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선거보도의 정파성

▲ 정재원 기자

4.3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은 자유한국당과 정의당이 한 석씩 나눠가졌다. 기초의원은 자유한국당이 2석, 민주평화당이 1석을 가져갔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창원·성산에서 민주당과 단일화를 이룬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45.75%, 504표 차이로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에 승리했고, 통영·고성은 자유한국당 정점식 후보가 59.47%를 차지해 민주당 양문석 후보를 눌렀다. 결과는 언론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창원 성산의 적은 표 차는 이변이었다.

‘진보 대 보수’ 패턴 반복한 선거 보도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언론은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으로 나뉘어 선거 보도를 했다. 창원 성산구의 여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기 하루 전인 3월 25일(D-9)부터 투표 하루 전인 4월 3일(D-1) 까지 9일간 <조선일보>와 <한겨레> 보도를 비교한다. 비교 대상은 두 신문 지면에 실린 보궐선거 관련 기사 전부다. 이기간에 <조선>은 6건, <한겨레>는 10건의 기사를 썼다.

▲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선거기간동안 다른 프레임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 정재원

언론은 ‘의제설정(Agenda setting)’, ‘프레이밍(Framing)’, ‘프라이밍(Priming)’ 등의 고유기능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언론은 주요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을 통해 수용자의 정치적 선택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언론은 하나의 사건을 특정한 시각으로 제시해 수용자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프레이밍 기능이다. 사람은 기억 용량에 한계가 있어 정치적 판단을 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 언론이 제시하는 가장 현저한 정보의 영향을 받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프라이밍 기능이다.

‘뚜렷한 의제’ 없이 ‘프레임’만 대조

‘의제설정’을 위해서는 사소한 문제라도 그 아이템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번 보궐 선거의 경우 일반 선거와 달리 신인급 정치인이 등장해 아젠다 셋팅을 할 만큼 충분한 정보와 이슈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특성상 승패 향방이 정해져 있다는 인식이 많아 각 언론사도 꾸준한 의제설정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은 듯하다. <조선>이 D-6일부터 D-4일까지 관련 기사를 전혀 싣지않은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보궐선거보다 다른 이슈에 더 집중한 것이다.

두 신문이 모두 주요한 의제로 다룬 이슈는 지난 31일 터진 ‘황교안 대표 경남FC 불법 선거유세 논란’이었다. 그러나 단편적인 사건이었고 선거까지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 두 언론 모두 꾸준히 이를 ‘의제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 방식은 ‘프레이밍’을 통해서다. 이번 보궐선거 관련 기사에서도 두 언론 모두 이를 활용했다. <조선>은 4월 1일 기사 제목으로 “예산폭탄 실행”과 “인사참사 비판”을 대비해 보도했다. 부제로는 ‘한국당, 무너진 지역경제 부각 “탈원전 협력사 285곳 폐업 위기”’를 뽑아 창원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산중공업 등 원전 관련 기업 종사자들을 겨낭했다. <한겨레>는 통영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밀던 사람 밀어줘야”와 “이젠 ‘무조건 한국당’ 안돼”라는 프레임으로 유권자가 보수편향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고성·통영 지역의 경우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후보도 못 낼 정도로 지지 기반이 약한 곳이었지만 그런 흐름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내용이다.

3월 25일 <조선>은 ‘창원은 정의당에 양보?... 안 보이는 이해찬’ 기사와 26일 ‘창원 보궐선거, 정의당에 단일 후보 내준 민주당’ 기사를 통해 민주당과 정의당의 후보 단일화를 비판했다. 특히 다른 정당들이 ‘좌파 야합,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는 내용을 인용해 분위기를 몰아갔다. 단일화가 부정적이라는 프레임을 짠 것이다. 반면 <한겨레>는 같은 날 ‘창원 성산 단일후보 된 정의당 여영국... 역전극 발판 되나’ 기사를 통해 단일후보를 발표한 정의당 쪽에 비중을 둔 기사를 내보냈다. 단일화가 긍정적이라는 프레임을 짠 것이다.

▲ 지난 4일 선거에서 당선한 여영국 의원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KBS 진주>

같은 사안도 달라지는 ‘기사 가치’

선거 3일 전 두 신문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남FC 불법 선거유세’ 논란을 대조적으로 다루었다. <한겨레>는 4월 2일 1면에 ‘황교안 대표의 유세’와 ‘오세훈 전 시장의 노회찬 모욕’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사설에서도 ‘황교안 대표가 선거 유세 위해 스포츠까지 정치에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슈가 끊이지 않도록 계속해서 프라이밍을 한 것이다. 선거 하루 전인 3일 <한겨레>는 고성·통영 정점식 후보의 ‘기자매수 논란’과 ‘노회찬 모욕 논란’을 2면에 보도해 유권자에게 이를 각인시키려 했다.

선거 기간 언론보도에서 특별한 의제를 설정해 선거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면 프레이밍의 경우 <조선>과 <한겨레> 기사는 극명하게 대비됐다. <조선>은 ‘단일화 야합’과 ‘경제 실패’, ‘탈원전 정책 우려’를 프레임으로 삼았으며, <한겨레>는 ‘단일화 긍정’, ‘사라지는 지역 밀어주기 선거’ 등을 프레임으로 내세웠다.

의제설정, 프레이밍, 프라이밍 효과 노려 

황교안 대표의 축구장 유세 논란은 두 신문 모두 크게 다뤘다. <한겨레>는 황교안 대표 축구장 유세 논란을 1면, 2면 등 앞 부분에 배치하며 부정적으로 부각했고, <조선>은 이슈화를 막으려 하거나 다른 후보자의 농구장 유세를 크게 부각했다. 모두 프라이밍 효과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과 <한겨레>는 기사 제목, 기사 내용, 지면 배치 등을 통해 선거 의제를 설정하고, 프레이밍, 프라이밍 기능도 수행했다. 이번 선거보도에서도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후보자간 정책을 비교 분석해주는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진영논리만 앞세우는 구태의연한 언론의 자화상이다.


편집 : 유연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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