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4.3, 4.16, 5.18’

▲ 박지영 기자

‘말년 운이 좋으시네요.’ 사주를 보러 가면 늘 듣는 말이다. 당장 하는 일이 안 풀리고 막막하지만 ‘말년 운이 좋으니 전체적으로 좋은 인생을 살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위안이 된다. 사주풀이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내 인생의 마지막은 좋다니까.’ 지금은 힘들지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다짐으로 점집을 나선다. 심리학자로는 처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들이 흔히 받아들이는 ‘말년 운이 좋아야 행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두 가지 자아를 갖고 있다. 경험 자아와 기억 자아가 그것이다. 경험 자아는 “지금 아픈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자아다. 반면 기억 자아는 “전체적으로 어땠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자아로 과거 기억을 토대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이나 사건 또는 이야기를 평가할 때 기억 자아의 의사결정 능력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기억과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 대니얼 카너먼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기억과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 unsplash

그의 이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손 넣기 실험’을 꼽을 수 있다. 피실험자들은 첫 번째 실험에서 1분간 차가운 물에 손을 넣고 버텨야 한다. 두 번째는 1분 30초간 진행되는데, 추가된 30초 동안 따뜻한 물이 주입돼 수온이 1도 정도 올라간다. 이들에게 ‘만약 세 번째 실험을 한다면 앞서 한 둘 중 어떤 실험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대개 두 번째를 택했다. 30초간 더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따뜻함을 느꼈던 실험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결말이 전체 작품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도 기억 자아의 의사결정 능력을 보여준다. ‘기-승-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내용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잘 남지 않는다. 결말이 전체 이야기의 성격을 규정한다.

매년 4월과 5월이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사고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공식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4월 3일이면 4.3사건 희생자들의 고통을 전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4월 16일 주요 신문의 1면에는 사건 당일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하는 사진이 등장하곤 한다. 그렇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기억들은 계속해서 상기되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나지 않고 있다. 5.18 희생자와 유가족에게도 끊임없이 모욕을 하는 이들이 있다.

찬란한 봄이 왔지만, 4.3과 세월호, 그리고 5.18 유가족들은 추운 겨울을 살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려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맺어야 한다. 카너먼은 “마지막이 전체를 지배한다, 기억 자아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미래에 참고하기 위해 보관한다”고 말했다. 이들 사건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넘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현대사의 비극이다.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마지막이 중요하다.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한 보상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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