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키우기 전쟁’ 겁나 ‘출산 파업’ 하는 현실 개혁 시급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3부] 보육시리즈 대안 좌담

<단비뉴스>는 지난 6월 23일부터 8월 29일까지 약 두 달간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시리즈 세 번째 기획인 ‘애 키우기 전쟁’을 연재했다. 행복해야 할 아이 키우기가 왜 우리 사회에서는 ‘전쟁’이 돼 버렸는지, 이로 인해 부모와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심층 취재했다. 주로 서민과 빈곤층 지역을 발로 누비며 안타까운 현실을 기록한 기자들이 지난 5일 <단비뉴스> 스튜디오에 모여 두 달여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대안을 토론했다. 

가족 위한 맞벌이, 죄책감 시달리는 부모들

  

▲ 주상돈 기자. ⓒ 양호근
주상돈(사회): <단비뉴스>는 지난해 6월 21일 창간 때부터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기획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은 세 번째 순서인 보육문제를 맡았는데요, ‘애 키우기 전쟁’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한국의 보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우선 현장에 나가 취재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얘기해 볼까요.

이지현: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홀로 집에 남겨진 아이들은 각종 범죄에 노출되기 쉽죠. 실제로 그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요. 저는 아동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동네에 취재를 갔는데요, (워낙 경계하는 분위기여서)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저도 모르게 주변을 먼저 둘러보게 됐고, 동네 어른들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느낌이었어요. 아이들은 제가 기자라고 명함을 내밀어도 믿지 않는 눈치였고요. 그런 것들이 마을의 분위기를 말해주더군요.

진희정: 저는 울산에서 만난 한 여성이 기억에 남아요. 임신한 상태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울산 집에서 부산 직장까지 출퇴근했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줬던 분이죠. 시댁과 친정에 (번갈아가며) 갓 태어난 아들을 맡기고 직장에 와서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모유를 짜 보관했다가 아기에게 먹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유축기 자체에 세균이 많아 분유를 먹인 것만 못하다는 보도를 보고는 절망했다면서 인터뷰 도중에 눈물을 보였어요. 남편과 아이를 위해 맞벌이에 나섰지만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됐다는 생각, 다른 엄마들만큼 못해준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더라고요.

▲ 박경현 기자. ⓒ 양호근
박경현: (갓난아기를 키우는) 그런 분들에게 필요한 게 육아휴직인데요, 사실 제도가 허울뿐이죠. 저는 육아휴직과 관련된 사례들을 취재했는데 법보다 회사의 ‘눈치 주기’가 훨씬 힘이 세다는 것을 느꼈어요. 제도상으로는 엄연히 1년을 휴직할 수 있게 돼 있지만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죠.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조차 회사 사정을 고려해 9개월만 육아휴직을 하면서 그나마 가능했던 것에 만족해하더라고요.(현실적으로)육아휴직을 하기위해 법적 도움을 받기도 어렵죠. 회사와 다시는 안 볼 생각을 해야 보장된 권리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엄지원: 저희는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정을 취재했어요. 제가 만난 싱글맘(편모)들은 대부분 제 나이였어요. 어릴 때의 실수로 아이를 가진 것에 대해 후회하기 보다는 아이를 위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것 같았어요. 생활비를 벌기위해 일도 열심히 하고, 보육에도 신경을 쓰니 또래보다 몇 배는 강인해 보였죠. 아이가 외로움을 느끼거나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특히 신경을 쓰더라고요. 취재하면서 만난 싱글대디(편부)들도 싱글맘 못지않게 아이 키우는 것을 힘들어했어요. 재정적인 부분에선 그나마 나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무래도 엄마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잖아요. 특히 정서나 심리적인 면에서 아이와 공감을 이루는 것을 힘들어하더라고요. 빠르게 늘고 있는 싱글대디 가정을 위한 또 다른 영역의 지원이 필요한 것 같아요.

 ▲ 보육문제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는 (왼쪽부터) 이슬기, 진희정, 주상돈, 박경현, 이지현, 엄지원 기자. ⓒ 양호근

이슬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보육시설이 늘어나면 육아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우리나라의 국공립 보육시설은 (일단 숫적으로) 형편없이 부족하죠. 국공립시설에 들어가기가 명문대 들어가기보다 어려워요. 신청을 하면 대기번호가 몇 천 번 대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자마자 보육시설에 입소신청을 하고, 여러 곳에 복수 지원하는 경우도 많더군요. 무슨 대학 지원하는 것 같죠? 두 아이를 모두 국공립 보육시설에 입소시켰다는 ‘고수엄마’를 인터뷰했는데, 각종 정보와 편법이 많더라고요. ‘맞벌이 가정 아이들이 입소 1순위대상이니까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맞벌이라고 속여서 등록하라’는 식이죠. 요즘엔 대학입시도 정보경쟁이라고 하잖아요?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정보를 얻으며 경쟁을 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면 이런 걱정이 줄어들 텐데요.

보육은 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주상돈(사회): 중산층도 아이 키우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저소득층 가정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저도 취재를 해보니 현재 다양한 복지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영유아를 위한 정책이 있고, 미취학아동을 위한 정책이 있고, 청소년을 위한 정책이 각각 따로 있더군요. 그런데 정책들이 복잡해서 줄줄이 꿰고 있지 않은 이상 지원받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각 연령에 맞는 복지대책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대상자들이 세세히 알지 못해도 자연스럽게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취재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셨을 텐데요, 우리나라의 보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중요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진희정 기자. ⓒ 양호근
진희정: 믿고 맡길만한 공적 보육기관의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취재했던 네 쌍의 맞벌이 부부 모두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있었는데요, 민간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비쌀 뿐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 자체가 주변에 드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맞벌이로 둘이 벌어도 생활이 여유롭지 못한 건 비싼 사설보육기관을 이용하기 때문이죠. 특히 위생도 나쁘고 체벌도 일어나는 사설 어린이집들 사례가 종종 언론에 보도되곤 하니 부모들은 시설에 아이를 맡길 때마다 조마조마하다고 합니다. 명목뿐인 육아휴직 등 출산보육관련 제도도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90일의 법정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맘 놓고 꽉 채워 쓰는 회사원들이 거의 없거든요. 특히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더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박경현: 기업들이 육아휴직을 기피하는 이유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기 때문일 거예요. 기업으로서는 노동자들의 육아휴직을 거부하고 (문제가 됐을 때)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무는 것이 육아휴직을 주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죠. (위반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등) 이런 정책의 허점들을 보완해야 합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육아휴직은 불가능에 가까운데요, 육아휴직 중 계약기간이 만료될 경우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고를 시킵니다.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 자동적으로 계약이 연장되도록 하는 규정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직장 분위기도 바꿔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마더’ 캠페인이 한창인데요, ‘마더’는 ‘마음을 더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임신하면 흔쾌히 상사가 육아휴직을 권하고, 육아휴직 후 돌아온 여직원에게는 애 키우느라 고생했다며 회사 일 잘 하도록 응원하자는 캠페인이죠. 일반 기업에서 얼마나 이 캠페인을 알지는 모르겠지만 육아휴직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법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육아휴직과 출산휴가가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도록 사내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엄지원 기자. ⓒ 양호근
엄지원: (복지선진국인) 스웨덴은 아이 한 명 한 명을 ‘모두의 아이’로 생각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보육제도를 개선하고 양육지원 정책에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보육을 전적으로 부모 개개인에게 맡기죠.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선뜻 쓰지 못하는 이유도 보육은 전적으로 개인의 일이라는 생각이 작용한 탓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육을 가정에만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육문제가 개인의 일만이 아니라 국가의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고 인식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슬기: 보육이 개인적인 문제, 각 가정의 문제로만 여겨지다 보니 현재 우리 사회는 부모의 경제수준에 따라 아이들이 가는 시설이 달라지고 아이들이 천차만별의 환경에 처하죠. 물론 보육시설 간 약간의 차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모의 경제수준과 상관없이 비슷한 수준의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비슷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체험하며 자라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실 고려한 지역아동센터 관리, 지원 절실

 ▲ 보육문제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는 (왼쪽부터) 이슬기, 진희정, 주상돈, 박경현 기자. ⓒ 양호근

주상돈(사회): 지금까지 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육정책에 대해 얘기해 봤는데요, 각자가 취재한 분야에서 미시적인 대안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봐주는 지역아동센터를 취재했고, 진희정 기자는 맞벌이 가족을 취재했죠. 편부편모가정을 만나본 팀도 있고, 국공립 보육시설을 방문한 팀도 있는데 각자가 그 부분을 취재하면서 생각했던 구체적인 대안들을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지현 기자. ⓒ 양호근
이지현: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생계를 위해 부모가 모두 휴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혼자 남게 되는데, 이 경우 아동 대상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내년부터 전국 학교에서 전면 주 5일제 수업이 시작되면 토요일에 방치되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게 되죠. 주 5일제 수업에 앞서 그런 아이들에 대한 대안이 시급합니다. 또 야간이나 휴일에도 아이들이 보육교사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 저녁 9시까지만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의 ‘돌봄 서비스’ 이용시간을 연장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진희정: 맞습니다. 맞벌이 가족들을 취재해보니 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일하면서 아이 하나 기르기도 벅찬 형편이더라고요. 미취학아동을 위한 보육시설이 늦게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보육시설들은 그렇지가 못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어린이집의 법적 운영시간은 대개 오후 7시 30분까지예요. 이 시간에 맞춰서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가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도 많습니다. 또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해주는 예방접종도 하루 배당량이 한정되어 있는데, 맞벌이 부부들은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이런 제도를 잘 이용하지 못합니다. 개별적인 보육 지원 제도들을 맞벌이부부들의 형편을 고려해서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엄지원: 현재 소득 하위계층을 대상으로 보육비가 지원되고 있어요.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의 경우) 월 5만원정도인데,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요. 편부모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을 전전하기 때문에 생계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보육비 지원과 함께 이들을 위한 취업알선 등의 지원서비스가 함께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지원 영역도 좀 더 확대해서 주거비와 의료 부분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편부모의 대부분이 월급의 상당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편부모를 위한 영구임대아파트 우선 지원혜택이 있지만 그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워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어려운 가계사정을 고려해 월세를 (형편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출하는 방식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영아를 위한 기본적인 접종이나 무료 의료검진 혜택도 편부모에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주상돈: 저는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지역아동센터를 취재했는데요, 지역아동센터들이 특정지역에 집중되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틈새가 없도록 지역아동센터가 없는 저소득층 지역에는 정부가 나서서 시설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지역아동센터에 주는 지원금 체계도 개선돼야 합니다. 지금은 시설에서 관리하는 아이들 수에 따라 지원금이 정해지는데 지원금 자체가 부족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지역에 따라 시설임대료가 천차만별인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설임대료가 비싼 지역의 아동센터는 임대료를 내느라 교사 인건비를 줄이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사 임금이 낮아지니 교육의 수준도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들이 떠나기도 하고요. 저소득층 아이들은 일반 가정 아이들보다 더 세심한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데 현재의 임금 수준으로는 수준 높은 교사를 채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사명감만으로 저임금을 강요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보육교사들의 현실을 취재한 전은선 기자의 얘기를 들으니 민간어린이집 교사들도 하루 12시간 가까운 격무에 실 수령액 100만 원 남짓의 저임금을 받고 있더군요.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획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이슬기 기자. ⓒ 양호근
이슬기: 보육시설들을 취재하다보니 관리가 보다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서울시가 공인하고 관리하는 서울형 어린이집들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으로 만든 급식이 적발됐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곰팡이가 피어있는 쇠고기 죽에, 유통기한도 알 수 없는 전복, 날치알 등이 서울형 어린이집 냉장고에서 나왔다고 해요. 민간 모니터링단이 1년에 2차례 현장점검을 한다는데, 보다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합니다.

주상돈(사회):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무턱대고 ‘많이 낳아라’ 하기보다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겠지요. 보육 때문에 힘들어하는 서민들의 목소리에 정부와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서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단비뉴스>의 기획시리즈와 이번 좌담이 작은 역할이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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