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㊷ 금관의 기원

신라 무덤의 고구려 솥에서 찾는 금관 기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보자. 1946년 경주 노서리 고분군의 적석목곽분 호우총(壺杅塚)에서 출토한 유물이 눈길을 끈다. 해방 뒤 우리 손으로 진행한 첫 발굴 유물 가운데,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호우(壺항아리, 杅사발)가 반긴다. 호우총이란 이름을 안겨준 청동 그릇이다. 을묘년은 장수왕 3년 415년으로 413년 광개토대왕이 죽은 지 2년 뒤다. 광개토대왕 비문이나 충주 고구려 비문처럼 예서체 한자로 쓰였다. 광개토대왕 장례 기념품을 신라 왕릉 급 무덤에 부장한 점은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대로 신라의 금동관 역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새 깃털 형상의 금동관이나 관모 금장식이 이를 말해준다. 문물은 고구려에서 신라뿐 아니라,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흐른다.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초원길을 통해 기마민족이 전파한 금관이나 금동관, 관모 금장식도 마찬가지다. 신라, 가야, 마한, 백제, 고구려, 일본을 넘어 몽골초원의 선비족과 훈족, 중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월지와 스키타이, 흑해 연안 스키타이, 지중해 연안 그리스 로마까지... 이제 금관 문화 탐방의 종착점, 인류 역사에서 금관은 언제 어디서 처음 시작됐는지 살펴본다.

▲ 고구려 호우. 경주 호우총 출토. 장수왕 때 415년 제작. 국립중앙박물관. ⓒ 김문환
▲ 고구려 호우에 적힌 예서체 글씨. 경주 호우총 출토. 장수왕 때 415년 제작. 국립중앙박물관. ⓒ 김문환

문자 발명지 메소포타미아 B.C 25세기 관모 금장식

무대를 대영박물관으로 옮겨 보자. 인류 역사에서 문자를 처음 발명한 주역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다. B.C 3200년 경이다. 이때부터 기록을 시작한 인류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접어든다. 수메르는 문자 창조에 이어 문학, 과학은 물론 금관 문화도 앞섰다. 대영박물관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본거지 우르(Ur)의 왕실 묘지에서 출토한 유물이 탐방객의 눈길을 끈다. 관모 금장식이다. 금으로 만든 여러 개의 띠, 금 꽃잎, 금 달개가 보인다. 머리에 쓴 복원 모형을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누가 이런 금관을 사용했는지도 분명해진다. 피장자의 목 부위에 각종 구슬로 만든 목걸이가 보인다. 여성이다. 그러니까, 머리에 쓰는 금장식은 권력이라기보다는 고귀한 신분과 부를 과시하는 화려한 장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B.C2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실묘지의 여성 관모 금장식부터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북분과 서봉총의 여성추정 무덤 출토 금관들까지 말이다.

▲ 메소포타미아 여성 관모 금장식. 우르 출토. B.C2500년 경. 런던 대영박물관. ⓒ 김문환
▲ 메소포타미아 여성 관모 금장식. 복원 모형. 런던 대영박물관. ⓒ 김문환

농사 문명의 발원지 아나톨리아 B.C25세기 금관

이제 금관 문화의 기원을 밝히는 여정의 끝자락에 섰다. 그리스 미케네는 물론 메소포타미아와 인접한 터키의 아시아 쪽 땅 아나톨리아(Anatolia)로 가보자. 아나톨리아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발원지다. 두 강은 터키에서 시작해 시리아를 거쳐 이라크에서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간다. 그동안 메소포타미아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최근의 발굴성과를 보면 아나톨리아는 신석기 농사 문명의 출발과 최초의 집단 거주지와 관련해 주목할 유적과 유물을 간직한 곳으로 밝혀졌다. 1만2500년 전 지구가 간빙기에 들어 따듯해지면서 농사 문명이 시작되는 지점이 아나톨리아다. 1만1500년 전이다. 2006년 독일 잡지 슈피겔은 “쾰른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아나톨리아 차요뉘 근처 카라카(karaca) 산지에 현재 지구촌 주요 곡물 68가지의 공통 조상 식물이 야생으로 자란다는 걸 발견했다”고 보도한다.

이 원시 곡물이 밀로 진화해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일원에서 본격 재배된 것은 B.C9600년 경, 보리로 재배된 것은 B.C8500년 경 부터다. 이것이 초원의 길을 타고 중국과 한반도로 흘러왔다. 우리 사회 배고프던 시절을 상징하는 ‘보릿고개’라는 말은 이런 전파의 산물이다. 쌀은? 2011년까지 연구결과 반대다. 자포니카와 인디카 품종의 공통조상이 중국 양자강 유역에서 B.C1만1500년-B.C6500년 재배된다. 그러다, B.C4500년경 인도로 전파돼 인디카로 분화된다. 문물은 이렇게 오간다. 금관도 그렇다.

▲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오스만 투르크 시절 바자르(시장) 저장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 김문환
▲ 망자의 머리와 얼굴을 장식하던 금유물. 터키 퀼테페 출토. B.C19-B.C17 앙카라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터키 수도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은 농사 문명 초기 인류의 유물을 간직한 보배같은 곳이다. 금관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앙카라에서 동북쪽 흑해 방향으로 200여km 지점에 보아즈칼레(Bogazkale)라는 마을이 나온다. 지금은 작고 초라하지만, B.C15세기 인류사 최초의 철기 문명을 발전시킨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Ḫattuša) 유적지가 이곳에 자리한다. 여시서 다시 동북쪽으로 1시간여 더 가면 알라자 회윅(Alaca Höyük)에 이른다. 선사시대부터 히타이트 시대까지 유적이 확인된 이곳에서 초기 형태 금관이 다수 쏟아졌다. 원형 테인 대륜(臺輪)을 갖춘 금관(Diadem)이다. 대륜 잔해만 남은 것부터 폭이 넓은 격자무늬 대륜 금관까지 다양하다. 쭉 훑으며 단군할아버지 보다 오래된 금관의 역사를 일별하자. 모두 B.C2500년-B.C2250년 사이 유물이다.

▲ 금관테(대륜) 일부. 알라자회윅 출토. B.C2500년-B.C2250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 원형으로 남은 금관 대륜. 알라자회윅 출토. B.C2500년-B.C2250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 원형으로 남은 금관 대륜. 폭이 넓다. 알라자회윅 출토. B.C2500년-B.C2250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 원형으로 남은 금관 대륜. 위아래로 작은 돌기가 줄지어 있다. 알라자회윅 출토. B.C2500년-B.C2250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 격자무늬 대륜 금관. 알라자회윅 출토. B.C2500년-B.C2250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 원형 금관. 4개의 가지를 아래로 늘어트린 형태. 알라자회윅 출토. B.C2500년-B.C2250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 관모형 금관. 메소포타미아 우르 출토 유물과 비슷하다. 알라자회윅 출토. B.C2500년-B.C2250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 김문환

금관은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로는 터키 땅 아나톨리아의 B.C2500년이 상한선이다. 신라와 가야의 금관이 나오기 3000여 년 전이다. 밀이나 보리, 쌀은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오거나 택배로 오지 않는다. 사람이 움직여 전파한다. 금관 문화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수백 년... 아니 그 이상 시차를 두고 천천히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간다. 전파된 곳에서 나름의 새로운 모습을 담아 다시 이동한다. 문화전파와 창조의 본질이다. B.C2500년경 아나톨리아에서 금관이 시작됐다면, 황금 문화는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다뤄야 할 내용이 금관보다 더 많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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