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연동형 비례제 합의했지만, 의원 증원 반대여론이 ‘철벽’’
- 원내 대표들 ‘30석 이내 증원’ 정동영 심상정 ‘60석은 늘려야’
- 부정적 여론 의식해 지역구 수 줄이는 것은 의원들이 반대
  (2018. 12. 17 <조선일보> ‘여야 5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 기사 제목)
‘새 선거제땐 서울 7석, 영남 7석, 호남 6석 감소…지역의원들 반발’
‘암호 같은 새 선거제 계산법…박지원 ‘이거 이해할 천재 있나’’
‘한국, 바른미래 ‘세 선거제 민주 정의당에만 유리’’
  (2019. 3. 19 <조선일보> ‘여야4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잠정합의’ 기사 제목)

▲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국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 pixabay

비례성 강화한 연동형 비례제, “의석수 준다” 반발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정치권은 물론 정치에 관심 있는 국민들이 계속 접하고 있는 이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민심과 괴리된 국회 구성을 현실에 맞게 고치기 위해 국회의원을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정치개혁이 자기네 의석수가 줄어든다며 장외로 나간 자유한국당의 반발로 석 달째 표류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인지, 왜 도입하는 건지, 국민의 주권행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건지, 제도의 본질과 취지에 관한 설명은 없이 여야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의석수와 자기 지역구 보존에만 여념이 없고 언론은 앵무새처럼 그대로 읊조리고 있다.

▲ 여야 5당이 지난 12월 16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합의한 다음 날 <조선> 6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 등은 설명하지 않고 정당별 의석수 변화 등 정략적 득실에 관한 것만 보도했다. © <조선> 지면 캡처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한 여야 5당이 지난해 12월 16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합의한 뒤 <조선>은 ‘연동형 비례제 합의했지만 의원 증원 반대 여론이 철벽’이라거나 몇 정당이 의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만 보도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3월 18일 연동형 비례제의 구체적 방안에 잠정 합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다음 날 신문 5면에 ‘새 선거제땐 서울 7석, 영남 7석, 호남 6석 감소…지역 의원들 반발’이란 기사를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조선>은 그 전날 지면에서도 ‘새 선거제 적용땐…여 128→143석, 한국당 113→95석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국민들 지지를 받는 만큼 의석수를 배정받아 국민의 뜻이 정확하게 국정에 반영되도록 하려는 정치 개혁적 조처라는 점은 단 한 줄도 없고, 자유한국당의 의석수 줄어드는 데만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이다.

▲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합의한 연동형 비례제 합의 내용을 보도한 3월 18일자 <조선> 5면. © <조선> 지면 캡처

‘정치개혁’ 언급 없이 밥그릇 계산만 하는 <조선>

<조선>의 본말전도식 보도는 <단비뉴스> 미디어 비평팀의 취재에서도 확인됐다. 양안선 PD가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제에 합의한 3월 18일부터 1주일 동안 <조선>과 <한겨레>의 관련 기사를 분석해 보도한 것을 보면, <조선>은 11건 관련 기사 중 55%가 ‘밥그릇 지키기’ 내용이고, ‘정치개혁’이란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국민의 대표 선출 방식과 대표권 행사 방법을 바꾸려 하면서 국민에게는 새로 도입하려는 제도가 어떤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국민대표권 행사를 어떻게 강화하는 것인지에 관한 설명은 없고 의석수를 비롯한 정략적 계산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정당학회는 지난 2016년 ‘한국의 대통령제에 적합한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관한 연구’보고서에서 한국 정치체제의 주요 문제점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의 의석을 독점한다는 점, 금권선거 및 선심정치가 만연하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한국 정치체제 문제점을 해결할 대안의 하나로 비례대표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정당학회 보고서가 제시한 비례대표제 개선방안 중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5년 2월에 제시한 연동형 비례제가 들어 있고, 그에 기반해 여야 5당이 도입하기로 합의한 것이 ‘비례성을 강화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석을 정당들이 국민들한테 받은 득표율만큼 배분’하는 제도로, 정확하게 민심을 반영한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소선거구제는 ‘다수득표자’ 독식체제여서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는 자신들 의견을 국정에 반영할 길이 없다. 낙선자에게 던진 표는 전부 사표가 되고 만다.

예를 들어 한 지역구 선거에서 다섯 후보가 출마해 그중 35% 득표를 한 후보가 당선되고 나머지 후보들이 각각 32%, 17%, 10%, 6%를 얻어 낙선했다면 낙선후보에게 투표한 65%는 사표가 된다. 낙선자에 투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할 방법이 없어지고 그 지역 유권자들의 대표권은 35%만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민심과 괴리된 지역할거형 양당구조 타파

특히 지역할거형 양대 정당체제인 우리 국회는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유권자를 지역주의 볼모로 잡아 국민의 주권행사를 왜곡하고 있어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을 통한 비례성 강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정당 득표율은 33.5%인데도 의석은 40%인 122석을 얻었고, 더불어민주당은 25.5%의 득표율로 의석은 41%인 123석을 확보했다. 양대 정당이 득표율은 절반이 좀 넘는 59%밖에 안 되는데도 의석수는 전체 의석의 81%가 넘는 245석을 차지한 것이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득표율 7.2%를 얻었는데도 의석은 6석에 그쳤다. 정당득표율로 보면 21석 이상을 얻어야 하는데 3분의 1도 안 되는 의석을 가진 것이다.

▲ 한국갤럽이 발표한 최근 20주 정당지지도 추이.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을 합친 것이 최소 55%에서 최대 67%로 나타났다. © <경향> 캡처

또 여론조사기관들의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양대 정당 지지율의 합은 늘 60~70% 사이를 오간다. 나머지 30~40% 국민은 자신들 주장이나 의견 등을 국정에 반영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민심과 국회 구성의 불일치 상태를 해소하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도입하려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연동형 비례제는 위헌인가?

자유한국당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연동형 비례제가 자신들 의석수를 줄어들게 하는 제도라며 ‘위헌론’ 등을 내세운다. 자유한국당이 반대 명분으로 내거는 주장들은 사실일까? <단비뉴스>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검증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3월 11일 원내대책회의 등에서 “2001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나 의원 주장대로 2001년 헌법재판소는 ‘당시의’ 비례대표제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비례대표제 자체가 위헌이 아니라 유권자에게 지역구 후보에게만 투표하게 하고 정당에 투표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채 후보에 투표한 것을 정당 득표율로 간주해 비례대표를 배정한 것이 위헌이란 취지였다.

그러나 지금 여야 4당이 잠정 합의한 내용은 유권자에게 지역구 후보 투표권과 정당 투표권을 둘 다 부여해 놓아 헌재가 결정한 위헌과는 관계가 없다.

같은 당 정태옥 의원은 3월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비례대표가 늘어나면 간선제가 강화돼 헌법상 직접선거의 원칙이 훼손된다”는 주장을 폈다. 또 김기선 의원은 “헌법에 명시된 표의 등가성,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헌법 41조 1항은 “국회를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말하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의 원칙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지 국민이 자신들 대표를 직접 뽑는다는 선거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선거는 남녀 귀천 없이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고, 평등선거는 누구나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한다는 것이며, 직접선거는 다른 사람이 대신 투표할 수 없다는 원칙이고, 비밀선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투표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규정해 놓은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 유권자가 지역 대표로 직접 뽑는 지역구 의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위헌은 아니다.

김기선 의원은 3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문제점에 대한 토론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헌법에도 명시된 표의 등가성,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비판했다.

그의 ‘표의 등가성’ 주장은 등가성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표의 등가성이란 표의 값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선거구마다 유권자수가 달라 지역마다 선출되는 사람들의 대표권이 차이가 난다는 의미다. 유권자 10만이 뽑은 국회의원과 20만이 뽑은 국회의원을 비교하면 전자는 표의 값어치가 10만분의 1이라면 후자는 20만분의 1이 된다. 이럴 때 표의 등가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굳이 말하면 대표권의 등가성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는 무관한 개념이다.

지나치게 복잡하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3월 19일 여야 4당 잠정 합의 후 원내대책회의에서 “복잡한 선거제로 눈과 귀를 가리는 좌파 장기 독재 야합 세력에 엄중 경고한다”고 말했다. 평화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3월 18일 의원총회에서 “지금 이 설명을 이해하는 천재가 있느냐”며 “나 정도 머리를 가진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금의 비례대표제보다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정치제도나 선거제도라는 것이 늘 처음 보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을 알고 의석 배분 방식을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이 제도의 근본 취지가 ‘현재 300석의 국회의석을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자는 것’이란 점을 알고 그 방법을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제도다.

자유한국당이 자신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제’ 합의안을 내놓았을 때 자기네 의석수가 줄어든다며 바로 반발한 것은 그 제도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제도 자체가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새로운 제도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제도라 받아들이기 싫다 보니 이해하기 싫은 것이고 복잡하다는 핑계를 대는 것일 뿐이다.

특정 정당을 과도하게 대표한다?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3월 21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문제점 토론회에서 “정치적 이슈를 들고나오는 정당이 과도한 의석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선동 의원은 같은 토론회에서 “극우 아니면 극좌 또는 특정 계층당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이슈를 들고 나오는 정당이 과도한 의석을 얻을 것이란 주장은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과 수준을 폄훼하는 발상이다. 정치적 이슈라고 해도 국민들이 동의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정당이 높은 정당득표율을 얻는 것이고, 정략적인 것이라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될 것이다. 극좌 또는 극우 정당의 양산이란 주장도 지금 정당 지지율 추이를 보면 기우다. 지난달 2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6%, 한국당 24%, 정의당 9%, 바른미래당 5%, 민주평화당 0.4%, 기타정당 1% 순으로 나타났다. 호남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지닌 민주평화당도 정당 득표로는 의석을 많이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진보성향 정당들이 과반을 넘는 구조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정치지형의 문제이고 각 정당이 국민의 뜻과 그 변화에 얼마나 신속하게 반응하고 수용하는가의 문제다. 진보정당이 다수가 될 것이란 말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고 정당은 그런 변화를 읽고 적응하며 대변해야 국민의 지지를 얻고 정당 득표율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악이란 결코 진부하거나 평범하지 않으며 고도의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지금 유튜브 등을 이용한 가짜뉴스 제작과 유포 행위는 평범하지 않을뿐더러 고도로 계산된 ‘범죄’이며 건전한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주범’이다. 기성 언론 중에도 사실확인보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매체가 많다. 이들은 잘못되면 ‘오보였을 뿐’이라면서 의도성을 감춘다. 이에 성역 없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가 명백한 가짜뉴스뿐 아니라 ‘무리한 흑백논리’ ‘일반화 오류’ ‘인과관계 오류’ 등 진실과 거리가 먼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편집자)

편집 :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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