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윤지오 증언’ 보도 분석

▲ 이자영 기자

2009년, 일명 ‘장자연 리스트’로 연예계 성 접대 의혹이 화두로 떠오른 지 10년이 지났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언자라는 윤지오 씨는 2019년 3월 5일 처음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4월 30일까지의 언론 보도와 방송 프로그램을 분석해보면, 윤 씨에 관한 <조선일보> 기사는 12건, TV조선은 9건뿐이다.

‘침묵’이 키운 의혹

3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KBS는 대부분 현장을 중심으로 53건의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KBS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을 통해 윤 씨와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 일가를 추측할 수 있는 자막을 덧붙였다.

▲ ‘거리의 만찬’ 프로그램은 ‘반갑다’는 인사를 ‘방’이라는 특정 성씨를 연상시키는 자막으로 처리해 간접적으로 <조선일보> 일가를 겨냥했다. ⓒ KBS

MBC는 윤 씨와 관련된 기사 105건을 보도했다. MBC 역시 KBS와 마찬가지로 검찰과 법정 출석 등 현장 기사를 주로 보도했다. 하지만 윤 씨를 뉴스데스크에서 인터뷰하는 과정에서는 그에게 실명 공개를 거듭 요구하는 앵커의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 SBS는 62건, <중앙일보> 70건, <동아일보> 74건을 보도했다.

윤 씨 발언 이후 <조선일보>의 윤 씨 관련 기사 건수는 타 언론에 견주어 극명하게 적다. 이런 ‘침묵’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윤 씨가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일가가 포함되어 있다고 진술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 2019년 3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언론사별 장자연 보도 비중이다. 윤 씨 관련 방송기사 306건 중 TV조선 보도는 9건, 신문기사 221건 중 <조선> 기사는 12건이다. ⓒ 이자영

‘거짓말’ 프레임이 부추긴 불신

4월 17일 <조선>은 ’김학의•장자연 사건, 여론과 이해관계 휩쓸리며 과장•왜곡’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윤 씨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여론이 왜곡•과장되고 있다는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반면 ‘버닝썬 성범죄 사건’에 관해서는 3월 16일 ‘정준영과 현실 권력에 면죄부 준 지상파’라는 간부진 칼럼을 통해 공영방송을 비판했다. 정준영이 복귀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방송사는 KBS다. <조선>은 지난 2019년 2월 11일부터 15일까지 ‘공정성을 잃은 지상파’라는 시리즈 기사를 내보낸 적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오마이뉴스> 등이 <조선>의 편향성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장자연 리스트’와 <조선>을 연관 지어 다뤘다고 언론사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고소 이전에 <조선>은 자사의 침묵이 의혹을 키우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 조선일보 프레임 속 윤 씨는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다. ⓒ 다음, 조선닷컴, TV조선

‘윤지오 카톡 논란’이 일어난 4월 23일, <조선>은 3건의 기사를 추가로 보도했다. ‘경찰, "윤지오 신변위협 정황 없어….비상호출 무응답은 기계 조작 미숙"’, ‘"경호비용만 매달 2800만원" 美 사이트에 '윤지오 이름'으로 모금캠페인 개설’, ‘김수민 측 "윤지오 명예훼손•모욕 고소"….윤지오 "소설 쓴다" 맞고소 방침’이 그것이다. ‘윤지오 이름’이나 ‘경호 비용만 2800만’ 등 기사 제목은 대부분 윤 씨에게 반감이나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제목이다.

<조선일보>는 판매 부수와 영향력이 큰 언론이다. 프레임과 논조가 명확한 만큼 지지층도 명확하다. 이런 언론의 프레임은 독자의 불신을 키운다. 타 방송사의 공정성을 논하기 전에 영향력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다. 윤 씨가 거짓말한다고 주장하는 변호사, 작가, 기자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윤 씨가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현재 대다수 언론이 ‘경호 비용 900만원’ ‘캐나다 출국’ ‘윤지오 거짓말’ 등 그에게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거짓말’ 논란 속에 ‘부실수사’도 묻혀

언론이 ‘윤지오 증언’에만 신경 쓰는 사이 ‘장자연 사건’의 실체는 실종되었다. 언론은 ‘윤씨가 거짓을 말하느냐’보다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리스트에 명시된 사람들에 관해서도 MBC ‘PD수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탐사보도가 지속돼야 한다. 특정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사건 자체를 바라봐야 하지만, 소수 언론만이 이를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연예계, 권력층과 대형 언론사가 연계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가해자’로 지목되는 대상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쉽지 않다. MBC 뉴스데스크와 같은 실수는 삼가야 하지만, 윤 씨의 증언에 관한 조사는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고인이 된 장자연 씨는 말이 없고, 윤 씨가 ‘숨은 목격자’라고 지목한 동료 여배우도 침묵하고 있다.

윤 씨는 개인 SNS를 통해 “한국 미디어 창피하다, 이런 식으로 기사 쓴 것 책임져라”고 말하며, 한국 언론 접촉을 피하고 있다. 윤 씨의 증언을 통해 과거사위 진상조사가 2개월 연장되었지만, 윤 씨 또한 진술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들은 그의 진술 번복으로 일관성과 신뢰성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윤 씨는 자신이 떳떳하다고 말한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이제는 언론이 만든 프레임에 맞서 증언해야 한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등장한 윤 씨는 언론을 통해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자신에게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지자 입을 닫아버렸다. 언론은 그가 왜 자신을 ‘유일한 증언자’라고 말했는지, 다른 증인은 없는지, 장자연 사건의 가해자는 누구인지, 장자연 씨는 어떻게 사망하였는지 등 사건의 본질을 파고들기보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진실성 여부에만 집중하고 있다. 윤지오는 윤지오고 장자연은 장자연이다. <조선일보>만 문제가 아니다. 다른 언론들도 바뀌어야 한다.


편집 : 강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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