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남지현 기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이 말은 끝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야구의 묘미를 담고 있다. 9회말 투아웃 후에 만루홈런이 터져 승패가 뒤바뀌고, 꼴찌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이변과 다양성이 야구의 흥행요소란 뜻으로도 들린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몸담았던 뉴욕양키즈는 메이저리그(MLB)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베라가 현역이던 1946년부터 1963년까지 17년 동안은 무려 10번이나 우승했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뉴욕양키즈가 매년 뛰어난 신인선수를 영입해, 이변도 다양성도 없는 ‘양키즈 독주’ 시대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전체 매표 수입은 뉴욕양키즈가 5년 연속 우승한 1949년에서 1953년 사이 큰 폭으로 줄었다. 결과가 뻔한 게임을 돈 주고 보러 올 관객은 많지 않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야구의 ‘흥행’ 유지를 위해 하위팀에게 유망주를 우선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드래프트 제도를 1965년부터 시행했다. 이후 양키즈는 10년 간 우승하지 못했고 2년 이상 우승한 팀이 나온 경우도 5차례뿐이었다. 관객이 없다면 게임도 의미가 없다는 프로 스포츠의 숙명이 단조로운 리그 위계를 타파하게 만든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 거대 양당이 여당과 야당을 돌아가며 차지할 뿐인 한국 정치는 뉴욕양키즈 ‘왕조’ 시대의 메이저리그만큼이나 국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국민의 정치권 혐오는 선거제 개혁과 공수처 설치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두고 벌어진 여야의 극한 대립에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선거제도 개혁을 비롯한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50~60%가 넘는다.

양당 체제에 관한 염증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무당파 비율이 늘 30%를 넘는다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한국갤럽이 5월 7~9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양대정당의 지지율을 합친 것이 65%였고 나머지 35%가 중도 정당 지지 또는 무당파였다. 1년 전인 2018년 5월 둘째 주 같은 갤럽조사에서도 양대 정당 지지율을 합친 숫자는 64%로 지금과 거의 같았고 중도나 무당층은 36%였다.

▲ 1961년 뉴욕 양키즈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타선의 핵심 4인방. 왼쪽에서부터 로저 메리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빌 스코런. Ⓒ Stuff Nobody Cares About

이처럼 양대 정당의 지지율 합은 65% 안팎인데 국회 의석은 298석 중 양대 정당이 81%인 242석이나 차지하고 있다. 양대 정당이 실제 지지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앉아 동물국회를 연출하고 있는 한, 뉴욕양키즈의 독주 시절 메이저리그가 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 정치권도 민심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선거는 정당 간 게임이 아니다. 선거의 주인은 국민이며, 정당은 민심에 복무해야 한다. 지금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양대 정당이 실제 지지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독과점하기 어렵게 만든다. 중도-개혁 정당들이 국민의 지지율만큼 의석을 확보해 양당체제를 해체해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정책이 정확하게 국정운영에 반영될 수 있다. 국민 지지를 받는 만큼 의석을 배분해 다양한 주장과 이해관계를 대변하게 하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뼈대로 한 선거제 개혁안이다.

양대 정당체제 해체를 촉구하는 민심을 담은 선거제 협상은 뿌리치고 거리로 나가 여론전에 열을 올리는 자유한국당은 주권자를 ‘호갱’ 취급하는 구단과 다를 바 없다. 지역구도에 바탕한 양대 정당체제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온 기득권을 고수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로지 소속 의원들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 메이저리그가 전력 평준화를 통한 야구의 흥행 유지를 위해 도입한 드래프트 제도는 우승을 노리는 팀들이 유망주 선수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하위권 성적을 받는 ‘탱킹’(tanking)에 악용된 지 오래다. 리그 전체의 존속이나 야구라는 종목의 흥행이나 관중보다는 자기 팀 이익만 챙기려다 생긴 결과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이든 그 집단 자체의 존속과 발전보다는 구성원 개인의 이익이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나 흐름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치판도 다르지 않다. 국민이나 국가의 미래보다는 자기네 의석 감축과 영향력 약화 등을 계산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스스로 선거제 개혁안 협상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제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만 제외한 채 선거제 개혁안이 통과돼 그 체제로 선거를 하든 지금 체제로 선거를 치르든, 다음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은 변화하는 민심을 거스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다.


편집 :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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