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제천 의림지 역사박물관

‘1474년: (조선) 성종, 의림지 수축 논의’
‘1662년: 현종, 제언사(堤堰司) 설치'
‘1908년: 의림지수리조합 결성’
‘1914~1917년: 의림지 시설 보수’
‘1972년: 태풍으로 붕괴된 서쪽 제방 복구’
‘1976년: 의림지와 제림, 문화재 지정’
‘1987년: 의림지 관개구역 경지정리’

역사박물관 연표에 ‘의림지 역사’는 단 일곱 줄

지난 1월 9일 문을 연 충북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역사박물관 전시실의 ‘의림지 역사’는 단 일곱 줄이다. 제천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시기 저수지 의림지의 역사와 유물, 학술자료 등을 수집해 학술연구와 일반 전시를 위해 신축 개관한 의림지 역사박물관에 ‘역사’가 없는 것이다.

▲ 의림지 역사박물관 제1전시실 ‘역사의 함(History’s chest), 제천과 의림지의 역사를 담다’ 코너에 설치돼 있는 ‘수리관계의 역사’ 및 ‘제천의 역사’ 연표. 많은 분량의 내용중 의림지 축조의 역사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 남지현

지난 10일 오후 의림지 역사박물관 상설 전시실을 취재한 결과, 의림지 역사를 요약 정리한 ‘수리관개의 역사 및 제천의 역사’ 연표에 의림지 관련 역사는 1470년 이후 조선시대의 행정적 기록이나 단순 보수공사 사실을 제목만 기록한 것이 일곱 줄 있을 뿐이다.

의림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축조 시기는 연표에 아예 나와 있지도 않고, 전시실 입구 ‘의림지 개요’ 부분에서 ‘축조시기=미상(未詳)’으로 표기돼 있다. 의림지 역사박물관의 핵심 내용인 의림지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 제대로 연구되고 전시돼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의림지 축조와 관련된 내용은 ‘모른다’로 돼 있는 것이다.

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은 ‘시간의 함’ ‘역사의 함’ ‘문화의 함’ ‘생명의 함’ 등 네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 처음 만나는 ‘시간의 함’은 ‘제천 사람들의 삶을 담은 의림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설명이 없는 영상물 하나만 돌아 가고 있을 뿐 의림지와 제천 사람들의 살아온 내력을 보여주는 내용은 없다.

▲ 1월 9일 문을 연 충북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역사박물관의 외관. ⓒ 남지현

의림지 대신 제천의 역사 길게 설명

두 번째 전시실인 ‘역사의 함’이 역사박물관의 핵심 전시공간이다. ‘제천과 의림지의 역사를 담다’라고 했지만 제천의 역사만 길게 설명돼 있다. ‘역사의 함’ 전시실은 제목만 보면 역사가 많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림지의 형성 배경’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원삼국~삼국시대’ ‘삼국시대~고려’ ‘역사에 기록된 의림지’ ‘의림지의 풍광을 즐기다’ ‘지형의 변화와 의림지의 형성과정’ 등의 전시 제목은 시대별·부문별로 의림지 역사가 정리되고 전시돼 있는 것처럼 돼있다.

▲ 의림지 역사박물관의 핵심 전시공간인 ‘역사의 함’ 전시실. ⓒ 남지현

하지만 ‘의림지의 형성 배경’의 본문을 보면 ‘의림지 주변의 산과 평야 등 지형에 관한 설명만 있고 의림지 형성의 배경이 된 역사적 연원이나 배경에 관한 설명은 없다. ‘구석기 시대’에서 ‘삼국시대~고려’까지 시기별로 돼 있는 전시물의 본문 내용은 ‘식량의 생산과 저장’ ‘자연에 순응한 농업의 발달’ 자연개발과 농업생산량 증대’ 등 시기별로 농업과 영농의 발달사를 압축해 서술하고 있을 뿐 의림지와 관련된 내용은 단 한 글자도 없다.

마지막 ‘삼국시대~고려’ 부분의 전시물은 부제가 ‘대규모 저수지 축조와 농지 개발’로 돼 있어 기대를 갖고 내용을 읽어 보았지만 역시 내용은 허술하다. ‘이 시기에는 농업생산력 증대를 위해 산곡형 저수지를 주로 축조하였다’는 등 당시 저수지 축조의 일반적인 유형에 관한 설명이 대부분이고 의림지의 축조와 관련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그나마 의림지 역사와 관련한 내용은 두 문장뿐이다. 고구려가 제천 지역에 내토군(奈吐郡)을 설치했으며, 내토(奈吐)란 말이 '냇둑'을 의미하기에 고구려 영유기에 이미 의림지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는 내용이다.

▲ ‘역사의 함’ 전시실에 있는 ‘삼국시대~고려’ 전시물. 의림지 축조나 역사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내용에는 의림지와 관련된 것이 거의 없다. ⓒ 남지현

세종실록지리지 ‘의림제는 530척, 논 4백결에 물 대’

또 ‘역사에 기록된 의림지’ 전시 코너에도 의림지 축조나 배경 등 직접 관련된 내용은 없고, 실록이나 문집 등에 기록된 저수지 관리 기록 등 단편적인 것들뿐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현 북쪽 6리에 큰 제방이 하나 있는데 의림제라고 부른다, 제방길이가 530척이며 논 4백결에 물을 댄다’는 내용이 의림지의 존재와 규격을 기록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또 <성종대왕실록>에 ‘제천 의림지는 조선 전부터 있던 것으로 근래 수령들이 고기잡이를 하다 제방을 훼손하였는데 이 제방이 관개하는 바가 매우 넓으니 마땅히 다시 쌓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기록돼 있다는 정도다.

‘의림지의 풍광을 즐기다’ 코너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문에 ‘의림지’가 등장하는 글 대여섯 편을 모아 놓은 것인데 그림 두세 점이 전부일 뿐, 의림지의 역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 지금의 의림지 모습 ⓒ 제천시

이처럼 박물관이 소장·전시중인 유물이나 자료 1800여 점 중 ‘역사의 함’에 전시된 것은 100여 점에 불과하고, 그나마 의림지와 관련된 내용은 절반도 채 안된다. ‘역사의 함’ 전시 자료의 대부분은 충청북도 기념물 116호로 지정된 제천 점말동굴에서 출토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유적들과 일반적인 농경문화발달사로 이뤄져 있다.

의림지 역사의 핵심인 축조 시기는 ‘미상’

▲ ‘역사의 함’ 전시실에 있는 ‘의림지 개요’. 저수지 축조 시기는 ‘미상(未詳)’으로 돼 있다. ⓒ 남지현

특히 의림지 역사의 핵심 부분인 저수지 축조와 관련된 내용이나 역사적 연구결과나 학설 등에 관한 자료나 전시물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림지의 축조 시기에 관해서는 아직 확립된 연구결과나 학설이 없이 학계에서 논란이 진행중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의림지가 삼한시대에 만들어 졌다고 보는 견해와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견해 등이 혼재한다. 그런 논란 때문에 1996년 6차교육과정까지는 중·고교 교과서에 ‘삼한시대 유적’이라고 기술했던 것이 지금은 빠져 있다.

박물관측은 그런 논란 때문에 축조 시기와 관련해서는 ‘미상’으로 정리해 놓고 몇 가지 간접적인 내용만 부연해 놓았다. 전시실 입구에 틀어 놓고 있는 영상물에 축조 연도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내용을 넣어 놓은 정도다.

또 ‘역사의 함’ 후반부 ‘의림지 연구과정’이란 항목에 ‘1999년 의림지 정밀기초조사 과정에서 제방 퇴적층 내 유기물 연대측정을 한 결과 AD960년 전으로 확인’이라는 내용과 ‘2009년 제방 퇴적층내 유기물 연대측정 결과 AD800년 전후로 확인’ 등 서로 다른 내용을 표기해 놓았다. 두 번에 걸친 연대측정결과가 다르게 나온 이유와 배경설명없이 결과만 기록해 놓아 관람객들만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역사의 함’ 전시실에 있는 ‘의림지 연구과정’. 1999년 연대측정 결과(AD960년 이전)와 2009년 연대측정 결과(AD800년 전후)가 다르게 나와 있어 관람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 남지현

제천시청 관계자는 “학술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을 전시 내용에 넣을 수는 없었다”며 “논란이 진행중이라는 사실도 넣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의림지가 지금 사용중인 저수지여서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한계가 있는데다 기존 유물이 많지 않아 박물관의 주제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림지에서 발굴된 유물이 모두 20여 점뿐이고, 이마저도 대부분 토기편이어서 전시를 위해 반출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전문가 “기존 연구 내용 그대로 전시해야”

하지만 박물관은 전시 대상의 역사와 기원, 발전과정 등에 관한 학술토론과 논란과정을 정리해 소개하는 곳이고, 특히 의림지 역사박물관의 가장 핵심적인 전시 내용은 의림지 축조 시기와 과정인 만큼 그런 논란의 과정과 내용이 당연히 전시 소개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성정용 교수는 “그동안 의림지와 관련한 학술대회를 여러 번 하면서 연구성과가 적지 않게 나왔는데도 박물관측이 그런 내용을 전시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의림지가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라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왔고, 제천 지역주민들이 가장 오래된 저수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 박물관측이 축조시기와 관련된 다른 연구성과를 전시하기 어려웠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의림지 축조 시기와 관련해 지난 2009년 제천시와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가 개최한 ‘의림지의 탄생 배경과 그 역사성’이란 학술대회에서 의림지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 학술대회에서 “제방을 쌓을 때 점토 사이에 낙엽을 섞는 부엽공법이 사용됐고 발굴된 낙엽의 연대측정 결과가 서기 680년~1020년대로 일정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 말이나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의림지 역사 박물관이 제대로 된 박물관 기능을 하려면 지금 거의 비어 있는 의림지 축조 시기와 역사에 관한 연구결과와 논란 내용 등을 자세히 정리해 전시하고 관련 유물이나 역사적 자료들을 더 수집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정면에서 바라본 의림지 역사박물관 ⓒ 남지현

의림지 역사박물관은 충북 제천시가 162억원의 예산을 들여 5년여 동안공사 끝에 작년 하반기에 준공한 뒤 준비작업을 거쳐 지난 1월 9일 개관했다. 박물관은 건축 면적만 4653㎡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졌고 1층에 의림지 역사자료를 전시하는 상설전시장이 있다.

▲ 의림지 역사박물관 앞에서 바라본 의림지. 저수지 수면에 구름과 산과 나무가 반사돼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 남지현

편집 :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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