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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무덤에도 금관을 넣었을까?
[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㉝ 금관문화4
2019년 03월 05일 (화) 22:53:04 김문환 kimunan2724@hanmail.net

경주 토함산으로 올라가보자. 금관과 함께 신라 대표문화유산으로 꼽히는 석굴암이 맞아준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국보24호 석굴암 불상의 발상지는 간다라다. 오늘날 파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남부, 타지키스탄이다. 이곳은 B.C327년 알렉산더가 정복하면서 그리스인 지배로 들어간다. B.C246년 그리스계 셀레우코스 왕조의 총독 디오도투스가 간다라에 박트리아 왕국을 세운다. 그리스문화를 향유했던 박트리아는 그리스 조각 예술에 불교를 합쳐 간다라 불상을 탄생시킨다.

이때 중국 서부 타림분지에 살던 월지가 B.C170년경부터 훈(흉노)에 쫓겨 서쪽으로 이동한 끝에 B.C138년 경 박트리아를 무너트린다. 월지의 5개 부족 가운데 쿠샨(貴相, 귀상)이 30년 경 쿠샨제국을 세워 불교를 수호하며 간다라 불상을 각지로 전파시킨다. 불상은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전파되고, 751년 경 김대성이 건축한 석굴암 본존불은 그 결정판이다. 알렉산더에서 촉발된 그리스 조각술이 1000여년 지나 신라에서 꽃핀 결과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대로 사슴뿔 모티프 신라금관은 사슴 모티프 스키타이 금관과 공통점을 보인다. 스키타이는 그리스와도 교류했다. 그리스도 스키타이처럼 금관문화가 있었을까?

   
▲ 디오도투스. 간다라에 B.C246년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국을 세운 그리스인. 우즈베키스탄 테르미즈 박물관. ⓒ 김문환

필리포스 2세 딸, 알렉산더 여동생 이름 딴 테살로니키

그리스 북부 중심도시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가보자. B.C353년(혹은 B.C352년) 알렉산더의 부친이자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가 테살로스(Thessalos)지역에서 포키스인들을 제압하며 큰 승리(Nike)를 거둔 것을 기념해 마침 태어난 딸 이름을 테살로니카(Thessalonica)로 지었다. B.C356년 태어난 알렉산더의 이복여동생이다. 테살로니카의 남편인 카산드로스가 B.C323년 알렉산더 사후에 마케도니아의 실권을 잡고 B.C315년 도시를 건설하며 아내 이름을 딴 게 테살로니키의 기원이다.

   
▲ 필리포스 2세 고분. 마치 경주나 공주에서 보는 고분 같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퍼진 봉분 쿠르간(Kurgan)이다. 베르기나. ⓒ 김문환
   
▲ 봉분 내부의 필리포스 2세 신전형태 석실묘. 베르기나. ⓒ 김문환

마케도니아의 첫 수도 아이가이(Aigai)는 오늘날 베르기나(Vergina)로 불린다. 테살로니키 도심 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마케도니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베리아(Beria)가 나온다. 여기서 시내버스로 갈아탄 뒤 다시 30여분 달리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이른다. 터미널도 없는 길거리 정류소에 내려 10분여 걸으면 마치 경주나 공주, 부여에서 봄직한 큼직한 봉분이 우뚝 솟는다. 경주 천마총처럼 실제 봉분 내부를 탐방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봉분 안에는 4개의 신전형태 석실무덤과 이들을 수호하는 1개의 신전이 있다. 이중 도굴되지 않은 2호묘를 1977년 발굴한 뒤, 고고학자들은 필리포스 2세 무덤으로 결론지었다.

소유주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필리포스 2세 금관

필리포스 2세 무덤서도 금관이 출토됐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했다. 호메로스가 B.C780년 경 쓴 [일리아드]에 보면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영웅 아킬레스가 죽었을 때 높게 쌓아올린 장작더미 위에 시신을 놓고 화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스인들은 그래야 영생을 얻는다고 믿었다. 화장 뒤 유골을 라르낙스(Larnax, 유골함)에 담아 석실에 안치했다. 아울러, 생활필수품을 넣어줬다. 이때 금관을 유골함에 유골과 함께 넣거나 석실에 생활필수품과 함께 넣었다. 필리포스 2세 석실묘는 입구를 지나 전실과 그 뒤쪽 현실의 2개 방으로 이뤄졌다. 현실에 대리석 상자가 있고 그 안에 황금으로 만든 유골함이 있었다.

   
▲ 필리포스 2세의 황금 유골함(라르낙스)과 금관. 금관은 금 참나무 잎 313장으로 만들었다. B.C336년 경. 베르기나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유골함을 열어보니 화장하고 남은 유골과 함께 금관이 담겼다. 지구상에 남은 금관 가운데 주인공이 밝혀진 가장 오래된 금관이다. 필리포스 2세는 B.C336년 수도 아이가이(베르기나) 극장에서 암살됐다. 아버지가 죽자 알렉산더가 베르기나에서 왕이 됐음을 선언하고 아버지 무덤을 건축했다. 그러니, 필리포스 2세 금관은 B.C336년 만들어진 거다. 5-6세기 신라금관보다는 800여년 앞선다. 선비나 훈(흉노)보다도 앞선다. 스키타이 금관은 동시대이거나 앞서지만, 소유주가 밝혀진 금관은 필리포스 2세 것이 최고(最古)다. 필리포스 2세 금관은 참나무 잎을 소재로 만들었다. 초화형(草花型). 신라, 가야, 일본, 월지의 금관과 같다. 필리포스 2세 금관의 참나무잎은 모두 313장. 24k 순금으로 무게는 717g. 소고기 한 근을 넘는다.

필리포스 2세의 트라키아 출신 왕비 금관

필리포스 2세 신전 석실묘의 전실에도 현실처럼 대리석상자가 놓였다. 이것도 열어보니 황금으로 만든 유골함 안에 화장한 유골과 금관이 들었다. 주인공은 트라키아 게타이(Getae) 부족 왕국에서 시집온 필리포스 2세의 5번째 왕비 메다(Meda)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타이 왕국은 다뉴브강 하류로 오늘날 불가리아 북부 지방을 근거로 한 트라키아 부족의 왕국인데, B.C341년 경 필리포스 2세에게 굴복당해 속국이 됐다. 당시 코텔라스 왕의 딸인 메다가 필리포스 2세에게 시집왔고, B.C336년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되자, 자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이나 남편이 죽었을 때 왕비나 부인이 따라 죽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는 풍습은 마케도니아나 그리스전통은 아니다. 스키타이 순장풍습인데, 북으로 스키타이와 인접한 트라키아에서도 이런 순장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필리포스 2세의 5번째 왕비 메다의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유골함과 금관. B.C336년 경. 베르기나 고고학박물관. ⓒ 김문환
   
▲ 필리포스 2세의 5번째 왕비 메다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관. 금으로 만든 꽃과 에나멜로 장식해 화려함을 더했다. B.C336년 경. 베르기나 고고학박물관. ⓒ 김문환

금관은 꽃을 소재로 한 역시 초화형이다. 금에다 에나멜로 장식해 화려함을 더했다. 여기서 관심 있게 볼 대목은 같은 금관으로 부르지만, 필리포스 2세와 메다 왕비 금관의 생김이 다르다는 점이다. 메다 왕비의 금관은 디아뎀(Diadem)이라고 부른다. 원형으로 넓은 테, 대륜(臺輪)를 만들어 머리에 쓰는 관이다. 필리포스 2세 금관은 굵은 철사 형태의 금테에 나뭇잎이나 꽃잎 모양 금 잎사귀를 붙이는 리쓰(Wreath)다. 신라나 가야의 금관은 그리스식 분류에 따르면 디아뎀이다.

알렉산더의 아들 알렉산더 4세 금관?

메다 왕비의 금관이 출토된 전실에서는 금관이 하나 더 나왔다. 당시 마케도니아 왕실과 귀족들이 널리 활용한 상록수 도금양(Myrtle)의 잎사귀와 꽃을 모티프로 한 금관이다. 도금양은 지중해 주변에 자라는 관목으로 꽃도 핀다. 필리포스 2세 고분에는 모두 4개의 신전형태 석실묘가 있다고 살펴봤다. 그중 2개는 훼손됐고, 원형으로 발굴된 것이 2번묘 필리포스 2세 것과 3번묘다. 필리포스2세 무덤보다 1년 늦게 1978년 발굴한 3번묘 역시 신전형태로 크기는 필리포스2세 것보다는 약간 작다. 내부는 필리포스 2세 것처럼 전실과 현실 2개로 나뉜다. 전실은 비어 있었고, 현실에 은으로 만든 물병 히드라(Hydra)형태의 유골함이 놓였다. 그리고 유골함 위에 금관이 씌워져있었다. 참나무 잎을 모티프로 한 이 금관과 유골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 필리포스 2세 무덤 전실(前室)에서 출토된 꽃나무 도금양의 잎과 꽃을 모티프로 한 금관. B.C336년 경. 베르기나 고고학박물관. ⓒ 김문환
   
▲ 알렉산더 4세(알렉산더의 아들) 추정 묘 현실(玄室)에서 출토된 참나무 잎 금관. B.C309년 경. 베르기나 고고학박물관. ⓒ 김문환
   
▲ 세우테스 3세 참나무 잎 금관. 골야마코스마트카 출토. B.C300년 경. 불가리아 카잔룩 박물관. ⓒ 김문환

고고학자들은 B.C323년 알렉산더가 급사한 뒤, 소그디아나 출신 첫째 왕비 록사나가 낳은 유복자 알렉산더 4세로 본다. 그는 B.C309년 14살 소년으로 어머니와 함께 암살됐다. 암살을 지시한 인물은 알렉산더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실권을 장악한 카산드로스다. 알렉산더의 이복 여동생 테살로니카와 결혼했으니 고모부다. 가능성은 낮지만, 또 하나 금관의 주인공 후보는 필리포스 3세다. 알렉산더보다 3살 위 이복형이다. 그는 B.C323년 알렉산더가 급사하고 마케도니아 왕으로 추대됐지만, 디아도코이(Diadochoi, 후계자들)로 불리던 알렉산더 부하장군들 얼굴마담으로 있다 B.C317년 죽는다. 필리포스 2세 참나무잎 금관, 알렉산더 4세 참나무잎 금관과 같은 형태가 지난 호에 살펴봤던 트라키아 오드리시아 왕조 세우테스 3세(재위 B.C331년-B.C300년) 참나무 잎 금관이다.

정복왕 알렉산더의 금관은?

여기서 이제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내려 보자. 아버지 필리포스 2세, 아들 알렉산더 4세 무덤에 부장품으로 금관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알렉산더 역시 무덤에 부장품으로 금관을 넣는 당시 풍습을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정복왕 알렉산더의 무덤을 찾아가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그게 미궁으로 빠졌다. 알렉산더가 바빌론에서 B.C323년 급사하자, 부하들은 전통 마케도니아 풍습과 달리 화장 대신 알렉산더가 정복한 이집트의 기술자들을 불러 이집트 식으로 방부처리, 즉 미라를 만든다. 미라를 화려한 석관에 넣어 고국 마케도니아 왕실묘지로 운구한다. 예정대로 라면 아버지 무덤 옆에 묻혔을 거다. 그런데, 이집트를 장악한 총독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알렉산더 운구행렬을 습격해 석관을 탈취한 뒤 알렉산드리아에 무덤을 만들었다.

   
▲ 프톨레마이오스 장군. 알렉산더 석관을 탈취해 알렉산더 무덤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만든다. 루브르. ⓒ 김문환
   
▲ 알렉산드리아. B.C323년 급사한 알렉산더의 무덤이 설치된 장소다. ⓒ 김문환
   
▲ 카라칼라 황제. 알렉산더의 무덤을 마지막으로 참배한 로마 황제. 이후 알렉산더 무덤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 김문환

이 무덤은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의 8대손이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클레오파트라 7세가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한 뒤 로마 지배시기에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로마 카라칼라 황제(재위 211년-217년)가 참배한 뒤로 기록에서 사라진다.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알렉산더 무덤이 언젠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금관과 함께 발굴될지 모를 일이다. 그건 그렇고, 필리포스 2세나 알렉산더가 부장품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금관을 썼을까? 왕실 일원이 아니어도 금관을 부장품으로 넣는 풍습이 있었을까? 다음 글에 살펴본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금관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발굴된 금관 8개(신라 6개, 가야 2개)를 비롯해 여러 금동관의 특징과 기원을 짚어본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금관문화를 현장유적과 박물관 유물취재를 통해 문명교류 관점에서 5회에 걸쳐 들춰본다.

편집 : 박지영 기자

[박지영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장 박지영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진실만을 쫓는 우직한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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