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9회 말 2아웃

‘엄마 아빠 오늘 야구지릉 가는 중.’

▲ 장은미 기자

가족 단톡방에 엄마가 남긴 메시지다. 오타가 있었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엄마는 야구장에 가는 설렘을 딸과 아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엄마 아빠는 삼성라이온즈의 오랜 팬이다. 일터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야구 중계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이던 나도 새로 생긴 홈구장에 피자를 먹으러 갔다가 응원에 매료돼 이제는 원정경기까지 보러 다니는 ‘야구 덕후’가 됐다. 덕후는 덕후를 낳는다. 야구는 엄마 아빠와 공감대를 나누는 즐거운 소재가 됐다.

메시지를 보고 곧바로 답을 보냈다. ‘ㅋㅋㅋㅋㅋㅋ NC 경기 3연전 싹쓸이 승 했잖아. 오늘도 이겨라, 아자아자! 오늘 어느 팀이랑 경기하지?’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 어제였다. 나는 엄마 아빠의 야구장 나들이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랬다. 상대 팀은 롯데. 롯데를 상대로 한 전적이 우세했던 터라 선전을 예상하며 엄마 아빠가 즐겁게 관람할 거라 기대했다.

요즘 나는 야구장에 잘 가지도 않고 중계를 잘 챙겨보지도 않는다. 그 대신 잠자리에 들기 전,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이겼으면 포털에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본다. 늦게라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미리 결말을 알고 보니 우리 팀 수비수가 실책을 범해도, 투수가 몇 점을 실점해도 안도하고 볼 수 있다.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러 상대 수비 범위를 벗어나는 공의 궤적을 만들어 낼 때는 짜릿함이 2배가 된다. 이긴 것을 알고 보는 ‘필승법’인 셈이다. 경기에 졌다면 이런 행복은 누리지 못한다. 풀리지 않는 경기 속 어두운 선수들 표정과 낙담하는 팬들 모습이 ‘안 봐도 비디오’다.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는 감정 소모인지라 이런 경기는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지름 7.23cm, 무게 145g에 불과한 이 작고 가볍고 하얀 공은 대단한 마력을 가졌다. 경기장 안에 가득한 몇 만 명, 중계를 보는 수 십만 명까지 그 작은 공이 어디로 튀느냐에 따라 웃고 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도 어느 팀 팬이냐에 따라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진지한 반응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각자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온 커플 중에는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을 약 올리는 모습도 포착된다. 울거나 웃거나 익살스럽게 리얼한 모습은 경기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그 모습이 곧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 롯데와의 3연전은 1승 2패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그 다음 경기이던 지난 14일 두산과의 잠실 원정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상수 선수의 홈런으로 4-3으로 승리했다. ⓒ 장은미

이날 엄마 아빠의 야구장 나들이는 ‘새드 엔딩’으로 끝났다. 삼성이 12대 5로 롯데에 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 아빠의 발걸음은 무거웠을 것이다. 3연전 중 두 번째인 오늘 경기는 어제 패배를 설욕이라도 하듯 재미난 경기를 펼쳤다. 나도 오랜만에 집에서 중계방송을 보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잡았다. 안타가 될 줄 알았던 공이 상대편의 호수비에 걸릴 때는 탄식했고, 쉽게 잡힐 줄 알았던 공이 실책으로 다리 사이를 빠져나갔을 때는 중계방송을 그만 볼까 애꿎은 마우스를 만지작거렸다. 이런 상황에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약속의 8회잖아, 기다려 봐.” 삼성이 8회에서 점수를 많이 내는 편이라 팬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다. 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날은 약속을 지켜줬다. 말 그대로 ‘빅 이닝’을 만들어 무려 6점을 더 내고 7점 차로 완승했다.

질 것 같았던 경기가 갑자기 분위기를 타고 반전될 때가 있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작고 하얀 야구공이 어디로 튈지, 어떻게 날아갈지 모르는 만큼 결과를 알 수 없는 그게 인생을 닮은 ‘이깟 공놀이’의 묘미다. 삼성은 최근 몇 년간 하위권을 배회하는 중이라 ‘약속의 8회’도, ‘9회 말 2아웃의 반전’도 전처럼 보여주지 못한다. ‘왕년에 잘했던 팀’이라는 사실도 최근에 팬이 된 나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진 경기는 하이라이트 영상조차 보지 않지만, ‘오늘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나는 내일도 경기 결과를 찾아볼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어. 잘할 수 있어, 끝까지 힘내보자.” 그들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


편집 :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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