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독립열전] ① 백범의 역사 현장

백범 쓰러진 경교장... 강제노역 인천항

<앵커>

(강도림) 지난 1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뜻 깊은 행사들이 펼쳐졌죠?

(임지윤) 그렇습니다. 더욱이 다음달 13일이면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습니다.

(강도림) 네, 우리 헌법 전문은 첫 문장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돼 있지요.

(임지윤) 네, 그만큼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인 올 2019년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데요.

(강도림) 하지만, 독립을 이루고 오늘의 번영된 국가를 일구기까지 목숨 바쳐 헌신한 선열들이 안계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임지윤) 네, 이 분들의 얼을 계승하고, 관련 유적이나 유물을 보존 복원하는 과업이 우리의 사명으로 남는데요.

(강도림) 단비뉴스는 독립투사, 애국지사들의 삶과 기념사업을 조명하며 그 과정에 보완해야할 점은 없는지 집중 조명하는 [TV 독립열전]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임지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높은 문화의 힘을 한없이 갖고 싶다”고 강조하신 분이죠?

(강도림) 네, 시청자 여러분 다 잘 아실 겁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 백범의 자취가 스민 경교장과 인천항을 윤종훈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 경교장, 김구 선생이 1945년부터 거주한 경교장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강북삼성병원 안쪽에 고풍스런 양옥 한 채가 눈에 띕니다. 백범 김구가 1945년 11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4년간 머문 경교장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회의가 열린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또, 백범이 신탁통치 반대 범국민운동을 주도한 곳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남북분단을 막고자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떠난 곳이기도 합니다. 1967년 삼성병원이 인수해 병원으로 쓰다 2013년 원형을 복원해 전시관으로 꾸몄습니다.

# 2층 백범이 안두희 흉탄에 쓰러진 곳

1층은 회의실과 집무실, 2층은 백범과 입시정부요인들 숙소로 쓰였습니다. 백범이 1949년 6월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진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경교장 2층 백범이 머물던 침실 앞입니다. 백범은 1946년 6월 26일 여기 앉아 시국에 관한 구상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승만 정부의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미군 정보부대 소속 안두희가 찾아와 권총을 쐈습니다. 백범의 몸을 관통한 두 발의 총알은 바로 뒤 유리창을 뚫고 나갔습니다. 깨진 유리창은 70년 전 모습 그대로 복원돼 민족사 비극의 한 장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승만의 남한단독정부 참여 안한 뒤, 암살

백범은 국민적 애도 속에 떠났지만, 범행의 진상은 미궁에 빠져 역사의 뒤안길로 묻혔습니다. 남북협상 실패 뒤, 백범은 1948년 남한 단독정부수립 총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물론 친일파, 미국과도 불편한 관계 속에 암살됐습니다. 평생 일제의 살해 위협 속에 투쟁하다 결국 동족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 명성황후 시해 보복 일본군 처단 뒤 인천 수감

백범의 자취는 인천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인천 중구 내동에 있는 감리서, 즉 감옥텁니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해 일본 순사를 참살한 뒤 사형선고를 받은 백범이 복역하던 곳인데요. 주상복합건물 앞으로 감리서터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 하나만 놓여있을 뿐입니다.

# 백범, 수감중 인천항 건설 강제노역 동원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한 인천항입니다. 인천 내항 1부두 석축은 1918년 완공됐는데요. 백범이 인천감옥 수감기간 중 석축 초기공사에 강제노역으로 동원됐습니다. 백범의 손길이 스민 석축입니다.

인터뷰) 조수준 인천 중구청 문화유산팀장

"저희는 그걸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올해가 100주년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독립운동과 관련된 전체 콘텐츠 개발 관련 학술용역을 지금 발주하고 있고요. 그래서 그안에 김구선생 관련된 내용이 중심으로 진행이 됩니다. 탈출로라던지 노역한 내용이라던지."

"(역사거리 조성하는 건 언제 계획이 마무리되는 건지?) 지금은 실시설계를 하고 있고요. 7월말까지 공사를 끝내려고 목표를 잡고 있거든요."

'인천은 내 일생에 있어 뜻깊은 곳이다'라고 백범일지에 기록한 백범 김구. 감옥 근처에 기거하며 아들의 옥바자리를 한 어머니 곽낙원 여사.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도 내놓던 백범 모자의 얼이 스민 인천. 세월은 흘러도 뜨거운 민족애와 조국애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를 기리는 우리의 마음 또한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단비뉴스 윤종훈입니다.

(영상취재, 편집 : 윤종훈 / 앵커 : 강도림, 임지윤)


편집 : 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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