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위험의 외주화’

▲ 이신의

대학 시절 새벽 6시 기숙사 화재경보가 귀를 때리듯 울렸다. 세월호와 각종 화재 사건들이 터지던 때였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방에는 비싼 물건들이 있었지만 경보가 울리자마자 슬리퍼만 신은 채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1층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짐을 싸서 내려온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가장 비싸게 여기는 건 역시 자기 생명인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생명을 향한 시선을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혼모는 어려운 형편에 자기 음식을 딸에게 먹이며 일주일을 굶는다. 그 사실을 안 옆집 할아버지는 미혼모를 데리고 무료 식품저장소를 찾아간다. 그곳에 도착한 미혼모는 식료품 배식 절차를 밟기 전 통조림을 따 허겁지겁 먹는다. 미혼모는 주위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로마’에서는 멕시코인 가정부가 등장한다. 가족과 여행을 갔을 때 고용인의 아이들이 파도에 휩쓸린다. 가정부는 아이들 상황을 알고는 즉각 몰아치는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두 영화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값은 관심과 사랑이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 기초생활연금 등 우리 사회에도 최소한 생명유지 장치는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민간영역에서도 생명을 위한 활동은 지속된다. 베이비박스는 12년째 미혼모 아기를 받아주는 상자다. 박스에 아이가 놓이면 벨이 울린다. 자원봉사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뛰어나가 미혼모를 만난다. 그리고 생명의 값을 제시한다.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생계를 지원하겠습니다. 대신 아기를 버리지 말고 키워주세요.” 생명의 마지막 관문에서 외치는 소리는 간절하다.

▲ 지난 2017년까지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생명은 약 1천여 명이다. ⓒ MBC NEWS

생명의 값은 생명이 아닌 다른 곳에 지급되기도 한다. 과거 포드사는 치명적 엔진 결함을 알고 있었지만 사고로 죽은 사람들에게 주는 보상금과 차량 판매로 얻는 수익금을 계산했을 때, 결함을 은폐하면 이익이 더 크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차량 출시는 강행됐고, 엔진 폭발로 수많은 사망자가 생겼다. 그들에게 생명은 보험료로 책정됐다. 용역노동자들의 연이은 사망 사건 역시 용역들의 생명 값이 얻는 이익에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BMW가 화재 결함을 은폐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니까 생명의 교환가치는 무한해야 옳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생명도 교환 가능한 가치로 여긴다. 생명보험의 보험료와 보험금 책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들이 위험을 외주화하고 안전장치와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는 것도 생명의 교환가치를 낮게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 화재경보는 오작동이었다. 도착한 소방관들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내 생명의 교환가치는 아직 미지수인가?

* 글쓴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입학예정자로서 재학생 캠프에 참가해 이 글을 쓰고 첨삭을 받았습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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