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너라 벗고놀자] 우세린 부부 여행기 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의 작용으로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의 온천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 주변에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전현직 기자 부부가 이 지역 무료 자연 온천을 다니며 썼다.

▲ 데스 밸리 국립공원 일출 명소인 자브리스키 포인트. 900만년 전 거대한 호수였다. © 우세린

이를 꽉 다물자. 이곳은 모험이 필요하다. 여름 최고 기온이 50도로 치솟는 ‘죽음의 계곡’ 데스 밸리(Death Valley)가 일주문(一柱門)이라면, 압정을 뿌려 놓은 듯한 산길과 푹 패인 모래밭이 이어지는 오지 도로는 천왕문(天王門), 마지막 산사태 흙더미 지대는 해탈의 문, 불이문(不二門)이다. 이번 목적지는 ‘소금기가 있다(Saline)’는 뜻의 세일린 밸리 온천(Saline Valley Warm Springs)이다.

하루 전 LA에서 388km를 달려 캘리포니아 인요 카운티(Inyo county)에 있는 데스 밸리 국립공원 스토브파이프 웰스 캠핑장(Stovepipe Wells Campground)에 텐트를 쳤다. 데스 밸리는 지난해 178만명이 찾은 미 서부 대표 관광지다. 기암 괴석과 형형색색 물결치는 언덕 무늬를 보러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캠핑장 예약은 필수다. 우리는 대신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캠핑장을 정거장으로 삼았다. 밤에는 세상이 온통 ‘별밭’이다. 사막에는 별이 ‘뜨지’ 않는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한다.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정면, 좌, 우, 등뒤에서 별빛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털털털’ 빨래판 도로 달려 오지로

세일린 밸리 온천은 캠핑장에서도 북서쪽으로 156km 떨어져 있다. 직선도로라면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시계 방향으로 굽이쳐 4시간은 족히 걸린다. 사막 속 오지다. 출발한 지 1시간 30분, 차량 계기판을 봤다. 주행 가능 거리, 95km. 목적지까지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불안했다. 인터넷이 안 돼 목적지 근처에 주유소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무리하다가 조난당하기 십상이다. 결국 1시간 반을 거꾸로 돌아가 시중가보다 1.2배 비싼 휘발유를 주유하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 세일린 밸리 온천 가는 길. 키 큰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우세린

도로는 빨래판 같다. 크고 작은 돌이 불규칙하게 땅에 박혀 있다. 몇 시간 달리니 덜덜거리는 진동에 머리를 세탁하는 기분이다. 바퀴에 튄 돌은 차량 하부를 계속 때려 쩌렁하는 소리가 났다. 아래 위 치아가 맞부딪히는 듯 신경이 곤두섰다. 로데오 황소처럼 퉁기는 차체 때문에 차량 계기판에는 바퀴 공기압을 점검하라는 노란색 경고 사인이 떴다. 어쩌다 마주쳐 지나가는 차량을 봐도 승용차는 나뿐이다. 여행이 끝나고도 한동안 ‘비포장길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세일린 밸리는 캘리포니아 중부 인요 카운티 남쪽에 있다. 1874년부터 21년 동안 산업용 배관과 전자기기 회로판, 보석 가공용에 쓰이는 광물인 붕산을 채취하던 지역이다. 1903년부터는 수심 1200m인 세일린 밸리 솔트 레이크(Salt Lake)에서 소금이 생산됐다. 8년 뒤 지역 정부가 미국에서 가장 높은 트램을 설치해 소금을 고도 340m에서 2600m 산 꼭대기까지 끌어올려 산 넘어 도시로 운반했다. 길이만 22km. 소금 채취는 27년 간 이뤄졌다. 이곳은 소금 호수 때문에 ‘소금기 있다(Saline)’는 뜻의 세일린 밸리로 불린다. 온천 이름도 세일린 밸리 온천. 호수에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트램을 볼 수 있다.

지키려는 자와 쫓아내려는 자

광산이 문닫고 염전산업마저 기울자 1960년대부터 세일린 밸리 온천을 중심으로 히피와 장기 여행가, 돌 수집가들이 모여들었다. 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들이다. 부모들이 누리지 못한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누린 첫 세대로 독립과 자유를 외치며 반문화 기치를 든 인류 역사상 가장 잘 놀았던 세대다. 한 부류가 전쟁 반대 등 정치 투쟁을 했다면 또 다른 부류는 가족보다 개인, 질서보다 무질서, 개인적 쾌락을 좇았다. 대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 공동체를 만들었다. 1964년 미국인 둘 중 거의 하나(40%)가 20세 미만이었으니 얼마나 젊었던가.

미국 문화 전문가이자 프랑스인 대학 교수인 크리스티안 생-장-폴랭은 부유한 사회 환경이 베이비붐 세대에게 오히려 좌절을 줬다고 주장한다. 제3세계의 등장과 사회주의 국가의 성장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책 <히피와 반문화>에 이렇게 썼다.

"1960년에서 1970년까지 10년간 대학생 수는 320만에서 710만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중략) 사실 당시 미국의 상황에서 대학은 유별나게 동질적인 거대 공동체를 이루며 청춘의 방황을 연장하는 기능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사회학적 지위는 미처 대비하지 못한 좌절의 근원이 되었다. 학생들을 키운 윤택한 사회가 학생 신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물질적 욕망을 낳은 것이다. 소유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 세일린 밸리 온천 원수가 흐르는 곳. 이끼가 많아 목욕을 하지는 않는다. © 우세린

히피들은 세일린 밸리 온천에 타일을 깔고 콘크리트를 발랐다. 샤워시설을 하고 화장실을 만들었다. 마약을 하고 록을 즐겼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사막 속에서도 더 깊고 고요한 전원 공동체, 잃어버린 낙원을 세웠다.

1994년 사건이 터진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국립공원을 활성화하겠다며 ‘캘리포니아 사막 보호법(California Desert Protection Act)’을 만들었다. 이곳은 연방 정부가 관리하는 데스 밸리 국립공원에 편입됐다. 연방 정부는 이곳을 자연 상태로 만들겠다며 온천 시설물을 철거하겠다고 선포했다. 미국은 지금도 자연 보존을 위해 탐방객이 셀카를 찍다 추락사해도 안전시설물을 설치하지 않는다. 괜한 엄포가 아니었다.

▲ 세일린 밸리 온천. 야자수 아래 온천에 노인들이 가득 모였다. © 우세린

주민들은 완강히 거부했다. 특히 이곳 지킴이였던 ‘마법사(Wizard)’라는 별명의 남자가 주민들과 연대하며 끈질기게 버텼다. 정부의 회유와 철거 압박이 이어지는 동안 일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다행히 어렵게 정부와 합의안이 도출됐다. 첫째, 관리인이 상시 거주할 것, 둘째, 방문객은 최대 30일까지 이용할 것, 셋째, 국립공원 지도에 온천을 표시하지 않을 것 등이다.

지금은 ‘마법사’를 뒤이은 터줏대감 리자드 리(Lizard Lee)가 길에 주저앉은 차를 구조하는 정비소를 운영하며 온천을 관리한다. 지역 뉴스를 보면 국립공원 직원들은 여전히 방문객들에게 세일린 밸리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구글에 ‘Saline Valley Warm Springs’을 검색하면 정확한 위치가 나온다.

2010년대 버전 ‘플라워 칠드런’

돌길, 모랫길을 달리다 차량 번호판, 쇠사슬, 박쥐 모형 등 철제 폐기물로 만든 쇠기둥이 보이면 바로 찾아온 것이다. 조금 더 가면 진흙이 마른 듯 너저분한 언덕이 보이고 그 곁에 야자수 군락과 화장실이 보인다. 세워진 레저 차량들을 보니, 하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터진다. 이 오지에 승용차를 끌고 오다니.

▲ 온천 초입에 세워진 정크 아트. 박쥐 모형이 세일린 밸리를 안내하고 있다. © 유순상
▲ 버려진 신호등을 달고 차량 번호판으로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 우세린

남편은 새로 산 카메라를 어깨에 걸고 온천으로 의기양양하게 걸어간다. 그리고 곧 우물쭈물 하며 차로 돌아왔다. 동네 형에게 장난감을 뺏긴 아이 같다.

남편, “여기는 그냥… 음… 좀… 있다가 온천수에 발만 담그고 가야 할 것 같아.”
나, “왜 그래, 놀다 가야지, 나는 놀다 갈 거야.”

살색이 만연하다. 온천 입구 샤워시설에서 20대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물 호스와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 있다. 히피의 전형이라던 예쁜 미모의 ‘플라워 칠드런(Flower Children)’인가? 마른 몸매에 긴 머리, 남녀 구분마저 희미하다. 야자수 그늘 아래 탕에서는 10명 넘는 청년들이 발가벗고 마빈 게이와 타번 터렛의 노래 ‘더 높은 산은 없어(Ain't No Mountain High Enough)’를 합창한다. 나체족이야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는데 20대 초반 친구들이 벗고 활보하며 청소까지 하는 것을 보니 충격이다. 앙리 마티스는 아마도 이런 진풍경을 보고 남녀가 둥글게 손잡고 춤추는 누드화 ‘춤’을 그렸을 거다.

▲ 방문객들이 모두 발가벗고 있어 사진을 찍기 매우 곤란한 곳이다. © 유순상

그나마 옷 입은 이가 있는 위쪽 탕에 몸을 담근다. 온천은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개발돼 있어 발바닥에 모래가 묻지 않는다. 샤워기가 있어 샴푸와 목욕제로 가볍게 몸을 씻고 들어가야 한다. 탕에는 캐나다에서 온 태라 가족이 있었다. 태라는 한 달 전 남편과 어린 딸을 데리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단다. 아이는 나체족이 익숙한지 신경도 쓰지 않고 물놀이에 빠져있다.

“저기 보이는 올리브색 개조 차량을 타고 남쪽으로 여행하고 있어. 속도가 느려 천천히 움직이고 있지. 여기는 6년 전에 오고 오랜만에 왔어. 전에는 일주일 이상 머물렀는데 이번에는 3~4일 있다 갈 거야.”

인요 카운티는 조례상 나체를 금한다. 하지만 국립공원은 미 연방 소관이다. 연방법에는 나체에 관한 법률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지역 법률을 우선으로 따른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는 LA 카운티와 샌타바버라 카운티를 빼고 모두 나체를 음란 행위로 보지 않아 불법도 아니다. 애매하니 누구도 ‘감히’ 이곳의 나체를 단속하려 들지 않는다.

▲ 아이의 볼이 빨갛다. 아이는 뜨거운 물을 만지며 “쿨(Cool)”이라고 해 엄마가 “아니야, 이건 ‘핫(Hot)’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 우세린

온천은 위치에 따라 아래, 중간, 위 3곳으로 나뉜다. 아랫동네 온천에는 내가 들어갔던 탕 ‘일출(Sunrise)’과 젊은 나체족이 많았던 ‘크리스털(Cristal)’이 있다. 야자수 아래 잔디밭이 있어 돗자리 펴고 낮잠을 자거나 맥주나 와인을 마실 수 있다. 수온은 40도로 적당히 따뜻하다. 하루 몇 번씩 탕 속 물을 빼고 넣어 수질이 깨끗하다.

중간 지점에 미지근한 온천이 하나 있고, 3~4km 언덕 위 온천이 2개 더 있다. 우리는 차로 올라갔다. 대개 40~80 연령대가 많았다. 오른쪽에는 온천을 처음 판 사람의 별명을 딴 ‘마법사(Wizard)’ 탕, 맞은편에는 ‘화산(Vocano)’ 탕이 있다. 화산탕 옆 야자수에는 이곳을 개발할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화산탕에 들어가 80대 할아버지 캔에게 몇 번 왔냐고 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접으며 횟수를 세더니 그만 포기했다.

“1980년대부터 오기 시작했어. 여기 오면 인터넷이 안 되고 팩스도 보낼 수 없어 세상과 완전히 떨어진 삶을 살 수가 있지.”

옆에 있는 할머니는 “나는 여기 오면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해. 그저 물과 하늘만 바라보지. 11월에서 2월 사이가 제일 좋아”라고 말했다.

▲ ‘일출’ 온천탕. 나체족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남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 우세린
▲ 탕 이름 ‘마법사’. 위쪽 온천에 있다. 물 온도가 적당해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온천욕을 하기 제격이다. © 우세린

11월 추수감사절에는 이들끼리 잔치를 벌인다. 가끔 윗마을과 아랫마을 온천 사람들이 모여 축구나 야구를 한다. 사진을 찍는데 키 180cm가 넘는 백인 할아버지가 나체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선글라스를 장착했다. 발가벗고 몸매 자랑을 하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남성 야외 체육관, 김나지움(Gymnasium)의 재현인가?

온천에는 살인마가 산다?’

탕에 누워 노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먼 발치에서 경비행기가 착륙한다. 비행기 착륙장인 치킨 스트립(Chicken Strip)이 있는 곳으로 비행사들이 캠핑을 즐기다 가는 곳이다. 근처에 미군 항공대도 있다. 머리 위 제트기가 지나갈 때 성조기를 흔들면 굉음으로 인사를 한다는 풍문이 전해진다.

온천 관리는 비영리재단인 세일린 보전협회(Saline Preservation Association)가 한다. 문제가 생기면 회의를 여는데 최근 쟁점은 당나귀다. 사막에 웬 당나귀냐고? 과거 광산 채굴 등 짐 나를 때 부리던 당나귀들이 대를 이어 살아남아 사막을 배회하고 있다. 여행객 음식을 훔치고 야생 식물을 마구 먹어 치워 생태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가끔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 온천 주변 야자수 사이에 해먹이 걸려 있다. © 우세린

이곳에는 캐나다, 독일, 프랑스, 시베리아 등 전세계에서 여행객이 찾아온다.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고 싶거나 잊히고 싶은 사람들. 소비∙물질만능주의에 질려버린 사람들, 고독한 예술가와 은퇴한 노인들이 숨어 지낸다. 물 분자가 깨져 원소가 된 뒤 새로운 물질과 만나 미네랄 온천수가 되는 것처럼 그들은 수고를 감수하고 이곳에 온다.

무엇보다 그것 아는가? 이곳은 1970~80년대 미국 주류 유통업 큰손이었던 ‘미스터 깔루아’의 아들 커플이 캠핑하다 몇 년 뒤 유골로 발견된 장소다.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불리는 ‘히피의 나쁜 사례’ 찰스 맨슨이 애용하던 곳이다. 그는 1969년 맨슨 패밀리라 불리는 추종자 4명에게 지시해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집에 쳐들어가 임신 8개월째인 그의 아내이자 배우 샤론 테이트 등 5명을 흉기와 총으로 잔혹하게 살해하도록 지시한 자다. 옥중 언론 인터뷰에서 “가까이 오면 난 면도칼이 된다”고 말해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러니 이곳에 갈 거라면 친구나 가족에게 먼저 알리라.

▲ 온천에 설치된 야외 샤워실의 옷걸이. © 우세린

** 황상호는 <청주방송>(CJB)과 <미주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뒤 LA 민족학교에서 한인 이민자를 돕는 업무를 하고 있고, 우세린은 <경기방송> 기자로 일한 뒤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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