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전주국제영화제

2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공휴일인 4~6일 관객들로 크게 붐볐다.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는 ‘소셜 마켓’ ‘버스킹 존’ ‘말 상처 전시’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열렸다. 개・폐막식이 펼쳐지는 영화제의 랜드마크 ‘전주 돔’에도 인파가 몰렸다. 온라인 예매로 매진된 영화들이 많아 현장 표를 사려는 관객들 줄이 끊이지 않았다

▲ 6일 전주라운지에서 온라인 예매를 하지 못한 관객들이 현장 판매 표를 사려고 줄을 서있다. © 최유진
▲ 전주라운지 곳곳에 놓인 ‘레드랜턴’에서 딸을 사진 찍고 있는 문준희 씨 모습. © 최유진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는 상영관이 많지 않다 보니 일부러 찾아보게 되잖아요.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이렇게 전주까지 온 게 흔치 않은 일일 것 같아요. 그런데 좋은 영화를 찾아 또 이곳에 오게 될 것 같아요.”

전주국제영화제를 상징하는 정육면체 빨간색 조형물 ‘레드랜턴’ 위에서는 꼬마 숙녀가 포즈를 취했다. 행사장 곳곳 포토존에서 딸을 사진 찍던 엄마 문준희(40) 씨가 여러 작품을 추천했다.

▲ 관객들이 전주 돔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려고 줄 서 있다. © 최유진

약진하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20주년을 맞아 특별 프로그램과 53개국 275편의 작품이 관객과 만난다. 이번 축제는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특별히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개막 전부터 매진되는 등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016년 ‘자백’, 2017년 ‘노무현입니다’ 등 여러 해 동안 독보적인 다큐멘터리를 발굴해왔다.

▲ <뉴스타파> 송원근 PD가 연출한 영화 ‘김복동’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이어 올 8월 정식 개봉돼 관객과 만난다. © <뉴스타파>

올해는 <뉴스타파>와 정의기억연대가 공동 기획한 영화 ‘김복동’이 영화제에 올려졌다. 송원근이 감독한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폭로한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인 김복동 선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한지민 씨가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오는 8일과 10일 두 차례 상영이 남았다. 첫 상영인 6일은 매진이다. 이 작품은 올해 8월 정식 개봉된다.

▲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가 연출한 영화 ‘삽질’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8일 상영을 남겨놓고 있다. 올해 정식 개봉된다. © 최유진

4대강 사업의 민낯을 보여주는 김병기 감독의 ‘삽질’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12년간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관련 행적을 추적한 결과물이다. 개막 전 3회 상영 중 2회의 온라인 예매가 매진됐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지 않게 되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제2, 제3의 삽질이 되풀이된다.’ 김병기 감독이 말하는 ‘삽질’을 만들게 된 이유다.

이명박에 선전포고한 ‘4대강 독립군’

“당신이 4대강에서 저지른 일을 최초로 고발한 특종 기자들입니다. 어찌 보면 이들은 ‘4대강 독립군’입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려는 독립군입니다. 4대강 사업의 폐해를 고발해 온 독립 시민기자들입니다.”

2016년 8월 <오마이뉴스>에 ‘제발 이명박 씨 죗값을 치르게 해주세요’라는 기사가 실렸다. MB에게 쓴 공개편지이면서 시민기자들을 후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주요 언론 기자들도 피한 싸움을 해온 사람들, 투명 카약을 타고 4대강 탐사보도를 해온 이 시민기자들이 바로 ‘4대강 독립군’이다. 이들은 오염된 녹조물 속에 손과 발을 담그고, 입을 열지 않는 4대강 부역자들을 쫓아다녔다. 영화 ‘삽질’에서 고군분투한 취재 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10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금강이 돌아오고 있지만, 아직 4대강의 귀환을 말할 때는 아닙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친일의 역사처럼 책임을 묻지 않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저는 최근 4대강조사위의 일부 보 해체 제안을 '국가기간시설 파괴'라고 성토하는 당신의 후예 자유한국당의 모습에서 역사의 반동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오마이뉴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쓴 네 번째 공개 편지 기사다. 보석된 이명박을 영화제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3일 첫 상영 당시, 실제 ‘이명박 초대석’을 따로 마련해두기도 했다. 아직 그는 오지 않았지만, 8일에 관람할 기회가 남아있다. 영화 ‘삽질’은 이달 말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특별 상영하고, 올해 안에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단행본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이 지난 7일 출간되기도 했다.

▲ 6일 메가박스 전주 8관에서 영화 ‘삽질’ 상영 후 ‘관객과 대화’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병기 감독(왼쪽)을 비롯해 ‘금강 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오른쪽)가 함께했다. © 이선필

“전문가와 언론이 공범 아닌가”

“10년 전, 4대강사업이 크게 논란됐을 때 사실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어요. 그저 SNS에 떠돌던 ‘녹조라테’ 사진을 보기만 했어요. 이렇게까지 생태계가 파괴된 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4대강사업이 무리하게 진행됐고, 또 비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가졌습니다. 4대강사업이 제 일상을 바꾼 부분이 별로 없는 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환경 파괴로 물이 오염된 것도 모자라, 세금까지 도둑맞았다는 사실에 화가 절로 납니다. 아직도 관련자들은 나 몰라라 하며 책임을 피하고 있잖아요. 4대강 사업에 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길 바랍니다.”

직장인 이강혁(32) 씨는 영화 ‘삽질’을 보려고 서울에서 전주까지 왔다. 두 번 이 영화제에 왔다는 그는 “저널리즘 다큐의 위력을 실감했다”며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보고 4대강 사업에 국민 혈세가 낭비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람에 춤추던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반짝이던 금빛 모래가 온 사방에 파헤쳐졌다. 4급수에 사는 붉은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창궐했다. 4대강은 그렇게 죽어갔다. 상영관을 나오며 머리와 가슴에 찡하게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다. “전문가와 언론이 공범이 아닌가?” 망연한 뒷모습으로 금강을 바라보던 시민기자의 말이다. 국민 세금으로 4대강을 파괴하고 부역자들을 키운 이명박, 영화 ‘삽질’을 본 사람이라면 같이 ‘독립군’이 되어 그를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편집 :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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