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공유’

▲ 김지연 PD

올 3월, 승차공유서비스 우버가 창업 10주년을 맞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남는 좌석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아는 사람과, 드물게 일어나던 행위였다. 우버는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을 통해 타인의 동승을 쉽게 연결해주면서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고, 환경문제까지도 해결되는 미래를 제시했다. 많은 사람이 소유(所有)가 공유(共有)로 바뀐 세상은 대량소비 자본주의로 불거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소유 중심의 산업사회가 종말을 고하고 협력적 공유사회가 도래’할 줄 알았다.

우버가 10주년을 맞은 오늘을 되돌아보면 현실은 다르다. 지난달 초에는 미국과 런던에서 우버 기사들이 한시적 파업을 벌였다. 상장을 앞두고, 기업은 성장했지만, 운전사들 처지는 열악해지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나빠진 건 운전자들만이 아니었다. 5월 27일 ‘‘좀비기업' 된 우버... '공유경제'는 사기다’라는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우버의 고향인 미국 대도시에서는 승차공유 서비스가 확대된 뒤 차량이 더 늘었고 도로 체증도 악화했다. 뉴욕, 보스턴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자동차 증가 비율이 인구 증가율을 크게 앞섰다. 소유를 대신하는 ‘공유’의 가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답을 찾으려면 ‘미국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유경제의 본딧말은 미국에서 왔다. 제레미 리프킨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말한 ‘커먼스 이코노미’(commons economy)다. ‘공통의(common)’라는 말에 들어있는 ‘com-’은 의사소통(communication), 공동체(community), 공산주의(communism) 등 공통의 것을 뜻하는 말에 두루 쓰인다. 이 ‘콤’(com-)이라는 말에는 ‘함께 만들어서 함께 나눈다’는 뜻이 들어있다. 공유경제는 정보와 지식, 가치와 자본의 공유와 협력적 상호작용을 통해 생산량은 최소화하면서 경험 가치는 최대화하는 경제다. 공유경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 공공도서관 등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 있었다. 다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더 쉽고 간편해진 것이다.

▲ 우버는 소유를 대신하는 공유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 pixabay

문제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대표주자들이 이런 가치들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로열홀러웨이대학 지아나 에카트 교수 등은 차량 공유 업체인 집카를 연구한 뒤 “이용자들이 누군가와 무엇을 공유할 때 느끼는 상호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며 공유경제는 결코 ‘공유’라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실제로 지금 대부분 공유경제 기업들은 ‘셰어링 이코노미’(sharing economy)라고 해야 정확하다. 여기서 share는 ‘몫을 나눈다’는 의미인데, 내 몫에서 남는 분을 시장에 내놓고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온디맨드(On-Demand) 경제’가 바로 그 실체다.

지금 플랫폼 시장에서 공유 개념은 단순히 서로 남는 유·무형의 자원을 매칭하는 행위로 전락했다. 플랫폼은 매칭하는 ‘장소’의 지대로 불로소득을 챙긴다. 독점 이윤을 가져가는 플랫폼과 임시로 노동하는 긱(gig) 노동자 사이에는 엄청난 소득 양극화가 불 보듯 뻔하다. 우버를 비롯한 공유경제 스타트업들은 사모펀드를 통해 자금을 마련했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낮게 책정된 가격은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면서 이후 더 큰 불로소득을 뽑는 토대가 된다. 정부도 ‘4차산업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규제 완화 등 특혜를 주고 있다. 가짜 공유경제가 진짜 공유경제의 기치를 뒤집어쓰고 불로소득을 긁어모으고 있다.

우리에게 진짜 공유경제가 필요하다. 남는 몫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셰어링 이코노미는 결코 소유를 줄일 수 없다. 내 몫이 있어야 남는 몫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것과 네 것의 구분보다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것을 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연대’의 경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우치서핑’과 ‘블라블라카’다. 카우치서핑은 에어비앤비와 비슷하지만 돈이 오가지 않는다. 대신 경험이 오간다. 블라블라카는 우버와 비슷하지만 여행자들 간에 남는 자리를 싼 값에 내어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두 모델 모두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사람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른 모델도 연구되고 있다. 플랫폼의 독점을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으로, 최근 떠오르고 있는 ‘플랫폼 협동주의’다.

마르크스가 말했던가, 노동자의 승리, 곧 임금 상승은 잠시일 뿐 진짜 결실은 확장된 노동자의 단결에 있다고. 공유경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기업가나 경제지가 말하는 공유경제의 ‘경제성’은 부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를 공동체가 나누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연대가 확장되는 것. ‘소유’와 ‘무소유’ 간의 격차를 뛰어넘어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려야 할 진정한 공유경제의 청사진이 아닐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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