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을 망친 사람들] ⑧ 이상로 방송통신심의위 심의위원

“방송심의를 강화해야 합니다. 잘못된 MBC를 되돌리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규정만 잘 지키면 됩니다. 커다란 잘못은 작은 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됩니다. MBC 방송심의 규정에는 뉴스를 제외한 프로그램은 반드시 대본 심의와 방송물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2011년 2월 이상로 MBC 편성부 국장이 사장 공모에 응하면서 제출한 경영계획서 중 일부)

이런 신념을 갖고 방송사 사장이 돼 그걸 실천하겠다던 사람이 지금 ‘규정은 무시해도 된다’는 듯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이면서 방송심의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정파적 언동까지 하면서 한국 언론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상로 방심위 위원은 지난달 10일 ‘방송심의 요청 민원인의 신원과 심의 요청 내용을 공개해’ 규정 위반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 위원에서 배제됐다. 

‘5.18 북한군 개입설’ 심의정보 유출, ‘특정 정파 하수인’ 

이 위원은 지난 3월 초 방심위에 접수된 방송심의 요구 내용과 민원인 신원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방심위가 극우 인사 지만원 씨가 퍼뜨리고 있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 중인 유튜브 동영상 30건 심의를 하루 앞둔 3월 7일 극우 인터넷 매체 <뉴스타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 30건의 영상삭제 심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만원 씨 자신이 직접 작성한 이 기사는 방심위 심의 대상인 영상 목록과 함께 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한 요청자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라고 공개했다. 지 씨는 기사에서 ‘8일 오전 10시 이전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많은 분이 참석해서 심의위원들에게 존재감을 표해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는 이어 “아마도 이상로 위원이 삭제의 부당함을 위해 싸우실 것이니 힘을 실어 달라”며 노골적으로 지지자들이 방심위로 몰려와 심의위원들을 압박해줄 것을 유도했다. 

방심위가 중요한 심의를 하루 앞두고 관련 내용과 심의를 요구한 민원인 신원이 공개돼 파문이 일자 이 위원은 다음날인 3월 8일 정보 제공자가 자신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는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 기자에게 “내가 (뉴스타운 측에) 민원인이 누구고, 내용이 무엇인지 다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 제기하는 것을 감춰야 할 거면 민원 제기하면 안 된다”며 “민원인은 원래 공개하는 것 아니냐, 왜 민원인을 공개하면 안 되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을 폈다. 

▲ 방심위가 ‘5・18 북한군 개입설’ 영상 삭제를 심의하기 하루 전인 3월 7일 극우매체 <뉴스타운>에 방심위 심의 정보와 심의 요청 민원인 신원을 공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 <뉴스타운>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제27조 ‘(방송통신심의위원의) 청렴 및 비밀유지 의무’ 제2항에서 ‘심의위원, 제22조에 따른 특별위원, 제26조 2항에 따른 사무처의 직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자는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타인에게 누설하거나 직무상 목적 외에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방심위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제 23조 2항은 “위원회는 심의 관련 자료를 외부에 공개 또는 제공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개인정보를 노출하거나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심위가 심의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방송 심의과정이 공개되고 특정 위원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등에 관한 내용이 알려지면 심의위원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려워져 방송통신심의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직접 위협받기 때문이다. 또 심의와 관련된 개인정보가 노출되면 심의대상자로부터 유무형 압박이나 신변상 위협까지 받을 수 있어 방송내용에 관해 자유로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신원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 이상로 방심위원이 지난 3월 8일 <뉴스타운TV>에 나와 자신이 ‘5・18 북한군 개입설’ 영상물 심의 관련 정보를 유출했다고 밝히고 있다. ⓒ <뉴스타운>

그런데도 이 위원은 ‘영상 삭제요청 목록’과 ‘민원인’이 ‘민주언론시민연합’이란 사실을 심의 대상자에게 알려주고, 그 정보를 입수한 심의 당사자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심의장으로 나와 심의위원들을 압박해 달라고 유도하는 일을 벌인 것이다.

가짜뉴스 막아야 할 방심위원이 ‘5.18 북한군 개입’ 유포  

이 위원은 실제 심의과정에서도 가짜뉴스로 판정이 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서 심의를 하는 것인지 특정 정파의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여 방송심의위원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 2017년 4월 극우매체 <뉴스타운>과 지만원 씨 네이버 블로그에 ‘5・18에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주장하는 글이 실려 있다. 블로그 게시물은 작년 4월 방심위 결정으로 삭제됐다. ⓒ <뉴스타운>

이 위원은 2018년 4월 방심위가 ‘5.18 북한군 침투설’을 퍼뜨리는 지만원 씨 블로그 게시물을 삭제하기로 의결했을 때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반발하면서 지 씨의 주장을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옹호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거의 전국민이 가짜뉴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자신을 방심위원으로 추천해 준 자유한국당마저 공식적으로 거짓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당시 삭제가 결정된 지 씨 블로그에는 ‘광주에는 1980년 5월 18일 이후 민주화 운동도 없었고 민주화 시위대도 전혀 없었습니다’라는 터무니 없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사실로 간주하고 이성적이란 주장을 펴는 이 위원이 현역 시절 ‘카메라 출동’이란 프로그램으로, 사실에 바탕을 둔 시원한 고발뉴스를 전달해주던 기자 출신이 맞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다.

이 위원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 씨의 이의신청으로 열린 재심에서는 “제가 북한군이 왔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갔다. 이 정도면 사실관계를 가장 먼저 확인하고 그 바탕 위에 방송내용의 공정성 균형성 공적 책임 준수 여부 등을 심의하는 방심위 위원으로서 정상적인 판단과 심의를 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방심위원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꿋꿋하게 버티면서 가짜뉴스들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며 두둔하고 나서는 것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행동이 아닌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제재대상 두둔 등 방심위를 정치판으로 오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심의위원에 관한) 기피신청제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기피신청이라는 제도는 당사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있는 거다. 그러려면 당사자가 당연히 며칠 전에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당사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심의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한) 나는 잘못이 없고, 나는 일을 잘했다.”

▲ 이상로 방심위 심의위원이 3월 28일 극우매체 <프리덤뉴스>에 출연해 자신이 5·18 단체들의 기피 신청으로 관련 방송심의에서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 내용이 나가자 ‘다른 위원들이 심의정보를 미리 알려줬을 것’이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 <프리덤뉴스>

이 위원은 지난 3월 29일 극우 유튜브 매체 <프리덤뉴스>에 출연해 방심위 규정에 ‘제척, 기피, 회피’에 대한 내용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고 고백하고는 엉뚱하게 “방심위가 잘못 운영되고 있으며 매우 권위주의적인 기관”이란 주장을 폈다.

방심위원으로 활동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본인이 알게 된 기피제도로 그는 지난 3월 29일 방심위 통신소위가 5.18 역사왜곡 유튜브 동영상 30건에 관한 접속차단(시정명령)을 결정할 때 참석하지 못하고 배제됐다. 같은 자유한국당 추천인 전광삼 소위원장은 “5.18기념재단에서 이상로 위원 심의 기피 신청서를 냈다”며 “5.18기념재단은 게시물 피해 당사자에 해당하므로 이상로 위원이 이석한 뒤 의결하는 것이 통상적 관례”라고 밝혔다.

“시민단체가 당사자라면, 그래서 나를 내쫓는다면, 우리 결정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람들은 누가 보호해 주느냐. (중략) 우리가 강제로 입을 막는 사람들의 권익은 누가 보호해주느냐.”

그가 이런 주장을 펴고 나가자 현장에 나와 있던 지만원 씨와 <참깨방송> <태극FM> 등극우 매체 제작자들이 반발하면서 방심위 회의장은 정치판처럼 돼 버렸다. 이들은 “통신소위가 좌편향 집단”이라는 정치적 주장을 펴면서 자신들 이해를 대변해줄 이 위원을 데려오라고 항의했고, 지 씨는 “무슨 이런 더러운 집단이 다 있냐”고 소리쳤다. 

방송심의위원이 방송 출연해 극우세력 대변

이 위원은 방심위 회의장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사실상 극우적 정치활동을 하면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직접 퍼뜨리거나 그런 주장을 조작·유포하는 지만원 씨를 두둔하고 있다. 그는 지 씨가 ‘5.18 북한군 개입설’을 퍼뜨려 5.18 유공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소송이 대법원에서 승소한 것을 근거로 들면서 지 씨의 주장을 옹호하고 다녔다. 

그러나 당시 판결 요지는 지 씨 주장이 ‘사실’이라는 게 아니라 그런 주장이 말이 안 되는 것이어서 유공자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은 이미 그 법적, 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여서 지 씨가 올린 게시물을 통해 5.18민주유공자나 참가자들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게시물이 5.18민주유공자 등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대법원이 지 씨의 주장이 옳거나 타당성이 있어 무죄판결을 내린 것처럼 오도하면서 사실상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유튜브 채널 <프리덤뉴스>를 통해 ‘5.18 북한군 개입설’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들을 넘나들면서 정치적 발언을 해오고 있다. ‘그래 맞다! 태블릿으로 국정을 농단했다!(2018.04.01)’, ‘문재인은 김정은의 비서가 되지 말아야(2018.05.19)’, ‘그래 잘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석방하자!(2018.08.20)’, ‘나라를 걸고 도박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10.25) 등 하나 같이 사실확인 대상이거나 공정성 객관성 균형성 등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큰 정치적 주장을 펴고 다니는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 보수 우파는 압승합니다”, “탄핵을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신문에 난 여러 가지 풍문들, 신문에 난 여러 가지 사실이 아닌 그런 기사들을 조합을 해서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했다는 것이죠.”(2018.06.22. 프리덤뉴스)

“저는 분명하게 밝힙니다. 탄핵은 잘못됐다. 탄핵은 기만적이고 탄핵은 불법적이고 탄핵은 잘못된 것이다. 위법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라는 겁니다.”(2018.08.10 프리덤뉴스)

방송심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심의요청이 제기되는 정치 관련 방송내용을 심의해야 할 방심위원이 스스로 방송에 출연해 편향된 정치적 발언을 하고 가짜뉴스나 편향된 주장을 퍼 나르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물론 다른 정치세력이 방송을 통해 그런 주장을 펼 때 그가 과연 방송심의위원으로서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심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상임위원은 정치 활동 못하게 규정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민간기구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설치근거와 위원의 자격과 직무 및 심의 규정 등이 명시돼 있는 법적기관이다. ‘방송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을 위하여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심의위원장, 부위원장 등 상임위원에게는 ‘정치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는 법적 의무가 부과되고 정당의 당원은 심의위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을 둔 것은 방심위가 정파적 견해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으로 심의·의결하라는 취지다. 

그런 원칙에 따라 방심위가 하는 일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규정에 따라 방송내용이 심의 기준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따져 판단하는 것이다. ‘인종차별, 집단학살, 테러 등 국제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헌법을 부정하거나 국가기관을 전복·파괴·마비시킬 우려가 있는 정보’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예비음모 교사 방조할 우려가 현저한 정보’ 등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돼 있는 규정에 따라 방송내용의 위반 여부를 심의·결정하는 것이다. 마치 법원이 구체적으로 범죄행위를 규정해 놓은 법률에 근거해 판결하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한 가지 심의 안건을 두고 정치적 견해 등에 따라 의견이 갈릴 일은 많지 않고 위배 여부에 관해서도 거의 이견이 나올 일이 없는 아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일을 하는 곳이다.

“오히려 방심위가 정치적 심의했다” 공격 

그런데도 이 위원은 방심위 회의를 정치판처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동료 위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2018년 7월 28일 자기 유튜브 채널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방송심의제도는 폐지돼야’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 자신이 속한 방심위를 공격했다. 그는 방심위가 JTBC 태블릿PC 관련 보도를 제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관해 “방심위가 정치심의를 해왔다, (중략) 공정하게 방송을 심의하겠다는 기본적 자세·용기·양심·학식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TV조선의 북한 풍계리 취재비 1만 달러 보도의 법정 제재 등 정치심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당시 이 위원의 발언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통심의위지부가 나서 “거짓 선동가 이상로를 해임하라”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방심위를 정치화했다. 방송내용을 심의해서 기준에 위배되는 것은 제재를 가하고 개선하도록 하라는 원래 취지는 외면한 채 이상로 위원은 방심위를 정치판으로 만들어 방송을 정치로 오염시키면서 한국 언론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영향권에 있는 매체들이 논조를 180도 바꾸는 사례를 수없이 보면서 시민들은 ‘언제 우리도 BBC 같은 공정한 언론을 갖게 되나’라는 염원을 품어왔다. 사실 언론 독립은 제도의 문제인 동시에 언론인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언론에는 저널리즘의 표준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언론인이나 이데올로그 행세를 하면서 언론을 망치거나 출세의 도구로 악용하는 이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기성언론은 비판의식과 윤리의식 부재 또는 동업자의식 때문에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을 피하려 한다. 성역 없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가 한국 언론을 망친 이들의 행적과 보도태도를 추적하고 고발하는 장기기획을 시작하는 이유다. (편집자)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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