓는 꼴이다.

세계 여론을 이끄는 신문들은 오피니언면으로 독자를 유인하는 갖가지 수법을 동원한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날 <가디언> 사설 제목은 ‘서울 상공에 구름장’(Clouds over Seoul)이었다. 얼핏 날씨기사 제목을 연상케 하는 이 제목은 ‘남한의 햇볕정책에 구름이 끼고 있다’(Clouds are forming in South Korea’s sunshine policy)는 구절에서 나왔다. 여기서 ‘남한 햇볕정책에 암운’ 식으로 제목을 달아버리면 ‘하수’다.


* 이번에 ‘1’이라는 제시어로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해보았는데 프레임이 매우 다양했습니다. 연재되는 첨삭글을 다 읽으면, 어떤 프레임을 세워 어떻게 끌고나가는 게 좋은지, 자신의 글쓰기에 어떤 치명적 악습이 있는지, 감이 잡힐 겁니다. 각자 '1' 아닌  다른 숫자로 상상력을 한번 확대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쓴 칼럼 중에서는 다음 두 편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듯해 첨부합니다. 올해 안에 제2회 백일장을 열 계획입니다. <단비뉴스> 독자들의 많는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칼럼4> '힘내라, 2등'

<칼럼5> '아홉수의 의식구조'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