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캄캄한 밤을 밝힐 전등도, 전염병 백신을 보관할 냉장고도 없었던 마을. 전기가 없어 가난과 질병을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웠던 아프리카 케냐 빈민가 등에 태양광 패널이 속속 설치되고 있다. 외신 인터뷰에서 “이제 해 진 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빛났다.
돈이 없어 발전소와 송전시설을 지을 엄두를 못 냈지만 뜨거운 햇볕만은 지구상 어느 곳보다 풍부한 땅. 집집마다, 혹은 마을마다 설치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이 아프리카에 ‘에너지 접근’과 ‘에너지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케냐도 독일도 햇빛발전으로 도약
대규모 시설투자와 값비싼 연료공급을 요구하는 화력·원자력과 달리 ‘소규모 설비’와 ‘공짜 연료(햇빛·바람)’로 가동할 수 있는 태양광·풍력 발전은 전 세계 에너지 지형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빈곤과 절망이 자욱했던 아프리카의 밤이 밝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변덕스런 국제 원유가 등에 골머리를 앓았던 선진국들도 에너지 자립의 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은 오는 2022년 ‘탈원전 완료’를 목표로 핵발전소를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생산의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석유 등 해외 에너지 수입도 2014년 기준 전년대비 약 80억유로(약 10조원)나 줄였다. 독일 연구기관들은 ‘재생에너지 생산 증가로 에너지 안보가 강해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만으로 그날 전국의 전기수요량 100%를 충당하는 놀라운 기록도 여러 차례 세웠다.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 자급률이 고작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최하위다.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등 화력발전과 원전 연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국제 시장에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면 그 충격이 그대로 국내 경제를 뒤흔든다. ‘에너지 자립’이 안되니 ‘에너지 안보’가 늘 불안하다.
만일 독일처럼 보수·진보 상관없이 정부가 일관되게 에너지전환을 이끌고, 환경의식이 투철한 국민들이 강력하게 지지해준다면 우리도 달라질 수 있다. 국토 곳곳에서 ‘연료비 공짜’로 활용할 수 있는 햇빛과 바람을 반도체와 조선해양 기술 등에 접목하면 ‘자원 거지’ 신세에서 ‘에너지 자립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가짜 뉴스’로 에너지전환 발목 잡는 세력
문재인 정부도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오는 2030년까지 우선 전체 발전량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원자력·석탄화력 등 기존 발전산업 이해관계자들의 저항과 일부 언론의 사실 왜곡, 재생에너지 시설을 둘러싼 지역 갈등 등으로 앞길이 불투명하다. 사실에 엄격해야 할 전문가들과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태양광 패널의 중금속 오염과 전자파 위험 등 이미 ‘가짜 뉴스’로 판명 난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 여러 나라에서 태양광·풍력의 경제성이 원전·화력을 앞질렀고 우리보다 일조량이 적은 나라에서도 태양광이 급성장하는데, ‘재생에너지는 비싸다’ ‘우리 국토는 태양광·풍력에 부적합하다’ 등 한물간 주장을 계속 되풀이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인식과 실천도 뒤처져 있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세계 정상급 기업 154곳은 사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에서 얻겠다며 ‘RE(Renewable Energy)100 이니셔티브’를 결성했다. 반면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해외 사업장은 몰라도 국내에선 여건이 안 된다’며 소극적 행보에 그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각국에서 ‘혁신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것도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은 광산 등 기존 연료분야 일자리가 2005년 17만5000개에서 2014년 3만5000개로 줄어든 대신 재생에너지 일자리는 같은 기간 17만개에서 35만5000개로 늘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혁신성장을 위한 에너지 전환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도 재생에너지 관련 일자리가 2012년 714만개에서 2017년 1034만개로 5년 사이 4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 발전기와 전기자동차에 연결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기술산업의 매출이 눈부시게 늘고 있고, 새로운 에너지 금융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같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도 에너지전환 투자로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국산 에너지’ 시민이 요구해야
우리나라가 햇빛, 바람, 지열 등을 활용해 에너지 자립과 혁신 성장을 이루려면 정부·기업·주민이 새로운 협업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주민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업자 소유의 태양광·풍력발전소를 세우는 게 아니라 생태환경을 보전하면서 주민과 이익을 나누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바람은 모두의 것’이라는 공풍화(共風化) 개념을 도입한 제주도의 이익공유제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언론의 역할과 시민의 각성도 중요하다. 폭염·혹한 등 기상재난으로 현실화하고 있는 기후변화, 체르노빌·후쿠시마에서 확인된 원전사고의 위험성, 그리고 숨 쉬는 것조차 두려운 일로 만들어버린 미세먼지를 모두 극복하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재생에너지라는 대안에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각국 사례와 실증 자료를 통해 알려야 한다.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식의 ‘혹세무민(惑世誣民)’은 박살을 내야 한다.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수입 연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국산 에너지로 가자고 시민들이 나서서 요구해야 한다.
편집 : 박지영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박지영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진실만을 쫓는 우직한 기자가 되겠습니다.