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㊴ 가시면류관의 기원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린의 1971년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 빌보드 싱글차트 4주 연속 1위를 기록한 LP판 8분 31초의 긴 노래 중간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The jester stole his thorny crown(어릿광대는 왕의 가시면류관을 훔쳤지)”. 이어 “I admire most The Father, Son, and the Holy Ghost(내가 가장 존경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란 가사가 흐른다. ‘thorny crown’을 직역하면 ‘가시관’이지만 흔히 ‘가시면류관’이라 부른다. 향토정서를 담아내던 김동리가 1955년 11월부터 ‘현대문학’에 연재한 뒤 펴낸 장편 ‘사반의 십자가’. “로마 병사들은 예수에게 자줏빛 옷을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씌운 뒤…”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유대의 대로마 독립투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사반’이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운 탁월한 플롯의 소설에도 ‘가시면류관’은 빠지지 않는다. 최고 지위를 상징하는 자줏빛 옷을 처형당하는 예수님에게 입혔을 가능성은 없지만, 중세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성화에 자주색 옷과 가시관은 꼭 따라붙는다. 지난 21일은 부활절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가시면류관의 기원을 따라가 본다.

▲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의 1457년 작품 ‘십자가 처형’. 십자가 속 예수님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져 있다. 작은 사진은 튀니지 엘젬 박물관에 소장된 장미 화관을 쓴 봄의 여신 모자이크. ⓒ 김문환

가시면류관의 사실성과 이름의 적절성

2017년 3월 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탄기국(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주최 집회에 가시관을 쓰고, 나무 십자가를 든 남자가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예수의 고난에 비유한 거다. 신성모독인지, 표현의 자유인지는 민주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시민 몫이다. 풍속 문화사의 관심은 가시면류관이 과연 있었는지에 대한 탐구다. ‘마태복음’ 27장 29절에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당할 때 가시관을 썼는지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공식 사료로 남은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사실성 여부를 떠나 우리말 번역 ‘가시면류관’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면류관(冕旒冠)’이란 한자말을 풀어보자. 면(冕)은 관, 류(旒)는 구슬을 매단 줄을 가리킨다. 면류관은 왕이 쓰는 관으로 졸업식 때 쓰는 사각모자처럼 생겼다. 앞뒷면에 12개의 구슬을 꿴 줄 12개를 매단 형태다. 가시관을 이렇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시 면류관이란 말 대신, 그냥 ‘가시관’이라는 직역이 더 어울린다.

르네상스 성화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가시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명화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2층으로 가보자. 르네상스를 풍미했던 파도바 출신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가 나무 위에 그린 67㎝×93㎝ 유화 한 점에 눈길이 머문다. 조선에서 세조의 왕위 찬탈과 조카 살해가 이뤄지던 1457년부터 2년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 격인 만테냐가 그렸다. 장소는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 이탈리아 베로나의 산 제노 성당 제단이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침공한 뒤 1798년 강탈해 온 바로 그해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일종의 장물이다. 작품 이름은 ‘십자가 처형(Cruxifixion)’.

3개의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사람들, 어울리지 않게 르네상스풍 옷을 입은 로마 병사들, 성모 마리아가 제각각의 표정을 짓는다. 예수님이 처형된 예루살렘 갈보리 언덕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갈보리’는 영어 ‘칼바리(Calvary)’의 우리말 표현이다. ‘칼바리’의 어원은 라틴어 ‘칼바리아(Calvaria)’다. ‘칼바리아’는 그리스어 ‘골고다(Golgotha)’에서 나왔다. ‘골고다’는 예수님을 비롯해 당시 유대인들이 널리 사용하던 아람어(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지역에서 쓰던 말) ‘굴갈타(Gulgaltha 해골)’의 그리스식 표현이다. 만테냐의 ‘십자가 처형’에서 3개의 십자가 중 가운데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가지다. 하나는 십자가 위에 적힌 ‘INRI(IESVS·NAZARENVS·REX·IVDAEORVM, 나자렛의 예수, 유대의 왕)’ 문구다. 로마 풍습은 십자가 처형 시 이름표 ‘티툴루스(Titulus)’를 써 붙였다. 티툴루스 ‘INRI’ 말고 또 하나, 양쪽 십자가의 잡범들과 달리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진 점도 가운데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준다.

로마 시대 예수 그리스도 그림. 자줏빛 토가

이제 루브르 박물관 2층 르네상스 그림 전시실에서 한 층 아래 로마 시대 유물관으로 내려간다. 여기서도 예수 그리스도 관련 유물을 만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1세기 초 40년 전후한 시기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조각이나 그림을 찾을 수는 없다. 로마제국의 변방 속주 유대 땅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당시 로마인들이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점점 기독교가 퍼지고 특히 4세기 초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교회가 합법화되고 재산을 소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관련 예술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로마 건축물 실내장식은 바닥에 모자이크를 설치하고 벽에 프레스코를 그렸으며 군데군데 조각을 세웠다. 프레스코는 건물이 무너지면서 파손돼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바닥에 설치했던 모자이크는 다르다. 건물이 무너져도 잔해 아래 그대로 남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나는 4세기 모자이크 속 예수 그리스도는 오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자줏빛 토가를 둘렀다.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에 묘사된 바로 그 자줏빛 옷. 당시 로마 풍속은 어떤 것이었을까?

로마 시대 예수 그리스도. 가시관 아닌 장미 화관

자줏빛 염료는 고대 페니키아 상인들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등에 팔던 최고급 염료다. 자줏빛 염료로 물들인 옷은 권위, 왕권을 상징했다. 로마도 이런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초기 로마 왕정의 왕들, 그리고 원로원 의원의 상징은 자줏빛 토가였다. 공화정 시기 원로원 의원들을 거쳐 BC 1세기 말 황제정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황실을 상징하는 색이다. 기독교 역시 4세기 로마제국 아래서 공인됐다. 황제보다 더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줏빛 토가로 장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팔 아래로 유대인들이 신성시하는 7갈래 촛대 메노라(Menorah)를 축약시킨 형태의 촛대가 놓였다. 후대 지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님 얼굴 뒤로는 신을 상징하는 둥근 후광이 뚜렷하다. 머리를 보자. 우리의 관심사, 예수 그리스도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을까? 모자이크를 찬찬히 뜯어보면 가시관이 아니다. 고난을 상징하는 가시 대신 봄꽃의 여왕 장미 화관을 쓴 모습이다. 4세기 기독교 모자이크에서 예수님 머리에 장미 화관을 씌우는 기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 월계관을 쓴 네로 황제 주화(위)와 장미 화관을 쓴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아래). ⓒ 김문환

로마 시대 계절의 여신 장미 화관

북아프리카 튀니지 엘젬에 가면 콜로세움에 이어 현존하는 지구상 두 번째 규모의 로마식 원형경기장이 반긴다. 긴 지름이 148m, 짧은 지름이 122m. 검투가 펼쳐졌던 경기장 바닥의 지름은 64m×39m다. 3층으로 된 관중석을 64개의 아치가 받치고 있는 원형경기장의 관중 수용 규모는 3만5000명. 1985년 잠실종합운동장이 완공되기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컸던 동대문 운동장의 3만 명보다 많다. 3세기 초 당시 로마 총독이 만들었다. 17세기까지 완벽한 외형을 자랑했지만, 이슬람 도시 케루안의 모스크 재건 과정에 석재를 조달하기 위해 헐리고 만다.

그래도 보존 상태가 좋아 영화 촬영 장소로 쓰였는데, 1979년 영국 코미디 영화 ‘브라이언의 삶’이 그렇다. 예수님과 같은 날 옆집에서 태어난 브라이언이 구세주로 오인돼 벌어지는 배꼽 잡는 이야기다. 2000년 아카데미 5개 부문 수상의 ‘글래디에이터’ 역시 여기서 찍었다. 근처 엘젬 박물관에 전시 중인 사계절 여신 모자이크를 보자. 봄의 여신은 머리에 장미 화관을 썼다. 루브르에서 본 예수님 모자이크의 장미 화관과 같은 모양새다. 로마 시대 신에게 화관을 씌우던 풍습이 있었던 것인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포도잎 관

초기 동방 7대 교회가 있던 터키로 가보자. 남부 시리아 접경지대 안타키아는 고대 안티오크(Antioch)로 불렸다. 알렉산더 이후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 번영을 이어가던 도시다. 칭기즈칸의 손자 훌라구의 군대가 유린한 도시이기도 하다. 안타키아는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 주옥같은 모자이크들을 전시하는 안타키아 모자이크 박물관으로 이름 높다. 1930년대 프랑스 점령 시기 만들어져 건물은 초라하지만, 모자이크는 단연 지중해 연안 최고 수준이다.

그리스 신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묘사한 작품으로 눈길을 돌린다. 포도주 한잔 걸친 거나한 모습으로 시종 사티로스와 시녀 마에나드를 대동한 디오니소스. 상반신을 나신으로 드러낸 채 자줏빛 망토를 왼쪽 어깨에 걸쳤다. 머리를 보자. 포도 잎사귀로 만든 관을 썼다. 그 옆 마에나드 역시 포도 잎사귀 관, 사티로스는 잡풀로 만든 관을 쓴 모습이다. 로마 시대 모자이크 작가들은 신을 묘사할 때 이렇게 꽃이나 꽃잎 소재의 관을 씌웠다.

네로황제 월계관… 가시관은 르네상스 시기

예수님이 30대 초반에 세상을 구하러 나온 뒤, 복음을 전하다 처형되고 기독교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시점을 대략 서기 40∼50년경으로 본다. 이 시기 로마 황제는 4대 클라우디우스(재위 41∼54년), 5대 네로(54∼68년)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조각과 네로 황제 주화는 월계관을 쓴 모습을 담았다. 세속의 최고 지도자에게 화관을 씌운 만큼, 그보다 위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낼 때 화관을 씌운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중세는 어땠을까? 터키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으로 가서 동로마 제국 시기 13세기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를 보면 위엄 있는 얼굴에서 찬란한 빛을 발할 뿐 가시관은 보이지 않는다. ‘가시관’의 수난 장면은 중세를 지나며 르네상스 작품에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로마 시대 기독교도들은 당시 지배층의 풍속을 따라 예수님 머리 위에 화관을 얹었고, 후대 수난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가시관으로 바꿨음을 유물은 말해준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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