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승리·정준영 사건’ 한·미 기사 분석

지난 3월, 한국에서 가장 화제가 된 뉴스는 아이돌그룹 빅뱅 멤버 승리의 ‘버닝썬’ 스캔들이다. 클럽 운영 과정에서 승리가 성매매를 주선했고, 경찰과도 유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수 정준영이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고 승리와 다른 동료 연예인들에게 불법 유포한 사실이 드러나 이슈를 한동안 장악했다. 일부 언론은 수용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흥미 위주 기사를 톱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되자, 이 이슈로 다른 중요 뉴스를 덮으려고 한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 <한겨레>가 3월 15일 기사에 사용한 정준영과 승리의 서울지방경찰청 출석 모습. Ⓒ <한겨레>, 사진공동취재단.

이 사건은 케이팝 시장이 전세계로 뻗어 나간 상황에서  한국 가요계의 어두운 면까지 해외 언론에 여지없이 노출하는 계기가 됐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플랫폼을 통한 뉴스 소비가 한국보다 더 일반적인 미국에서는 연예 타블로이드지는 물론, 주요 언론에서도 관련 웹 기사를 내보내 영어권 수용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젊은 독자들에게 더 많은 뉴스가 도달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는’ CNN은 3월 13일부터 22일까지 속보를 제외하고 같은 전문가를 인용한 기사 3건을 내보냈다. ‘새로운 독자들에게 뉴스를 노출하는 한편 정기 구독자를 늘리는 데 집중’하는 NYT<뉴욕타임스>도 12일과 13일 기사를 한 건씩 냈다.

한국과 미국 언론은 이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12일부터 22일까지 나온 한국 일간지 기사 중 <중앙일보> <한겨레> 기사 5건을 위 두 미국 언론 보도와 비교·분석해 보자.

각 언론사 제목, 소제목/리드 키워드 정리

국가

한국

미국

언론사

중앙일보

한겨레

CNN

NYT

승리 성접대 논란, 은퇴

(11-13)

제목

몰카, 은퇴,  ‘승리’ 게이트, 한류, 아이돌, 탈선

성접대, 은퇴, 혐의

아이돌, 은퇴, 성매매, 의혹

스타, 성매매, 기소

소제목리드

은퇴, 국민역적 대화방, 몰카, 스캔들, 기획사, 책임, 방송사, 인성

논란, 성접대, 몰카, 경찰, 피의자

혐의, 스캔들, 케이팝 스타, 기준. 소속사, 팬, 젠더 분열, 의혹, 여성 인권

혐의(2), 구속, 잘못, 반응

정준영 연예인 불법 촬영 동영상 유포

(과도기 13-14)

제목

동의 없이 촬영 유포(몰카), 죄책감, 은퇴, 피해자, 찌라시(2차 가해)

죄, 중단(은퇴), 친구들, 처벌, 불법 촬영(2), 2차 피해, 언론, 경찰, 강간문화
 

스타, 성 추문

케이팝 스타, 불법 촬영, 여성

소제목리드

경찰, 소속사, 근거, 놀이문화, 싸움

사과문, 처벌, 범죄, 피해자(2), 약물, 강간문화,

2차 가해

소속사, 스캔들, 경찰, 여성

사과, 동의 없이 사적인 영상 유포(몰카), 용의자,

법, 불법촬영물, 여성

정준영 구속 직후 요약

분석

(21-22)

제목

구속, 영장 발부, 성적표

별(스타), 벌

케이팝 스타, 추문, 한류, 남성중심 문화

해당 기사 없음

소제목리드

구속, 영장, 경찰

소양교육, 사고/논란, 인권, 특권의식, 쾌락, 잘못

연예계,

소프트 파워,

이미지, 소속사, 통제, 추문(2) 남성중심 문화,

여성, 대상화, 사회 문제

* 기사 발행 시차 유의.
* NYT의 경우, 소제목이 없음.

미국과 한국, 관련성에 따른 시각 차이

한국 <중앙일보>와 <한겨레>, 미국 CNN과 NYT 모두 세부적으로는 내용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큰 줄기에서는 프레임을 나라별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은 ‘단죄’와 ‘사후 처리’, 미국은 ‘한류 이미지’와 ‘사회적 파장’으로 통일했다. 한국 독자에게는 ‘범죄 관련 사안’이 중요하다. 이 사건의 결말이 이후 일어날 관련 범죄에 대처할 때 참고할 선례가 되는 데다, 국가 신뢰와 직결된 경찰 유착 문제도 끼어있기 때문이다. 영어권 독자들이 이 사건에서 가장 관심을 보일만한 요소는 이 사건 이후 ‘한류의 미래’와 ‘한국 사회에 일어난 파문의 전체 그림’이다. 한국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파악할 수 없는 독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기사 제목과 소제목에는 ‘경찰’과 ‘처벌’이 자주 등장한다. <중앙>과 <한겨레>는 범죄의 사회적 규명, 그에 따른 처벌과 후속 조처를 다루는 데 주력한다. 이는 이들이 받을 처벌이 한국 독자들과 관련성이 높은 사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최근 정의 실현과 징벌에 관심이 높아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 CNN과 NYT 기사는 모두 주제 흐름이 ‘한류 이미지 하락’에서 ‘열악한 한국 여성 인권 상황’으로 흘러간다. 전체적 맥락과 주제는 비슷하지만, NYT는 ‘한국 가요계 소동’을 매끄럽게 포장해 내놓은 인상을 주고, CNN은 전자를 가십으로 소비하면서도 후자를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이는 급격히 바뀐 미국 미디어 환경이 신문사와 방송사를 서로 동화하는 듯했지만, 기본적 정체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중앙>과 <한겨레>, ‘가해’와 ‘피해’

<중앙> 12일과 13일 기사는 ‘국민 역적’, ‘탈선’, ‘게이트’ 등의 단어를 써서 승리가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한겨레>가 승리 은퇴 발표를 다루는 기사를 11일에 하나만 냈고, 그 기사에서도 ‘혐의’와 ‘피의자’로 건조하게 범죄자 프레임을 씌우는 데 그친 것과 대조된다. 승리의 죄, 또는 한국 경찰의 죄를 부각하려면 승리가 거물일 필요가 있다.

정준영이 기소됐을 때 2차 가해를 경고하는 내용과 일그러진 문화를 지적하는 맥락은 두 신문이 같다. 하지만 <한겨레>는 <중앙>보다 ‘불법 촬영’과 ‘강간문화’처럼 사회문제로 부각하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2차 가해에 관한 기사를 비교하면, <중앙> 14일 기사에서는 언론보다는 ‘찌라시’를 유포하는 개인에 더 초점을 둔다. 반면 <한겨레> 13일 2차 가해 비판 기사는 제목부터 ‘정준영 불법 촬영 2차 피해 부추기는 언론들’이다. 기사 내용은 SBS와 채널A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한 보도, 그리고 그 내용을 ‘베끼다시피 자세히’ 받아 쓴 조·중·동 기사를 지적한 것으로 사실상 미디어 비평이다. <한겨레>는 2차 가해가 언론이 개인을 부추겨 생긴 산물로 본다.

21~22일 나온 기사들을 비교하면 두 신문의 프레임 차이가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22일 기사에서 <중앙>은 이 사건의 주체를 경찰로 보고, 경찰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이 사건 프레임을 ‘권력 유착’으로 고정하고 자사가 권력 감시 기능을 수행한다는 이미지를 우선으로 내세운 것이다. 21일 <한겨레>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을 통한 강간문화 타파’와 ‘인권 회복‘을 촉구한다. 특히 교육에 방점을 찍은 것은 ‘리버럴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담론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CNN과 NYT, ‘분석’과 ‘희극’

CNN의 승리 기사는 승리의 인스타그램 은퇴 선언 인용으로 시작한다. ‘은퇴 선언’이 ‘입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라고 판단한 건데, CNN은 경찰 유착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다. CNN이 관심 있는 건 이 사건이 보여주는 한국 문화의 단면이다. 승리 논란 기사를 포함한 기사 3건에 전문가를 인용해 ‘광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요구하는 아이돌 문화’와 ‘남성중심문화’를 설명한다. 남성중심문화는 <한겨레>가 쓴 ‘강간문화’와 통하는 표현이다.

NYT 12일 기사는 승리가 성 접대 혐의로 입건됐다는 사실로 시작하며 경찰 발표를 곁들인다. NYT도 경찰 유착 문제에 시큰둥하다. NYT는 문화보다 제도를 중시한다. 정준영 기소를 다룬 CNN 14일 기사와 NYT 13일 기사를 비교해보면, CNN은 기사 끝에 시카고 대학 케이트(Kate) 교수의 입을 빌려 “이 정도로 화제가 된 스캔들은 근래 보지 못했다”며 다시 한번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반면 NYT 기사는 중반부에서 법 집행이 느슨하고 재판으로 가는 경우가 적은 ‘낮은 법 실효성’을 지적한다.

스토리텔링으로 구독자를 붙드는 데 강한 NYT는 CNN처럼 깊이 있는 문화 분석을 내놓기보다 정보를 솜씨 있게 프라이밍하여 캐릭터를 분석한다. 12일 기사에서는 케이팝 스타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던’ 승리가 입건되고 은퇴하는 과정을 영웅이 몰락하는 비극으로, 13일 기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고 미국 기준으로 볼 때 더 죄질이 나쁜 정준영의 사과와 은퇴는 촌극 혹은 부조리극으로 그렸다. 이 기사 마무리가 의미심장하다. NYT는 건국대 윤김지영 교수가 “(승리와 정준영 사건은) 여성이 어떻게 성적 착취를 당하고 도구로 이용되는지 보여준다”고 발언한 것을 한국 남성 스타를 주어로 하는 능동태로 바꿔 번역해서 인용했다. 분석이라기보다 상황 묘사다. 그리고 “소속사는 정준영의 사과 이후 계약을 해지했다고 발표했다“는 문장으로 극을 내리듯 끝맺는다.

▲ 왼쪽은 CNN 승리 은퇴 기사. 2014년 중국 팬미팅 자리에서 웃고 있는 승리 사진이 대표 사진이다. 오른쪽은 NYT 동일 주제 기사. 자사 사진 기자가 2015년 빅뱅 공연 때 찍었던, 어두운 무대에서 홀로 서 있는 사진을 썼다. 비극에서 아리아를 부르는 주인공 같은 연출이다. Ⓒ Chad Batka

CNN은 기사에 승리가 화려한 색의 무대의상을 입고 웃거나 춤추는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빅뱅을 ‘메가그룹(mega-group)’이라고 부르는 흥분된 어조에서도 보이듯, 이전까지 가수들이 보여준 이미지를 기사에 게시하여 그에 상반되는 일탈에 팬들과 같이 실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NYT는 비교적 차분하다. 위 NYT 승리 사진은 무대와 의상이 전반적으로 어둡다.

▲ CNN이 쓴 정준영 사진과 사진설명. 차분한 이미지를 썼다. Ⓒ CNN
▲ NYT 기사 대문 사진. 정준영이 모자를 눌러쓰고 기자들 틈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 NYT

정준영의 경우, CNN은 2014년 시상식에서 모습과 머리를 묶고 양복을 차려 입은 채 포토라인에 선 모습 등 정준영의 얼굴 사진을 주로 넣었는데, NYT는 그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사진을 선택했다. 역시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희극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눈

한국 언론과 영어권 언론이 같은 이슈를 다루면서 각각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중앙일보>와 <한겨레> 논조가 주요 독자에 따라 다르듯, 한국 언론과 영어권 언론이 대상으로 하는 독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CNN과 NYT 기사를 읽는 이들은 미국인뿐 아니라 자사 뉴스가 도달하는 범위 안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다. 넓은 독자층을 의식할수록 일반적이고 세계적인 시각에서 보도하게 되며, 자연히 제3자 위치가 공고해진다. 국내에서 사회적 쟁점이 뚜렷하지 않거나 논란이 과열됐을 때, 제3자 시각을 끌어들여 외신이 국내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소개하는 것은 객관 보도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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